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은 독일 라벤스브뤽 기념관 (Ravensbruck Memorial Museum)의 자료 협찬을 받아'한ㆍ독 성노예전-일본군'위안부'와 나치 독일수용소의 강제 성노동'전시회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제12옥사에서 11월 15일부터 30일까지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하에서의 대표적인 여성 인권 유린 사례 중 하나인 일본군'위안부'와'나치 독일 수용소의 강제 성노동'을 비교ㆍ전시함으로써 전시(戰時) 하 여성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목적에서 기획 되었다.
또한 동일 문제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태도를 비교하여,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및 사회에 진정성 있는 문제 해결 노력을 촉구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나치 독일에 의해 체계적으로 자행된 강제 성노동 형상화
독일 측 자료는 대부분'나치 독일수용소의 강제 성노동'을 주제로, 올 1월 14일부터 9월 30일까지 독일 라벤스브뤽 기념관에서 전시되었던 것으로, 한국 관람객을 위해 일부 내용을 빼고 새로운 부분을 추가한 것이다.
라벤스브뤽 전시는 지난 2005년에 오스트리아에서 비엔나 대학의 학생그룹 '전시자(Aussteller)'들이 이 주제로 처음 전시하였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예술가 그룹'메모아트' (MemoArt)와 베를린 예술대학'컨텍스트 속 예술 연구소'의 카트야 에더만 (Katharina Jedermann) 그리고 역사학자인 크리스틀 빅커트(Christl Wickert)가 주제를 확대하여 공동 작업한 것이다.
주요 전시 내용은 '나치의 여성상과 성, 그리고 출산 장려 및 이중적 매춘 정책' 에서는 나치 친위대가 수용소 수감자들의 노동능률 향상과 동성애 방지를 위해 대규모 유곽(brothel)을 운영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강제수용소 포로들 간의 위계구조'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인종적 기원 및 종교적 선호 등의 기준에 따라 포로들을 구분하여 특혜를 부여하거나 차별화함으로써, 포로들간의 연대감을 약화시키고 이간시키려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강제수용소 유곽의 설치와 포상 규정'부분은 나치 친위대가 총 10개의 강제수용소 유곽을 설치하여 포로들에 대한 포상제도의 하나로서 유곽 출입을 허용했는데 '범죄자 출신'의 간부포로들이 주로 출입했음을 밝히고 있다. '강제수용소 유곽에서의 생활'에서는 성노동을 강요당한 여성들이 자주 성병과 임신중절에 시달렸으며 심리적으로 황폐해있었고 다수가 병으로 죽거나 의학 실험용으로 이용되거나 노동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살해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유곽 출입 신청-요금-절차'는 유곽에 출입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포로들이 유곽 출입 신청을 하면 수용소 사령부에서 출입 허가를 결정하여 점호시 공개적으로 전달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외'독일의 1933-45년과 강제수용소 조직', '라벤스브뤽 여성강제수용소', ' 수감자들의 출신 성분', ' 수용소 내 폭력과 테러', '라벤스브뤽 기념관의 역사'등의 패널을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하여, 한국 관람객들이 전시 주제의 배경이 되는 강제수용소의 설치와 실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패널 외에도 당시 수감 여성들이 신었던 나무 신발, 깡통 식기 그리고 수감여성들이 서로에게 우정의 표시로 만들어 선물했던 수공예품, 유곽 출입 허가 요청서 및 허가서 등의 실물도 전시, 관람객들이 전시 주제를 보다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구성하였다. 독일 전시는 언어가 주 매체이며 비회화성을 특징으로 하기때문에 피해자 사진 등은 한 장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신 강제 성노동이 나치 독일에 의해 체계적, 조직적으로 자행되었음을 공간적으로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내외 일본군'위안부'자료 집대성
일본군'위안부'부분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신대 문제연구소, 나눔의 집, 여성가족부 등에서 자료를 수집, 정리하였는데, 사진 200여 점과 삽화 10점, 그래픽 10점, 피해자 증언을 담은 영상 3점 등을 전시하였고, 위안소 건물과 성병진료소를 실물로 재현하였다.
위안소는'위안부제(制)'의 강제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이기 때문에 그 구조와 실태 등을 자세하게 전시했고, 중일 전쟁 후 중국,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각지로 확대 설치되어 간 사실을 지도에 표시했으며, 당시의 위안소나 위안소가 있던 장소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을 다수 배치하였다.
전쟁의 종결에도 불구하고 귀환이 여의치 않아 강제 동원지에 잔류할 수밖에 없었던 위안부 피해자들이 적지 않았고, 용케 귀환한 경우에도 그 후유증으로 고통 받았는데 이러한 피해자들의 힘든 현실을 삽화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런 가운데서도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위안부였음을 고백하면서 진상 규명과 보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적극 벌여나가는 모습을 '이제는 말하리라'는 섹션에서 다루었으며, 이에 대한 일본과 한국 정부의 대응, 그리고 국제사회의 움직임 등을 정리하였다.
일본의 대한 과거에 솔직한 인정과 반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길
이번 일본군'위안부'부분 전시는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기 보다는 관련 시민단체나 연구자들이 이미 발굴한 자료를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일본군과 정부의 관여와 책임을 일본 측 공문서를 통해 분명히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심신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오신 '위안부' 피해자들의 회한과 25년 이상 끈질지게 계속되고 있는 진상규명, 사과, 보상 요구 활동을 되짚어 봄으로서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가 인권마저 도구로 전락시키는 전쟁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아직도 과거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성찰을 촉구하는 계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특집Ⅰ-한ㆍ독 성노예전 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