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큰 보름달의 이미지는 풍농, 풍요를 의미하였고, 일월성신(日月星辰)에 포함되어 태양, 별과 함께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는 자연을 유기적으로 인식하는 인간의 소산물이자 동아시아 보편의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마다의 생활권에 따라 특색 있는 달의 문화를 지니고 있는데, 특히 음력 1월 15일 즉, 한국의 대보름과 중국의 원소절이 그러하다.
정월대보름의 절식인 나물과 오곡밥이다. 나물과 오곡밥은 서로 비벼 먹지 않았는데, 이는 논밭에 잡초가 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음력 1월 15일, 한국의 ‘대보름’과 중국의 ‘원소절’
한국에서는 음력 1월 15일을 ‘정월대보름’ 또는 ‘대보름’이라고 한다. 이는 1년 중 가장 큰 보름이자 첫 번째 보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오늘날에는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아 명절로 인식하지는 않지만 삼국 시대 이후 대보름은 주요 명절로 여겼고, 고려 시대에는 설날·추석과 함께 형벌을 금하는 9대 명절 중 하나였다. 또한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다”라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문화에서는 정월대보름의 중요성이 설에 못지않았다. 북한에서는 정월대보름을 공휴일로 지정해 민속 명절로 보내고 있고, 달맞이 풍습과 함께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중국에서는 이날을 ‘원소절(元宵節)’이라고 한다. 원(元)은 첫 번째 또는 정월을 나타내고, 소(宵)는 밤이라는 뜻으로, 이 역시 1년의 첫 번째 보름 밤을 의미한다. 원소절 또한 고대부터 중요시해온 중국의 전통 명절 중 하나다. 원소절을 부르는 다른 이름을 통해 풍속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데, 밤에 등불을 내다 거는 것이 주요 행사이므로 이날을 ‘등절(燈節) 또는 등화절(燈火節)’이라고도 한다. 현재 원소절은 중국에서 민속분야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부럼은 호두나 잣 등의 딱딱한 견과류를 깨무는 것이다. 최근에는 아몬드, 마카다미아 등 신(新) 부럼도 나타나고 있다.
서로 다른 정월보름 명절의 유래
한국과 중국 모두 음력 1월 15일을 기념하는 것은 같으나, 서로 다른 유래담을 지니고 있다. 먼저, 한국 정월대보름의 기원은 『삼국유사』의 사금갑 설화와 관련이 있다. 488년 신라의 소지왕이 신비한 까마귀를 만나 뒤를 쫓던 중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이 바친 글에는 “거문고 갑을 쏘라”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를 그대로 행하자 거문고 상자 안에서 몰래 간통하고 있는 승려와 궁주(宮主)를 잡을 수 있었다. 이로부터 해마다 정월대보름을 까마귀를 기리는 날이라 하여 ‘오기일(烏忌日)’로 삼고 찰밥으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이어졌다.
오늘날에도 정월대보름 아침에는 까치나 까마귀에게 밥을 주는 풍속이 일부 지역에 남아있는데, 찰밥을 비롯한 여러 음식을 길거리에 두거나, 높은 나무 또는 지붕 위에 올려두어 새가 먹을 수 있도록 한다. 한국과 달리 중국 원소절의 유래는 다양한 편이다. 특히, 이날에 등불을 달게 된 연원에 대해 설명한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한나라 문제(文帝)가 반란을 진압하고 황제로 등극한 날인 1월 15일을 기념해 집집마다 등을 달아 축하한 것이 원소절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것으로는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옛적 인간이 하늘의 궁을 지키는 새를 죽이게 되자, 옥황상제가 화를 내며 1월 15일 날에 지상의 모든 것을 태우도록 지시했다. 마음씨 착한 옥황상제의 딸이 이 말을 듣고 인간에게 귀띔해주어, 사람들은 등불을 매달고 폭죽을 터뜨려 세상에 이미 재앙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해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중국 원소절 대표 절식 탕위안
대보름과 원소절, 어떤 음식을 먹을까?
정월대보름의 대표 절식은 먼저, ‘오곡밥’이다. 오곡밥의 유래는 앞서 『삼국유사』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찰밥으로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낸 것에서 시작한다. 시기에 따라 찰밥과 약밥 그리고 오곡밥이 혼재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은 모두 찹쌀로 만드는 음식으로, 대보름의 찹쌀밥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이르는 한국 고유의 대보름 절식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관료 허균(許筠, 1569 ~1618)은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팔도의 최고 음식으로 ‘약밥’을 꼽으며, “경주에서는 보름날 까마귀에게 이를 먹이는 풍습이 있다. 중국인들이 좋아해 배워서 해먹는데 고려반(高麗飯)이라 부른다”라고 했다.
두 번째 정월대보름의 대표 절식은 ‘부럼’이다. 보름과 부럼은 명칭도 비슷한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딱딱한 음식을 먹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시작
되었다고 한다. 정월대보름에 딱딱한 것을 깨무는 풍속은 한·중·일 모두 나타나지만 현재도 두드러지게 행하는 나라는 한국이다.
