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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포커스
키워드로 보는 일본 교과서 문제, 실상과 허상
  • 남상구 재단 연구정책실장

2010년 이후 일본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에 따른 한일 갈등이 봄철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미래 세대가 뭘 배울지 ··· ‘만행더 은폐한 일본 교과서”(MBC, 3.22.),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내용 개악 심화’ ··· 독도 소유권 주장도 늘어”(경향신문, 3.22.)라는 국내 언론 기사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교과서 왜곡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렇게 이삼일 보도된 후에는 일 년은 잊혔다가 다음 해 봄이 되면 문제가 불거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 역사 교과서 = 왜곡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20231012일 발표된 한국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겐론(言論)NPO의 한일 국민 상호 인식 조사를 보면, 한국은 한일 역사문제와 관련하여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를 꼽고 있다.

 

그래프

 

그런데 우리는 정작 일본 교과서 문제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일본 교과서 문제의 실상과 허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상으로 한 교과서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다.

 

 

‘1%’ Vs ‘98.9%’

 

올해 일본 정부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지유샤(自由社)와 이쿠호샤(育鵬社) 교과서다. 두 교과서가 주목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본 아이들이 이러한 교과서로 배우면 한국에 대해 편견과 불신을 갖게 된다는 데 있다. 두 교과서의 한국사 기술 왜곡은 큰 문제다. 그런데 두 교과서는 현재 교육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학생이 사용하고 있을까? 채택률을 보면 지유샤는 0.04%, 이쿠호샤는 1.1%. 권수로 하면 1,155,000권 가운데 약 12,000권 정도가 된다. 채택률이 높은 교과서는 도쿄쇼세키(東京書籍) 52.5%, 데이코쿠쇼인(帝國書院) 25.2%, 교이쿠슛판(敎育出版) 11.4%, 니혼분교슛판(日本文敎出版) 7.7% 등이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 사용되는 이들 교과서에 한국사가 어떻게 기술되어 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 관련 기술을 보면, 도쿄쇼세키는 1905년 외교권 박탈, 1907년 황제 강제 퇴위 및 군대 해산, 한국의 저항운동, 무력에 의존한 식민 지배, 조선의 문화와 역사교육 제한, 토지조사사업 실시에 따른 농민의 토지 상실 등을 기술하고 있다. 반면 지유샤는 한국 식민 지배에 대한 열강의 승인, 개발과 근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교육에 대해서도 도쿄쇼세키는 동화정책의 하나로 일본어를 교육했다고 기술하는데, 지유샤는 일본이 한글을 보급했다고 기술한다. 도쿄쇼세키 채택률은 52.5%이고 지유샤는 0.04%. 나머지 교과서도 이쿠호샤(1.1%)를 제외하면 구체적인 기술에는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도쿄쇼세키와 같은 흐름으로 기술되어 있다.

도쿄쇼세키 교과서 강제병합 관련 기술

도쿄쇼세키 교과서 강제병합 관련 기술

 

 

나쁜 개입’ Vs ‘좋은 개입’ Vs ‘틈새

 

채택률은 1.1%에 불과한데도 왜곡 기술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교과서는 검정제도를 통해 발행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교과서 집필에 필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따라 출판사가 교과서를 제작하면, 이것을 정부가 심사한다. 이 심사를 통과해야만 교과서로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정부의 책임이 발생한다.

일본 정부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검정제도를 일본의 가해와 피해 기술을 억제하는 데 이용했다.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郎)1965년 교과서 검정제도는 출판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 교과서 기술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32년에 걸친 소송은 패배했지만, 일본 정부의 개입이 줄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정부는 검정제도를 통해 직접 교과서 기술에 개입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교과서 집필 기준이 되는 교육과정과 그 해설을 개정해 교과서에 기술하도록 했다. 독도와 센카쿠 제도(尖閣諸島, 댜오위다오)기술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2014년에는 검정기준을 개정하여 미확정인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단정적인 기술을 하지 말고 통설적인 견해가 없는 숫자의 경우 이를 명기할 것,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를 반영할 것을 지시했다.

