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전에 독일 도시 본(Bonn)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의 여성단체가 평화운동에 대한 강연을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앳돼 보이는 두 여대생을 만났는데,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내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이렇게 국제화되었구나 싶어서 나는 일순 감회에 젖었다. 지난 20년 간 노력해온 한국 여성운동의 성과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아일랜드의 벨파스트(Belfast)에서 열린 세계여성사대회의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대회에서 어느 일본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발표하였는데, 그 토론과정에서 내가 한국의 여성단체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고 있는 수요시위가 400회를 넘었다고 말하자, 발표장에는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모두 말을 잃은 것 같았다. 곧 어떻게 400회의 집회를 할 수 있느냐는 감탄이 이어졌다. 이제 이 행사가 어언 700회를 넘었다. 이 여성운동과 시민운동의 열기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였고,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의 채택률을 떨어뜨리는데 크게 일조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시민운동이 지닌 역동성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후소샤 교과서의 저조한 채택률은 일본 시민운동의 풀뿌리 조직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말이다.
지난 20여 년간 동북아 역사분쟁을 둘러싼 갈등이 언론과 민간단체에 의존하였다면, 이제 동북아역사재단의 출범은 한국의 대응이 과거보다 한 단계 진전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민간단체들이 힘겹게 해왔던 활동의 상당 부분을 재단이 맡게 되었고, 이제 적절한 분업이 중요해졌다.
역사 갈등 해결을 위한 역할 분담을
동북아역사재단이 민간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도 해야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구의 세분화와 전문화를 통해 학문적·이론적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일이다. 민간단체들의 경우, 실증적인 조사와 정교한 이론적 논의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동북아역사재단은 역사분쟁과 관련된 상세한 조사, 국제적인 연구 동향의 분석과 소개, 국제적인 학술교류와 그를 통한 새로운 담론의 확산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동북아역사재단이 학문연구를 조직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주기 바란다. 동아시아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작업에 학자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개별 학자들의 산개된 연구보다는 조직된 학술활동이 일국 내에서 혹은 국제사회 내에서 담론을 주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례를 보아왔기에, 학문의 훌륭한 조직화는 우리의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부탁하고 싶은 점은 연구 성과를 보다 합리적으로,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는 일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의 탄생 이전에도 역사분쟁과 관련하여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가동되기도 하였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집행되고 그에 값하는 연구 성과가 도출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국내외적으로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어 왔다. 그만큼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사후평가가 필요하다.
위에서 열거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동북아역사재단은 '정치화'의 위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국가기구의 일환으로 탄생한 만큼 재단의 활동이 정치권의 단기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기울기 쉬운데 이에 대한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 오히려 역사분쟁의 쟁점을 학자들의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서 검증하고, 이를 토대로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 설립을 위한 장기적인 전망을 여는 노력이 요청된다.
연구 활동에서 공세적인 국제화를
동북아역사재단을 향한 또 다른 기대는 연구나 활동의 공세적인 국제화이다. 지난 세월 동안 영토나 역사분쟁을 둘러싼 갈등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해당국가의 정치권력이 이를 진지하게 수용하지 않는 데에서 기인하지만, 그 외에도 그 국가에서 학자들의 자율성이 약하거나 보수화된 대중여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지식권력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 학자들의 입을 빌려서 동아시아 분쟁을 담론화하는 작업이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로 외국의 학자들을 초빙하여 개최하는 국제학술행사 뿐 아니라 소위 중심부 국가에서의 학술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아시아사' 교과서 개발에 대한 지원이다. 노무현정부에서 사실상의 8차 교육과정이 확정되어 역사교육이 대폭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구어낸 중요한 성과는 고교 2·3학년 과정에 '동아시아사'를 심화선택과목으로 배치한 것이다. 이렇게 과목이 개설되니, 교과서의 내용구성과 집필을 둘러싼 걱정이 늘어났다. 출범 시에도 거듭 강조된 대로, 동북아재단이 동북아의 새로운 역사서술과 공동의 정체성 추구를 선도하고자 한다면, '동아시아사'의 내용을 새로이 구성하는 데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교과서의 내용구성과 집필은 교육인적자원부의 몫이기는 하지만, 많은 교과목을 감당해야 하는 부처의 여건 상 '동아시아사'에 투여할 수 있는 관심과 에너지는 제한적이다. 재단이 이 새로운 교과의 내용과 교육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작업에 적극적 참여하고 더불어 재단이 역사교육에 대한 관심을 좀 더 높일 것을 부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