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류’가 홍콩을 휩쓸면서 홍콩 학생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홍콩의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해 어떻게 전달하고 있을까? 특히 홍콩의 세계사 교과서에서 한국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홍콩의 역사 교육
홍콩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세계 역사와 중국 역사를 따로 편성하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홍콩 사회 구조의 변화에 기인한다. 초기 홍콩의 세계사 교육과정은 영국의 역사 교육과정을 답습했다. 1949년 중국의 내전이 끝난 후, 이민 붐이 일어나 많은 학자들이 홍콩으로 이주하였다. 식민정부는 이러한 정국이 홍콩에 끼칠 영향을 우려하여 중국역사과목을 검시(檢視)하기 시작했다. 이에 식민정부는 1952년 『중문과목위원회보고(中文科目委員會報告)』를 발표, 세계사와 중국사를 각각 독립된 과목으로 분리시켰다.
홍콩의 중학교 교육과정은 거시적인 세계사로, 학생들이 세계 역사 발전의 중요한 특징을 기본적으로 파악하고, 각 국가 간의 상호 작용이 오늘날의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이해하도록 구성되었다.
홍콩의 고등학교 역사 교육과정은 미시적인 세계사로, 20세기 세계 현대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20세기 세계의 발전 추세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세계가 어떻게 전쟁에서 평화로, 충돌에서 협력으로, 쇠락에서 번영으로 발전했는가를 이야기 한다.
세계사 교과서 속의 한국전쟁
중·고등학교 교과서 모두 한국전쟁을 냉전 초기의 절정기로 규정, 그 기원과 경과, 결과를 언급하고 있다. 이를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자.
지면의 제한으로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비교적 간략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대립이 어떻게 전쟁으로 직결됐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는 38선(북위 38도)을 경계로 미소 관할구역으로 지정됐다. 1947년, 유엔은 결의안을 통과시켜 한반도의 남과 북 두 지역 국민에 의해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1948년 7월, 이승만은 미국 관할구역에서 대통령에 당선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소련은 미국 측 선거를 인정하지 않고, 같은 해 소련 관할구역 내에서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지지했다. 남한과 북한은 한반도 전체의 통치권을 주장하며 미소 철군 이후 무력 충돌이 지속됐다.
교과서는 또 중국의 참전에 대해 “중국은 국가 안전에 위협을 느껴,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선에 파견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영향에 대해 한국전쟁이 중국 및 미국에 끼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중국은 한국전쟁 개입 이후 북한과 우호 관계를 맺었고, 또한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에서 자신의 지위를 높여 오랫동안 미국과 맞섰다. 반면 미국은 공산주의가 한국까지 확대되지 않게 했기 때문에, 이를 포위 정책의 성공으로 간주했다. 전후에도 한국에 계속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일본과 「방위조약」을 체결하였고, 1954년 여러 나라와 동남아시아조약기구를 설립하는 등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을 포위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전쟁이 홍콩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한국전쟁시기 유엔은 중국에 대해 금수조치를 취하여 홍콩의 중개무역에 타격을 주었다. 홍콩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공업 발전의 가속화를 추진했다”라고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고등학교 교과서는 한국전쟁을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전쟁의 발발에 대해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한을 공격하면서 한국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했다”라고 서술하고 있고, “미국은 한반도 전체가 북한의 수중으로 넘어가지 않고,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남한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다”고 미국의 참전을 서술하고 있다. 유엔안보리의 결의에서도 미국의 주도권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은 소련의 유엔 회의 불참을 기회로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남한을 지원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미군 중심의 유엔평화유지군은 북한군에 성공적으로 반격하여 북중 국경까지 진격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중국의 참전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교과서 또한 국가 안보 차원에서 참전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중·고등학교 교과서 모두 한국전쟁을 냉전의 틀로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한국전쟁이 정작 한국 자체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있다.
20세기 아시아의 현대화
홍콩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아시아 역사의 ‘현대화’ 맥락을 강조, 홍콩·중국·일본 및 동남아의 20세기 현대화 역정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나, 한국의 현대화와 변화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다루지 않고, ‘일본의 현대화와 탈바꿈’이라는 장절에서 한일관계를 축으로, 20세기 후반부 한국의 발전을 간략히 서술하는 데 그치고 있다.