중국 원소절의 대표적인 음식은 찹쌀을 동그랗게 새알처럼 빚어 물에 삶아 먹는 ‘탕위안(湯圓)이다. 두 나라가 찹쌀을 재료로 한 음식을 먹는 것이 비슷한 듯하다. 하지만 한국은 오곡이 들어간 찰밥에 여러 가지 나물을 곁들여 먹고, 중국은 일종의 찹쌀떡탕을 먹는다는 점이 다르다. 탕위안의 발음은 ‘단란하다’라는 뜻의 중국말 ‘투안위안(團圓)’과 유사하다. 따라서 원소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행복하고 단란하게 지내기를 기원하며 탕위안을 먹는다. 떡 안의 재료는 설탕, 팥 등이며, 현대에는 초콜릿이나 치즈를 넣은 것도 있다. 이 음식은 당 태종이 정월 보름에 나라에 공을 크게 세운 장군을 치하하기 위해, 찹쌀로 특별한 음식을 만들도록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쥐불놀이
한국과 중국, 서로 다른 만월의 밤 문화
한국의 경우, 정초에서 대보름까지의 기간은 한 해에 닥칠 나쁜 기운을 막고,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가 포진되어 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보름달을 풍성함과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자연물로 여겼다. 특히, 한국은 이러한 달의 상징성이 정월대보름 풍속에 강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는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달그림자나 모양을 통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 또, 쥐불놀이를 비롯한 다양한 불놀이는 해충을 없애고 주변을 정화하는 의미와 더불어, 불의 모양으로 풍년을 예측하기도 한다. 이처럼 모든 정월대보름의 풍속은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예축행사(豫祝行事)적 성격을 지닌다. 각 마을에서는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며 마을 수호신에게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 이외에도 “내 더위 사가라”고 하며 상대방에게 더위를 파는 풍속도 있다. 정월대보름은 겨울에도 불구하고, 여름의 더위를 막기 위해 미리 행하는 것이다.
2023년 원소절 상하이의 등불축제. 축제는 1월부터 2월 말까지 이어져 신년의 분위기가 계속된다.
올해는 계묘년을 맞아 토끼 모양의 등을 전시하였다
원소절 등롱 수수께끼(猜灯谜)를 풀고 있는 사람들
따라서, 한국의 정월 대보름은 1년을 준비하는 각종 문화가 응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월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풍속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대보름날 뉴스에서는 달이 뜨는 시간과 기상으로 인해 달을 잘 볼 수 있는지 보도하는데, 이는 보름달 문화가 반영된 것이다. 중국의 원소절 역시 보름달을 맞이해, 풍년을 기원하고 가족들이 평안하길 바라는 풍속이 있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점차 이러한 의미보다는 등을 매달고 구경하는 축제적 성격이 짙어졌다. 따라서 이날은 유희적이고 오락적인 놀이 문화가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풍속은 등불 달기와 등롱 수수께끼 맞추기다. 거리 곳곳에는 화려한 모양의 등불이 내걸리고, 각지에서는 대규모 연등축제가 크게 개최된다.
중국의 등롱 수수께끼 놀이(打燈迷, 차이떵미) 역시 현재까지 성행하고 있는 원소절 특유의 오락이다. 이는 등롱에 수수께끼를 쓴 종이를 매달아 놓아 지나가는 사람이 풀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를 맞히는 재미와 언어교육적인 효과도 있다. 수수께끼에는 어떤 문제가 담겨 있을까? 올해 원소절의 대표 수수께끼 3편을 가져왔으니 재미 삼아 풀어보자.
• 머리에 빨갛고 작은 모자를 쓰고, 아침 일찍 목소리를 가다듬는 동물은?(頭頂小紅帽, 清早把嗓練)
→ 정답: 수탉(公雞)
• 입 안에 난 작은 종기를 한 글자로 답하면?(嘴巴長痘)
→ 정답: 凸(볼록할 철)
• 삼각형의 머리에 초록색 옷을 걸치고, 시도 때도 없이 큰 칼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동물은?(三角腦袋披綠袍, 最愛不時耍大刀)
→ 정답: 사마귀(螳螂)
중국인은 별을 보고 농사짓고, 우리나라 사람은 달을 보고 농사짓는다
한국과 중국의 정월은 1년 중에서 가장 많은 세시풍속 행사가 모여 있는 달이다. 특히, 대보름은 만월 아래에서 행하는 다양한 문화가 발달해, 각국의 민속에서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속담에 “중국 사람은 좀생이별을 보고 농사짓고, 한국 사람은 달을 보고 농사짓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중국인에게 ‘별’이 특별하다면, 한국인에게는 ‘달’이 특별하다.
우리의 정월대보름이 만월이 상징하는 풍요의 관념을 다양한 풍속을 통해 드러냈다면, 중국은 가족이 함께 모여 탕위안을 먹고 등불을 관람하는 풍속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두 나라가 1년의 첫 보름을 기념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명절을 지속시켜나가는 모습에는 각각의 문화적 차이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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