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회 웹포스터
제국 일본의 성 정치를 논하는 트랜스 내셔널 연구자들
지난 설 연휴 기간에 나고야 대학에서 열린 서평회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에 다녀왔다. 함께 토론한 책은, 저자 송연옥이 2023년 10월에 발간한 『식민지 ‘공창제’에 제국의 성 정치를 보다: 부산에서 상하이까지』[유시샤(有志舍), 일본어]이다. 송연옥의 부모는 식민지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송연옥은 종전 후에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일본에서 살아오면서 서울과 오사카에 소재한 대학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다. 식민지 조선의 여성사를 공부했으며, 본인의 체험에서 감각해 온, 식민주의와 젠더차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부조리한 실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저변 여성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일본 거주자로서 한국 여권을 지니고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면서 연구서를 발간하고 학술토론에 참여해 왔다.
이 서평회를 위해, 나고야 대학 교수인 하야시 요코 토론자들을 모았다. 2017년에 『성을 관리하는 제국: 공창제 하의 ‘위생’문제와 폐창운동』(오사카대 출판회, 일본어)을 출간한 그녀는 ‘식민주의가 내재된 군대 위생 시스템’으로서 일본 공창제의 역사를 탐색하는 연구자이다. 나는 한국에서 식민지 조선의 공창제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공부하고 발언하는 연구자로서 초청되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토론자인 하오 샤오양은 중국인이다. 2020년 「법적 파생에서 법적 주체로: 중일전쟁의 성범죄를 둘러싼 사법처리」(규슈대, 영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나고야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회는 자이니치(在日) 여성의 위치에서 자이니치 여성을 연구해온 서아귀가 맡았다.
참가자의 면면에서, 하야시 요코가 얼마나 신중하고도 섬세하게 서평회 패널을 구성했는지 엿볼 수 있다. 참가자들은, 과거 ‘제국 일본’의 영역에서 민족과 계급, 인종, 젠더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루어진 성 정치의 역사를 공유하고는 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기억에 기초하여 역사 쓰기를 하는 연구자들이다. 각각의 다른 체험과 관점, 연구 환경에 따라 이 주제를 고민했던 연구자들의 토론 속에서 하야시 요코는, 1945년 탈식민 이후에도 동아시아에서 지속되고 있는 식민주의를 돌파할 수 있는 실천적 논의를 기대했던 것 같다.
지(知) 없는 앎: 토론을 불가능하게 하는 ‘위안부’와 ‘공창’의 ‘미싱 링크’
저자와 토론자들 사이에 공유된 문제는, 공론장 안에서 제국 일본의 공창제에 대해 지식과 관점이 없는 채로 ‘앎’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흥미 위주의 접근이나 일본군‘위안부’ 제도와의 차이를 강조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19세기 후반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제국주의의 확장과정에서, 일본은 이에(家) 제도를 확립하여 성별 규범을 이분화하고, ‘공창제’를 시행하여 저변 여성의 몸을 통해 군인이나 남성 노동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했다. 이러한 성적 ‘위안 시설’은 일본이 새롭게 진출하여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지역, 어디에서나 설치되었으며, 일본군 ‘위안소’의 개설은 그러한 성 관리 정책의 정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논의는, 시기나 지역의 연속적인 성격이 단절된 채, 1945년 이전 일본 ‘내지(內地)’나 식민지 조선 이내로 한정되어 논의되어 온 측면이 크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서는 일본의 ‘외지(外地)’, 곧 식민지에 대한 일본의 성관리 정책을 중심으로 공창제의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식민지 공창제의 민족 차별 측면이 부각되어 이해되었을 뿐, 이것이 제국 일본 내 각 지역의 정치적 성격과 어떻게 연계되어 변신을 거듭하면서 기만적인 명분을 만들어 갔는지 파고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각 지역 공창제의 역사적 성격을 해명하려는 학술 작업도 소수의 연구자에 의해 이루어져, 서로 교류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는 기회도 갖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뒤에는, 이 문제의 역사적 실태와 성격에 대한 지적 공유 노력은 뒤로 밀린 채, 대중적으로 ‘지 없는 앎’이 확산되었다. 이 틈을 파고들어 역사부정 세력이 “위안부는 공창이고 따라서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피해자와 활동가들을 공격했다. 이에 맞서 나온 논리가 “위안부는 공창보다 더 폭력적인 상황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위안부’와 ‘공창’ 사이의 설명은 휘발된 채 그저 ‘같다, 다르다’는 공박만을 반복하는 것이다.
송연옥은 ‘위안부’와 ‘공창’ 이해의 협간에 있는 ‘미싱 링크’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어느 쪽이든, 각 세력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불편한 자료나 사례는 외면하고 ‘위안부’와 ‘공창’에 대한 정의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국의 성정치 역사를 내파할 수 있는 토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존재를 포용하는 패러다임의 전환, 새로운 사상과 사상”이 요청된다.
일본군의 점령과 성적 위안시설, 러일전쟁 시기의 안둥(安東)
중일전쟁 시기의 상하이
서로 ‘링크’될 때의 윤리와 책임
서평회는 청자를 포함한 참가자의 적극적인 토론 속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의식하지 못했던 각자의 ‘미싱 링크’ 주제를 각성하고, 오늘날 글로벌 사회의 전쟁과 폭력, 성 착취와 연계되는 실천적 의미를 공유하면서, 잔뜩 과제를 받았다. 이외에도 나는 서평회와 같이, 규모가 작은 공개토론회의 의미에 대해서도 실감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저자의 학자적 내공과 실천성이 담긴, 잘 쓴 책 한 권을 꼼꼼하게 읽고 ‘미싱 링크’를 함께 이야기하며 서로 ‘링크’될 수 있었다. 이는 폭력과 소외의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연구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참가자들이, 서로에게 연구 윤리와 책임, 그리고 성실한 태도를 묻는 시간이기도 했다.
ㅣ일러두기ㅣ 지면 관계상 외국인 인명의 외국어 병기를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