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인터뷰
“벽안의 한학자, 그의 눈에 비친 동아시아학”
  • 인터뷰이ㅣ 에드워드 쇼너시 시카고대학교 교수 인터뷰어ㅣ 이유표 재단 한중관계연구소 연구위원

“벽안의 한학자, 그의 눈에 비친 동아시아학”

 

Q. 이번에 한국에 오신 목적이 궁금합니다.


A. 저의 제자인 단국대 심재훈 교수의 초청을 받아, 단국대고대문명연구소,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경북대 인문학술원에서 강연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제가 홍콩에 방문학자로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청에 응할 수 있었고요.

 

Q. 원래 노트르담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셨는데, 동아시아로 관심을 돌리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A. 1960년대 미국에 선종열(禪宗熱)’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종을 소개하는 어떤 책을 읽었는데, 맨 앞에서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노장사상이 선종에 영향을 끼쳤다고 여기고, 노장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 장자(莊子)를 읽었는데, 원문으로 제대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중국어와 한문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마침 중국어 수업이 생겼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대만으로 가서 계속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Q. 대만에서 아이신줴뤄 위윈(愛新覺羅毓鋆, 1906 ~ 2011)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중국어와 한문을 공부하셨습니다. 제가 알기로 위윈 선생님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푸이(溥儀)와 함께 공부하신 분으로 서구에서 유학하신 후, 만주국에서 관원을 지냈고, 대만에서는 수많은 서구 학자들에게 중국어와 한문을 가르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A. 위윈 선생님은 1906년에 태어나셨습니다. 제가 만났을 때 이미 칠순을 넘기셨죠. 말씀하신대로 위윈 선생님은 만주국에서 관원을 지내다가 대략 1947년 경 남경 정부에 사로잡힌 후, 대만으로 호송되어 10여 년 가택에 연금되었습니다. 그러다 1960년 즈음부터 서양 사람들에게 중국어와 한문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는데, 이분의 지도를 받은 분들 중 유명한 학자가 되신 분이 많습니다. 예컨대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네이선 시빈(Nathan Sivin), U.C.버클리의 프레데릭 웨이크먼 주니어(Frederic Wakeman, Jr.)와 데이비드 키이틀리(David Keightley) 등 으로, 저는 하버드대학의 피터 볼(Peter K. Bol)의 소개로 위윈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The blue-eyed Chinese scholar,  East Asian studies through his eyes”

 

Q. 선생님께서는 1983주역(周易)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혹시 주역과 인연을 맺으신 것도 위윈 선생님과 관련이 있으신지요?


A. 그렇습니다. 원래 위윈 선생님은 유가 경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노장사상을 공부하고 싶어 간청을 드렸는데, 위윈 선생님께서 특별히 허락해 주셨죠. 그래서 먼저 도덕경(道德經)을 읽고, 다음에 장자, 그리고주역을 공부했습니다. 제가 위윈 선생님을 모시고 3년을 공부했는데, 그 절반인 1년 반 동안 주역을 두 번 읽었습니다. 한번은 명대 래지덕(來知德)의 주해서로, 한 번은 위진시대 왕필(王弼)의 주석서였죠. 미국에 돌아와 스탠포드 대학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도 노장사상을 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당 시대의 도교 혹은 주역의 기원으로 논문을 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지도교수였던 데이비드 니비슨(David S. Nivison)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 교수님께서 당시 갑골문(甲骨文)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교수님께 갑골문으로 수업을 개설해 주실 것을 요청 드렸죠. 주역은 점복(占卜)과 관련된 책이고, 갑골문 또한 점복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갑골문을 공부하면 주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갑골문을 공부하게 되었고, 주역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쓸 수 있었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U.C.버클리의 데이비드 키이틀리 선생님의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Q. 그런데 선생님께서 박사학위논문을 저서로 발간하기까지 거의 4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A. . 그렇습니다. 당시 데이비드 키이틀리 선생님께서 제 박사학위논문을 U.C.버클리 출판사에서 출간할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책으로 발간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예컨대, 제가 생각했을 때 주역은 서주(西周) 시기의 기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 주 시대의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 서주 시기의 청동기 명문을 공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동기 명문을 공부하면서 서주사료: 청동기 명문(Sources of Western Zhou History: Inscribed Bronze Vessels)(1991)을 먼저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박사학위논문을 수정하려고 했을 때, 주역과 관련된 새로운 출토자료가 계속해서 보고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상하이박물관에서 소장한 죽간본과 칭화대학(淸華大學)에서 소장한 서법(筮法)이라는 문헌이죠. 이 자료들을 망라해서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하는 것은 아주 큰 도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5, 중국에서 한 가지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중국에서 당시 일명 ‘2011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출토문헌을 이용하여 중국의 경전을 다시 정리하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칭화대학의 리쉐친(李學勤) 선생과 푸단대학(復旦大學)의 츄시궤이(裘錫圭) 선생이 연락해서 주역을 담당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저는 이 작업이 지난한 작업이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이렇게 수년이 지난 후 『「주역의 기원 및 초기의 발전(The Origin and Early Development of the Zhou Changes)(2022)을 출간할 수 있었죠.

