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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고
[역사기행 -일본의 전쟁 관련 시설 답사] 일본인들의 근대 전쟁 기억과 피해의식
  • 제1연구실 연구위원 장세윤

지난 10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일본의 주요 침략전쟁 관련 시설 및 전시관, 기념관, 유적 등을 조사하기 위해 일본 서남부 지역과 토쿄(東京) 등지를 다녀왔다. 이번 출장은 필자를 비롯하여 제1연구실의 도시환 연구위원, 외부의 유지아 중앙대 강사 등 3명이 동행하였다. 일본현대사 전공의 유지아 선생이 현지 안내 겸 조사자로 동행하여 빡빡한 일정의 출장기간 내내 큰 도움이 되었다.

지란 특공평화회관과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의 전시내용

'지란특공평화회관' 입구에 한국어 안내문이 녹음된 휴대용 설명기가 있어 그것을 휴대하고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놀라운 사실은 자살특공대인 가미가제대원들이 주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한국인 여성의 안내 설명은 매우 낮고 조용하면서도 애잔한 목소리로 나오는데, 그들이 평화를 사랑하고 낭만이 있었으며, 어쩌면 전쟁의 희생양이라기보다는 '멋진 젊은이들'처럼 비칠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이 회관 입구에는 현재 토쿄도지사(東京都知事)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제작 총지휘를 맡은 "나는 천황을 위해 죽으러 간다"라는 영화 제작에 사용되었던 전투기 모형과 안내판도 있었다. 주목되는 점은 많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모형전투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이었다. 의식, 무의식적으로 가미가제대원들의 죽음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 회관 내부의 설명판에는 "연합군의 맹격한 진공작전에 세계사상 유례없는 특공작전을 전개"했다고 하여 일본이 아시아와 미국을 침략하여 전쟁을 일으킨 사실은 전혀 설명되지 않고 있었다. 지란에서 출격한 1천여 명의 가미가제 대원 가운데 박동훈(朴東薰, 창씨명 大河正明), 탁경현(卓庚鉉, 창씨명 光山文博) 등 5명의 사진과 유품이 전시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관람 당시 많은 초·중·고교 학생들이 와서 가미가제 대원들의 활동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노인들이 학생들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을 보았다. 들어보니 '평화'를 기원하기보다는 '위대한 전사'로 부각하고 있었다. 우려되는 광경이었다. 10월 26일 방문한 히로시마(廣島)는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이다. 여기에서는 원폭투하 당시 피해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원폭돔'과 평화기념자료관을 둘러보았다.
평화기념자료관은 원폭 투하 직후의 폐허가 된 히로시마시가와 처참한 모습의 피폭 일본인들, 당시 원자폭탄에 피폭된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곳에는 '조선인·중국인들의 강제연행', '외국인 피폭자,' '한국의 피해자진료소 개설' 등의 내용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평화를 기념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비인도적인' 원자폭탄 투하와 애꿎은 일반 서민들의 피해를 강조하려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군과 일반인을 구별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개된 미국의 무차별 폭격과 원자폭탄 투하는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침략전쟁과 각종 만행, 그에 따른 이웃 아시아인과 미국 등의 피해사실은 전혀 전시되지 않고 있다.
히로시마 부근에 있는 구레(吳)의 야마토(大和) 박물관은 일본 최대의 전함 야마토호의 1/10 모형과 구레에서 생산된 각종 군함 자료를 전시하는 곳이었다. 미군의 공습으로 침몰하고 말았지만, 야마토호의 위용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는 여전한 듯 했다. 예를 들면 '야마토뮤지움 벗의 모임(友"の會)'과 같은 동호회가 조직되어 이 박물관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히로시마처럼 자신들의 피해를 강조하는 인식은 토쿄의 쇼와칸(昭和館)과 쇼케칸(承繼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쇼와칸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겪은 일본인들의 어려운 생활모습을 전시한 곳이었다. 쇼케칸은 일종의 '전상병자사료관(戰傷病者史料館)'인데, 전쟁에 동원되어 부상당한 사람들의 기록을 전시, 보존하는 곳이었다. 이 두 곳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의 일본인 및 전상병자들의 어려웠던 생활모습과 관련 유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야스쿠니신사 유슈칸 전시내용과 특징

10월 29일에는 그 유명한 야스쿠니신사를 찾아갔다. 이 신사에는 A급 전범은 물론, 한국인과 대만인 등 일본의 전쟁과 침략에 강제로 동원된 아시아인들까지 합사되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신사 경내에 있는 유슈칸(遊就館) 내부의 전시내용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침략전쟁의 미화, 야스쿠니신사 관련 내용과 유물이 대부분이었다. 한국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내용은 2층 전시관 초입의 소위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신라정벌' 내용, 임진왜란의 주역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대한 설명, 1910년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 일본의 아시아 침략으로 아시아인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주고 결국 아시아 여러 나라가 독립하여 민주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고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침략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미화하는 등 일본인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주도하고 있었다.
유슈칸 내에서 상영중인 "우리들은 잊지 않는다"라는 영화는 청일전쟁 이후부터 미국을 침략한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는 커녕, 주위 각국에 대한 침략을 미화하고 침략전쟁에 가담한 일본군 장병들을 영원히 기억한다는 내용의 선전영화였다. 더구나 토쿄국제재판 영화는 일본의 패전 직후에 치러진 연합국 주도 국제재판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침략전쟁 당시 전쟁을 주도했던 천황과 고위관료, 정치인, 고급 장교 등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 일반은 침략 주도세력에 동원되고 미군의 공격에 무력하게 노출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다수의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전쟁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전쟁기억 방식과 의식은 이들 전쟁관련 시설들을 통해 제고되고 그릇된 역사인식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인식에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 이번 일본 출장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