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톨스토이
러일전쟁의 사상자와 러시아 병사의 편지
1904년 2월에 발발한 러일전쟁으로 인해 양국 병사의 피해는 막대했다. 공식적으로 러시아 병사는 5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일본 병사는 8만 6천여명 전사했다. 실제로는 양국 모두 각각 약 27만 명의 병사가 인명피해를 입었다.
러일전쟁 당시 모두가 살인의 광기로 가득 찬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는 러시아 예비 병사들의 죽음을 예감하며 전쟁터로 끌려가는 상황을 고발했다. 당시 죽음의 기로에 선 병사조차도 전쟁의 광기에 찬 살인의 정당성을 의심했다. 톨스토이는 러일전쟁 이후 뤼순항의 한 수병이 보낸 편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저는 톨스토이 선생님의 작품을 읽는 것을 매우 사랑합니다. 선생님, 우리는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우리에게 살인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주님이 좋아할까요? 아닐까요? 저에게 말씀 좀 해주십시오, 선생님!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제발 지금 진실이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지금 우리 정교회 주교는 러시아 군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전쟁을 좋아하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그 수병은 답변을 보내달라고 톨스토이에게 간곡히 요청했다. 나아가 책이 없다면 편지라도 보내 줄 것을 간청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사랑스럽고 진정으로 교화된 수병에게 답장을 보낼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편지로도 전보로도 소식을 알릴 수 없는 뤼순항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톨스토이의 반전 에세이
러일전쟁 전후 톨스토이는 전쟁에 반대하는 다수의 에세이를 발표했고 이것을 외국에서 발간되는 신문과 잡지 등에 투고했다. 당시 톨스토이가 투고한 에세이들은 당시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될 만큼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을 세계적으로 형성시켰다. 톨스토이는 1904년 6월 27일자 The London Times에 「자신을 생각하세요!(Bethink Yourselves!)」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톨스토이의 「일러전쟁론(トルストイ翁の日露戦争論)」은 1904년 8월 7일자 일본 『헤이민신문(平民新聞)』 39호에 소개되었다. 이 글은 소개되자마자 일본 내에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이어서 『일러전쟁론』이 출판되자마자 일본에서 8,000부가 팔릴 정도였다.
톨스토이의 평화 사상
톨스토이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모든 사회체제가 권력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톨스토이는 국가를 혐오했지만, 외세의 침범에 대한 국가의 역할은 인정했다. 국가가 다른 민족의 공격을 막아야 하는데 그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그에게는 세상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었기 때문에 국가는 필요악의 존재였다. 반면 톨스토이는 민족에 대해서 비판하지는 않았는데 민족 자체는 애국심과 침략성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톨스토이는 소규모의 도덕적인 ‘농촌공동체’를 국가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톨스토이의 비판과 대안을 오늘날의 현실과 연결시킨다면, 그것은 작은 정부, 지역 공동체, 시민사회 등의 지향을 의미한다.
톨스토이는 국가의 애국심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사고했는데,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자신의 의지와 신의 의지를 결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신과 유사한 정신적 존재이고, 인간은 신의 의지를 수행하며, 인간은 사랑으로 축복을 이룰 수 있는 존재였다. 톨스토이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삶의 사명과 의미에 대한 어떤 깨달음이나 행동의 ‘내적 지침’이 필요했다. 톨스토이는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그 ‘내적 지침’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는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었다.
<이 글은 다음의 논문에 기초했다. 김영수, 「러일전쟁 전후 똘스또이(톨스토이)의 반전사상과 공동체 방안」, 『東洋學』 92, 2023.>
러일해전(Japanese battleship Shikishima on Battle of the Yellow 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