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와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2023년 9월 10~25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개최되었다. 국내 언론은 현지 시간 14일에 열린 회의에 관심을 기울였다. 2015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군함도 등의 메이지 산업유산에 대한 평가가 예정된 날이었다. 언론은 부정적 결과를 점쳤다. 일본 정부가 유산시설 내 아시아·태평양전쟁 하 강제노동 관련 과거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의 예상을 빗나간 결과가 나왔다. “(일본 정부가) 유산의 역사 전체를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있기에 현재까지 어느 정도의 진전을 보였다고 인정함.”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정부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인정했다. 메이지 산업유산의 종합 홍보관 역할을 하는 ‘산업유산 정보센터’의 개편을 특히 높이 평가했다.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 현장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의 메이지산업유산 관련 결정문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전경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산업재해 피해자 관련 신설 전시
정보의 증가, 인식의 정체
2020년 도쿄 신주쿠에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메이지 산업유산 등재 당시 일본정부가 한 약속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전시하에서 한국인 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되고 강제노역했던 사실을 이해할 수 있고, 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센터를 만든다는 약속이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올해 이 센터가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는 긍정적 변화를 보여주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를 마냥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하, 개편 내용 소개는 센터가 ‘촬영’을 금지해 설명으로 대체함)
확실히 정보량은 늘어났다. 센터는 이번 개편을 맞아 터치스크린과 전시패널을 추가해 아시아·태평양전쟁 및 식민지 전후처리에 대한 정보량을 크게 늘렸다. 하지만 역사 인식은 정체했다. 신설된 ‘조선 반도와 일본 내지(內地)의 왕래’라는 주제의 터치스크린을 보자. ‘돈을 벌기 위해 조선인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도항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원과 노동의 강제성이 아닌 자발성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효고현 하리마 조선소의 노동자 김태조의 급여 봉투 전시가 신설된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시패널은 ‘자유 도항자인 그가 노력과 실력으로 승진해 높은 급여를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피식민지 노동자’가 처한 구조를 환기하기보다는, 특수한 한 사람의 ‘성공기’를 근거로 노동의 강제성이나 비극성을 부정하는 전시로 보인다. 또한 하리마 조선소는 메이지 산업유산에 포함되는 시설이 아니었기에, 센터의 설립 취지와도 조응하지 않는 기획이었다.
한편 전시하 산업재해와 관련한 코너를 신설한 점은 주목할 만한 진전이다. 군함도와 다카시마 탄광의 산업재해 관련 통계와 근거 자료 사진을 전시한 기획이었다. 그러나 ‘숫자’는 ‘추모’를 대신할 수 없다.
약속의 이행과 화해의 역사 만들기
많은 새로운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업유산 정보센터의 개편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등재 당시의 약속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는 노력을 통해,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장소로 근대산업유산이 거듭나는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