덕수궁 내 중명전, 을사늑약이 이루어졌던 장소다.
제국주의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른 한일협약
외교권 박탈과 관련된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으로 한국은 대외적 대표권을 상실하였다. 따라서 대한제국은 주권국가였지만 기존에 체결된 조약의 개폐 및 존속 여부는 보호국인 일본이 행사하게 되었다. 열강은 모두 조선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의 조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끝까지 조선과 맺은 조약을 이행하기보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승인, 양보, 타협하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화를 용인했다.
당시 조약의 형식(외양)은 합의에 의한 문서이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물리적인 정복이었다. 해외식민지 확장 과정에서 제국주의 국가가 자국 이익을 확보하려고 이해당사국과 합종연횡하는 일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었다. 서구열강 및 중국과 일본의 조선에 대한 대외적인 압박은 일련의 조약을 통해 진행되었다. 조선(대한제국)은 1910년 일본의 ‘병합조약’ 강제로 인해 주권을 상실하는 시점까지 관세, 내정, 외교 등 상당한 범위에 있어 주권적 권리에 대한 제한을 받았다. 조선이 주권은 보유하고 있지만, 주권적 권리 행사가 제한된 상황을 ‘반주·속국(半主·屬國)’이란 용어로 설명하기도 했다.
제국주의 국가가 영토 취득 유형을 결정
해외영토를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 제국주의 서양 열강들은 영토문제에 적용 가능한 국제법 유형(類型/mode) 가운데 주로 선점(先占), 할양(割讓), 그리고 정복(征服)을 원용했다. 제국주의 국가가 어떤 방식을 원용해 영토를 확장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해당 제국주의 국가의 상황에 대한 판단에 의존했다. 그런데 개척 혹은 식민화하고자 하는 해당 영토의 상황은 제국주의 국가가 상황적 판단을 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결론적으로 제국주의 국가의 상황과 대상 식민지 영토의 상황이 제국주의 국가가 영토 취득의 유형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인 제국은 라틴 아메리카를 무력으로 정복했다. 영국은 북미에서 원주민의 거주 사실을 무시한 채 무주지(無主地) 이론에 근거해 선점한 후, 북미 국가들과 조약으로 할양했다. 인도는 토후(土侯) 제국(諸國)들과의 전쟁과 조약을 통한 할양을 통해 정복했다. 당시 아프리카는 국가보다 민족, 종족 개념의 정치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당시 국제법상 조약의 당사자 적격(適格)이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을 만들었다. 유럽 제국주의는 자격이 의심되는 이들 정치공동체의 족장들과 조약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위와 같은 예는 당시 제국주의 국가의 상황과 대상 식민지 영토의 상황이 결합되어 국제법이 적용되었음을 말한다. 조약을 통한 할양이라는 방법이 대부분 원용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식민지의 일정 수준 이상의 제도에 대한 지속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둘째, 해당 영토에 대한 다국적인 이해관계의 중첩에 대한 해당 제국주의 국가의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셋째, 해당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영토에 대한 이익 담보 기능의 필요성이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 국가의 상황과 대상 식민지 영토의 상황에 추가해 이해 당사국들이 복수(複數)인 경우 이들 상호간 이해관계가 제3의 변수로 작용해 해당 제국주의 국가의 영토 취득의 유형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순간을 묘사한 그림
제1차 아편전쟁 당시 영국 군함 네메시스호의 공격을 받은 중국 선박을 묘사한 그림
덕수궁 내 중명전 2전시실에는 을사늑약의 현장을 재현한 모형이 있다.
제국주의 국가의 해외영토 분류의 본질
국가의 주권과 주권적 권리의 제한 정도는 각각의 지역과 시기마다 같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두 세기 동안 열강 세력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의 대다수 영토들을 그들의 식민 관할권에 종속시키는 무차별적인 식민지 확대 정책을 추구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미국 등은 상당 기간에 걸쳐 그들의 국경선을 넘어 식민지 팽창의 국가이익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열강 세력들의 식민지 팽창 정책은, 양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현대 국제법상의 영토분쟁과 관련해 상당히 중요한 문제점을 야기했다. 즉, 전후 전승국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대다수의 재건축 과정은, 국제법 측면에서 볼 때, 패전국의 이전(以前) 식민지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의 문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사실상 이러한 처분의 문제가 재건축 작업의 핵심이기도 했다.