 

Q. 주역은 이른바 십삼경(十三經)가운데 첫 번째로 손꼽히는 경전입니다. 이와 같이 중요한 문헌인 주역의 정리를 외국인 학자에게 의뢰했다는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A. 저도 아주 이례적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지금의 정치 환경이라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래문헌과 출토문헌을 결합시켜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주역을 전공하고, 또 꾸준히 연구 화두로 삼아 온 학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한테 기회가 오지않았나 생각합니다.

 

Q. 이것은 결국 중국 학계에서 그간 선생님의 연구 성과를 인정했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지금의 정치 환경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A.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Q. 구미권의 동아시아학 연구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동아시아학이라는 범주가 너무 큽니다. 이 자리에서 다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역사 부분만 가지고 말씀드리자면, 1970 ~ 1980년대 중국의 변화는 서구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발전 또한 주목을 받았죠. 중국 같은 경우 문화대혁명 시기에 진행된 고고학 발굴, 예컨대 진시황 병마용이라든지 마왕퇴와 수호지의 출토문헌 등이 그러했죠.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이 동아시아의 역사로 시선을 돌렸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연구자도 많이 줄었고, 성과도 예전만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벽안의 한학자, 그의 눈에 비친 동아시아학”

 

Q. 그렇지만, 선생님이 계신 시카고대학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는 구미권에서 동아시아학으로 영향력이 큰 학과로 오히려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A. 시카고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에는 30명이 넘는 강사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중국학으로 많은 연구자가 있고, 일본학은 1980년대 이후로 대오를 확충했습니다. 현재는 일본 근현대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학은 현대 문학을 연구하시는 최경희 교수님이 계시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여러 강사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인재들이 확충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연구하는 고대 중국학 같은 경우, 1936년 헐리 크릴(Herrlee G. Creel) 선생님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크릴 선생님이 쓰신 중국의 탄생(The Birth of China)(1936)은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죠. 저는 크릴 선생님이 퇴직하신 이후인 1984년 정도에 시카고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이때는 고대를 연구하는 사람이 저 혼자였습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우훙(巫鴻), 도널드 하퍼(Donald Harper) 등의 인재를 확보했고, 현재는 송대(宋代) 이전으로 6명의 교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동아시아학으로는 구미권에서 최대 진용을 갖춘 만큼 많은 성과를 내고 있고, 학계에서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습니다.

 

Q. 중국은 정부 주도로 많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 그리고 지금의 고문자공정(古文字工程)’고고중국(考古中國)’ 등입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국가가 많은 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해준다는 의미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하상주단대공정’(1996~2000)을 사례로 들어보죠. 이 프로젝트는 역사학, 고고학, 고문자학, 문헌학은 물론, 천문학 등 자연과학까지 결합시킨 대형 학제 간 연구 프로젝트입니다. 리쉐친 선생은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만이 이런 대형 학제 간 연구가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 프로젝트는 쑹젠(宋健)이라는 학자가 이집트 국립박물관에 갔을 때, 이집트 역대 왕의 연대가 잘 정리된 것을 보고, ‘왜 중국에는 이런 것이 없나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1995년 중국 정부에 건의해서 이듬해 곧바로 추진된 것입니다. 여러 서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중국이 이러한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은 일종의 애국주의적 발상으로, 중국의 역사를 끌어올려서 이집트와 나란히 하려는 의도가 다분했습니다.

 

Q. 쑹젠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지 1년도 안 되어 추진하였다면 학제 간 상호 이해가 부족했겠네요.


A. 그렇습니다. 2000년도에 프로젝트가 끝난 후 간단한 보고서가 나왔죠. 그 보고서 내용에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학제 간 상호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학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결과가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그래서 정식 보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22년이 지난 작년에 정식 보고서가 나왔더군요. 그런데 22년 동안 기존 보고서를 뒤집을 만한 많은 증거가 발견되었지만, 정식 보고서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기존의 결과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비판하는 서평을 썼고, 중국어로

번역해서 중국의 권위 있는 학술 잡지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지금의 정치 환경에서 가능할지 의문이지만요.

 

Q. 이러한 정치 환경이 변할 수 있을까요?


A.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시작되었던 1978년 이후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학술적으로 아주 개방적으로 변했고, 그동안 축적된 많은 성과들이 쏟아졌습니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는 ’, ‘로 요동치기도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중국은 정부 주도의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죠. 이는 정부의 간섭이 많아졌다는 의미이지만, 어떻게 보면 연구자들이 학문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정치 환경은 언젠가는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다 자유로운 환경이 주어진다면, 그동안 연구자들이 축적해 온 성과들이 봇물처럼 터질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향후 연구 계획을 부탁드립니다.


A.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는 칭화대학에 소장 중인 전국시대(戰國時代) 죽간을 영어로 번역해서 출간하는 것입니다. 현재 정기적인 독회를 통해 조금씩 번역해 나가고 있는데, 언젠가는 완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명나라 때 위조된 것으로 알려진 죽서기년(竹書紀年)은 그 나름대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죽서기년을 철저하게 연구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올해 제 나이는 71세로, 제가 위윈 선생님을 만났을 때 위윈 선생님의 나이입니다. 위윈 선생님께서는 106세까지 장수하셨는데, 저에게도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보다 많은 연구를 할 수 있겠죠.

 

Q. 더 많은 학술적인 공헌을 위해 꼭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를 맞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한국의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OPEN 공공누리 - 공공저작물 자유이용 허락(출처표시 - 상업적이용금지 - 변경금지)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벽안의 한학자, 그의 눈에 비친 동아시아학”'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