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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심화되는 일본의 역사왜곡 ⋯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확대
동북아포커스 2 갈수록 심화되는 일본의 역사왜곡 ⋯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확대 매년 3월 말,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과서 검정발표를 한다. 매년 되풀이되기 때문에 ‘캘린더 변수’로 불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3월 28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2024년부터 사용할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발표는 2022년 4월과 5월 검정신청이 완료된 교과서에 관한 것으로 2017년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바뀐 이후 두 번째 검정발표다. 내용 면에서는 2019년과 크게 바뀐 부분은 없다.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가 외교적 이슈가 된 것은 지난 2010년으로 독도 관련 지도 및 기술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초등학교의 독도 관련 기술은 2010년 검정교과서에는 한 종류에 불과했지만 일본은 검정 발표 때마다 독도 왜곡을 심화시켰다. 2014년에는 ‘불법 점거’, ‘일본의 고유영토’ 등의 기술로 확대했고 2019년에도 지도와 사진 등 시각자료를 비롯해 독도기술이 상대적으로 증가했다. 일본 초등학생에게 “한국이 현대에 독도를 불법 점유하고 있어 일본의 영토인 독도를 돌려 달라고 한국에 항의하고 있다”고 가르친다면 일본 학생들은 한국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될 수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역사를 처음 배우는 일본 어린이들에게 왜곡된 역사인식을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사회과 교과서의 한국 관련 기술은 일본의 역사인식을 읽을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여기서는 일본의 교과서 관련 정책을 살펴보면서 2023년 검정을 통과한 사회 교과서 3~ 6학년 14종 중 독도 관련 기술과 한국사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자 한다. 검정을 신청한 출판사는 도쿄서적과 교육출판, 일본문교출판이다.
조윤수 재단 국제관계와 역사대화연구소 소장
제국주의 일본의 ‘왕도낙토’ 만주: 침략과 ‘공존’, 강제의 중층적 지대
제국주의 일본의 ‘왕도낙토’ 만주: 침략과 ‘공존’, 강제의 중층적 지대 1945년 8월 일제의 패전과 우리의 해방은 만주지역 한인들에게도 새로운 삶에 대한 갈림길을 결정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해방 전 중국 동북지역에 거주했던 한인 가운데 약 100만 명은 한반도로 귀환했고 나머지는 그대로 정주하면서 1952년 중국공민(조선족)의 지위를 얻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조선족’들은 한국의 각 산업 현장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약칭 연변)의 조선족들이 한국사회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들의 문화는 한국과 중국의 차이를 좁히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만주는 역사적으로 중심과 변연(邊沿)을 반복했던 공간이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왕조와 근대국가의 생성과 소멸 속에서 한국인에게는 ‘고구려의 기상’이 서린 곳으로 강조되었다. 일본인들에게는 한 번쯤 ‘제국의 꿈’을 실현했던 곳이었다. 중국사에서는 소수 민족이 흥기한 곳이자 가깝게는 청나라의 발상지로 인식, 강조되었던 지역이었다. 오늘날에는 중국이 ‘동북진흥전 략’을 야심차게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의 애국지사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 세계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쳐 나갔다. 그들의 활동무대 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일제와 싸웠던 곳이 바로 만주지역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만주지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국인들에게는 중요한 지역으로 각인되어 있다.
김주용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부교수
고구려 부뚜막은 아궁이 방향이 다르다고?
고구려 부뚜막은 아궁이 방향이 다르다고? K-Contents가 된 찜질방 = 온돌 찜질방은 한국을 알리는 문화 콘텐츠 가운데 하나다. 정부도, 민간도 찜질방을 K-Contents로 지목하고 알리려 애쓰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알게 모르게 한국인이 사는 곳에는 찜질방이 생기고, 한국인이 아니면서도 바닥이 뜨끈한 사우나를 즐기는 기분으로 이런 곳을 찾는 현지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찜질방이야말로 조용히 확산되는 K-Contents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찜질방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바닥 난방인 온돌 원리로 만든다. 한국의 온돌은 북옥저에서 시작되어 고구려로 전해진 바닥 난방 시스템이다. 온돌은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불기운이 방바닥 아래 설치된 여러 줄의 고래를 타고 돌면서 고래 위에 설치된 구들돌을 데운다. 그러면 구들돌 위에 얇게 덮은 흙바닥이 데워져 그 위에 누운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원리를 일상 주거 난방에 적용한 것이다. 주택의 방이 여럿일 때, 부엌과 잇닿아 있지 않은 방은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불기운이 바로 고래를 타고 돌지만, 부엌과 잇닿은 방은 아궁이의 불기운이 부뚜막에 올린 솥도 데우고, 부뚜막에 잇대어 설치된 방의 고래도 데우게 된다. 한 번 불을 때 취사도 하고, 난방도 하게 되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부뚜막 아궁이의 불은 활활 타지 않는 게 좋다. 아궁이에 넣은 장작이 너무 빨리 타면서 높은 온도를 내면 솥 안의 국도 빨리 끓고 밥도 바로 되겠지만, 고래를 도는 불기운도 너무 세져 구들돌이 필요 이상으로 뜨거워질 수 있다.
전호태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국속을 복슈허고 지구상 인류에 평등허기를 위허여” - 프랑스의 독립운동가 홍재하 -
근현대 코리안 디아스포라 “국속을 복슈허고 지구상 인류에 평등허기를 위허여” - 프랑스의 독립운동가 홍재하 -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 세계열강을 상대로 펼친 최초의 외교는 1919년 파리강화회의 기간 동안 조국의 독립청원과 일본의 무자비한 비인륜적 만행을 고발했던 파리위원부의 활동이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망명정부의 독립운동가를 반겨줄 리 없었던 프랑스에서 김규식, 황기환, 이관용 등 파리위원부 인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인물이 있었는데, 홍재하(洪在夏, 1892~1960)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 내 한인 노동자와 유학생들로 구성된 최초의 한인단체 재법한국민회(在法韓國民會)를 이끌었다. 비록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단체는 아니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한 그들의 순수한 일념만큼은 누구 못지않았다. 홍재하는 1919년 11월 프랑스 스위프(Suippes)로 이주한 이래 1960년 사망할 때까지 40여 년을 프랑스에 거주했다. 그는 재법한국민회 회장으로 파리위원부에 대한 지원활동을 전개했고, 한국민국제연맹개진회를 결성해 훗날 펼쳐질 파리위원부의 외교에 대비했다. 1923년에는 재법한국민회를 개편해 파리한인친목회를 조직하면서 독립운동과 재불 한인사회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이장규 프랑스 파리 디드로 7대학 한중일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