‘식민지’ 개념에 대해 법적인 명확성을 부여하는 작업이 국제법에서 더딘 이유는 무엇보다 공통분모가 부족하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유럽 열강에 대한 의존은 대부분의 경우 문제가 되는 영토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특징이었지만, 변형된 형태의 외국인에 의한 지배가 많이 존재한다는 점이 법적 상태와 관련해 단일 형태의 정의 개념을 설정하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 취득한 ‘식민지’ 영토가 광범위한 만큼 식민지 열강이 정의하는 법적 지위의 범위도 함께 넓어졌다. 각각의 ‘정복자’는 특정한 식민지법을 정교하게 제정했다. 게다가 ‘식민지’라는 용어에는 각 국가의 법률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패전국의 이전 식민지를 재조정, 처분, 또는 행정관리하는 작업은 연합국(Allied), 추축국(Axis)을 포함한 제국주의 열강의 상당수 국가들이 법적, 사실적으로 이들 식민지와 유지한 관계가 일정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매우 복잡해졌다. 예를 들어, 영국은 식민지법(colonial law) 또는 자치령의 법을 포함한 전체적인 법체계를 영국의 전 세계 모든 식민지에 차별·구분해 적용하는 차별적 관계이론(different relational theories)에 따라 식민지를 지배했다. 따라서 영국의 해외통치 영토에 대한 관계는 속령, 식민지, 정착지, 속국, 보호령, 피보호국가 또는 자치령 등으로 분류해 적용했다. 심지어 20세기 초 대영제국의 법률에서 해외지역은 40개 이상의 지위로 구별했고, 이에 대한 통제는 식민성, 인도성, 외무성 등 3개의 부서에서 나누어 관장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거의 모든 식민통치 국가들에서 나타났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미국은 그들의 식민지 영토를 분류하는 데 있어 자신들이 정립한 개념과 특정한 용어를 사용했다. 이러한 사실은 식민통치 국가가 지배했던 영토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 정의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상당한 혼란을 일으켰다. 해당 영토에 대한 분류가 실제 상황과도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했다. 따라서 이들 식민통치 국가들의 해외식민 영토에 대한 분류가 가지고 있는 의미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양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영토에 대한 분류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들의 분류가 때때로 주요 강대국 사이에 누가 어느 특정 지역을 관장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영유권 분쟁을 촉발했다.
비교식민지 연구의 방향성 제고
그렇다면 각각의 해당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경영을 시대별로 구분하고 당시 해당 지역의 법적인 성격을 파악한 뒤, 조선의 식민지화 과정과 부합하는 것을 적용하는 작업을 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느 특정 제국주의 국가의 특정 지역, 특정 기간의 식민통치 방식이 일본과 조선(대한제국)과의 관계에 비교 대상이 되어야 하는, 또 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비교식민지 연구의 방향성과 관련, 해당 식민지의 법적 성격에 대한 분류는 가능한 한 단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너무나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되고 있는 식민통치 국가들의 해외지배 영토는 몇 가지의 공통적인 분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즉, 이들 다양한 분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식민통치 국가가 해당 식민영토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배력(주권과 주권적 권리)을 행사했느냐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준의 중요한 주권적 권리로는 일반적으로 관세권, 외교권, 조세권, 경찰권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최혜국대우, 효율적인 무역 독점 및 과세권의 확보, 군사적 지배 및 외교권의 확보, 그리고 포괄적인 법 규정과 관료적 행정의 안정적 확보라는 전형적인 단계를 통해 이뤄지는 식민통치 영역의 확대가 식민지의 원형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해당 주권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식민통치 국가가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이들 영토에 대해 허용했는지 여부와 직결된다. 식민통치의 본질적인 성격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좀더 비중 있게 연구해야 한다.
첫째, 식민지화 과정에서의 저항 및 투쟁의 정도, 과정, 그 결과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식민지가 된 이후의 독립운동의 정도, 과정, 결과 및 독립을 이루게 된 경과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셋째, 제국주의 국가와 조약을 체결한 후 제정된, 또는 개정된 국내법의 현황과 운용 방식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기존 연구가 제국주의 국가가 어떻게 식민영토를 확대해 나갔는가에 중점을 두었다면, 향후에는 식민영토 국가가 제국주의 세력에 어떻게 대항하고, 극복해왔는지에 대한 연구로 화자(話者)를 전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한 실체적 성과가 있어야 한국적인 시각에서 국제법상 제국주의 국가의 영토 확장과 관련된 본질성의 실체 및 함의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개념적으로 불완전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국제법상 제국주의’의 현대적 적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작업은 연구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파악된 문제점을 개념화하고, 그 개념을 실체화한 후, 그 실체를 적용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후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와 그의 저서 『전쟁과 평화의 법』(1625) 초판본 표지.
근대 유럽에서 발원한 국제법은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확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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