한편, 일본 정부한테 교과서 기술에 적극 개입하여 잘못된 기술을 수정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1986년 검정을 통과한 신편 일본사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비판을 제기하자, 일본 정부가 개입하여 기술을 수정했다. 2001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로 표기)이 만든 교과서는 137곳에 대한 수정 요구를 수용한 후에야 검정을 통과할 수 있었다. 검정을 통해 최소한이나마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 피해와 관련된 기술이 들어갔다.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가 요구하고 있는 것도,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 관련 기술에 일본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좋은 개입을 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검정은 국가가 특정한 역사인식과 역사 사실 등을 확정한다는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 아니며, 검정 시점에서 객관적인 학문적 성과와 적절한 자료 등을 근거로 결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과정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할 내용으로 지정한 것 이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추가로 기술하도록 지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교육과정에 반드시 다루도록 한 내용을 기술하면, 추가로 기술하는 것에는 개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교과서 기술이 개선되거나 후퇴할 수 있는 틈새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임에도 출판사별로 커다란 차이가 나는 이유다. 마나비샤() 교과서는 이 틈새를 잘 활용하여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과 식민지 지배 문제점, 3·1운동을 기술하는 데 4쪽을 할애했다. 이와는 반대사례도 있다.

 

사진4_일본교과서(마나비샤)의 3.1운동 관련 서술

 

마나비샤 교과서 3.1운동 관련 기술

 

 

애국주의’ Vs ‘국제주의

 

1945년 일본이 패전한 이후 일본 역사 교과서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관련 기술을 보면, ‘국제주의애국주의가 맞부딪치는 가운데 피해 사실 기술이 늘어나고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애국주의흐름이 강해지면서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기술 등이 축소되고 후퇴한 측면도 있으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인한 피해 사실을 기술해야 한다는 국제주의의 기본 틀은 유지되고 있다.

지난 3월 검정 결과에 대해 모든 국내 언론은 일본 교과서의 한국사 기술 내용이 악화되었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새역모도 성명을 발표해 자학사관에 기초한 반일 교과서 문제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상반된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일본 교과서에 애국심을 내세운 기술 뿐 아니라 국제이해를 내세운 기술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러일전쟁 관련 기술을 비교하면, 지유샤는 국가의 운명을 건 러일전쟁이라는 제목의 본문 2쪽과 러일전쟁에서 싸운 일본인”, “세계가 본 러일전쟁이라는 칼럼 3쪽을 러일전쟁 기술에 할애하고 있다. ‘세계를 뒤바꾼 러일전쟁이라는 소제목에서는 일본의 승리가 서양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던 민족들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고 기술한다. 애국심을 최대한 끌어내도록 구성되어 있다.

 

사진5_일본교과서(지유샤)의 러일전쟁 관련 기술

지유샤 교과서 러일전쟁 관련 기술

 

반면 도쿄쇼세키는 러일전쟁 후의 일본과 국제사회라는 소제목에서 국민 중에는 제국주의 국가의 일원이 되었다는 대국의식이 생겨나 아시아 각국에 대한 우월감이 고조되었다는 사실을, ‘아시아에서 본 러일전쟁이라는 소제목에서는 인도 네루가 일본의 러시아에 대한 승리가 얼마나 아시아의 각 국민을 기쁘게 하고 날뛰게 했는지 우리는 보았다. 그러나 그 직후의 성과는 소수의 침략적 제국주의 각국의 그룹에 국가를 하나 더 추가한 것에 불과했다. 이 씁쓸한 결과를 가장 먼저 맛본 것은 조선이었다. 일본의 발흥은 조선의 몰락을 의미했다라고 발언한 것을 기술한다. 국제이해를 중요하게 생각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