먼저, 교과서는 20세기 전반 식민지 한국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1910~1945년 사이에 일본은 한반도를 35년 동안 식민통치 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전후 한국과 북한에는 일본을 증오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처럼 한국인의 민족정서만 주관적으로 제시했을 뿐, 일본의 식민 통치 정책을 전혀 서술하지 않고, 또 식민지 정부가 한국에 끼친 영향도 분석하지 않고 있다.
이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과 발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양국은 1965년 이미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했고, 양국은 모두 미국에 의해 극동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중요한 동맹이 됐다. 미국의 지지 외에도 경제 및 무역의 이익, 국가안보 등도 양국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개선되도록 촉진했다. 예컨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일본 총리는 1983년 방한해 40억 엔의 차관 제공을 확정해 양국 관계를 공고히 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은 북한 핵문제에 시달리면서 협력 강화에 더욱 주력하여 1998년 말 「한일공동선언」을 채택, 외교 및 국방 업무에 있어 소통의 틀을 마련했다. 전후 한일 양국 관계가 날로 긴밀해 지고 있지만, 식민지 역사, 전쟁 반성 및 독도 주권 등의 문제 등이 도사리고 있어 한국인들의 반일 감정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이처럼 서술의 중점은 일본의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에 있다. 그리고 한국의 반일정서가 마치 양국 관계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유사한 서술이 양국의 경제협력에 대한 설명에서도 보인다.
1965년 양국이 수교한 이래, 한국과 일본의 경제교류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한국은 일본의 주요 무역 파트너이자 투자처가 됐다. 양국의 긴밀한 경제 및 무역 왕래는 한국의 경제 성장을 크게 촉진시켰고, 한국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하나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됐다. 1999년까지 일본의 한국 투자 총액은 17억 달러에 달했고, 외국에 대한 직접투자의 두 번째 원천이었다.
이밖에 한중관계 심지어 한국과 대만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서술되지 않고 있다. 홍콩의 세계사 교과서는 20세기 한국의 현대화 과정뿐만 아니라, 근현대 동북아 역사에서 한국의 역할 또한 애써 외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탈식민지화(decolonization)’ 추세
‘탈식민지화’는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중요한 흐름으로, 홍콩의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또한 이를 상세히 분석했다. 특히 서방의 식민주의가 동남아 각 국가에 끼친 영향을 비롯하여 동남아의 탈식민지화를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독립운동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고, 식민지 시기의 정치, 경제, 사회와 외교 방면 또한 빼놓지 않았다.
20세기 후반, 많은 국가에서 탈식민지화와 냉전이 동시에 발생했다. 많은 식민지가 독립을 추구할 때 결국 미국과 소련의 각축장이 된 것이다. 한국은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다. 지정학적 이유로 한국은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미·소 냉전시기 첫 번째 전쟁터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홍콩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는 이에 대해 아주 간략히 서술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한국전쟁은 냉전 시대 양대 진영의 첫 번째 군사 충돌이자 유엔군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선례를 남겼으며, 유엔은 미·소의 각축장이 됐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공산주의 확산을 성공적으로 막은 사례로 간주하고, 전후에 공산주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공산주의 활동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두 지역의 많은 국가가 갓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독립 초기여서 정국이 다소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전쟁에서 북한을 성공적으로 원조함으로써 북한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아시아의 공산주의 진영은 급속히 커져 적대적인 미국을 걱정스럽게 하였다. 미국은 7함대를 대만해협에 파견해 순찰하고,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일본의 기지 건설을 돕는 등 아시아 방어선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이 독립을 쟁취한 과정 및 식민지 시기 여러 대국의 영향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 발전할 공간을 찾았는지는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 글로벌 탈식민지화의 서술에서도 한국은 다시금 외면된 것이다.
한국사 서술은 동아시아 역사를 보는 창
이처럼, 홍콩 중·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한국사 서술은 상당히 빈약한 실정이다. 중학교 교과서의 한국전쟁 서술은 냉전의 틀 속에서 미·소와 중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탈식민지화’와 아시아 각국의 현대화를 자세히 다룬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한국은 한일관계의 틀 속에서 간단히 언급될 뿐이다. 최근 ‘한류’가 홍콩을 휩쓸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중·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는 한국에 대한 서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을 궁금해 하는 학생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세계사 속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조망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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