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은 눈부시게 부상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때에도 중국은 8.7%에 달하는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지난해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여파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경제적 성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물론 현재 미·중관계는 글로벌 수준에서 종합국력의 차이 때문에 당분간 세력전이(Power transition) 양상이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중국 주변지역의 핵심인 동북아와 한반도에서는 사실상 G-2체제가 형성되었다. 이제 중국은 이 지역에서 미국이 만들어 놓은 게임 규칙을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자 한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 대응이나 '거친 외교(Flown diplomacy)'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한·중관계, 보다 적극적인 관계발전의 모멘텀을 찾아야
이러한 중국 부상은 한·중관계에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중국은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핵심적 행위자다. 더구나 미국의 영향력 하락과 함께 중국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제영역에서도 한국 경제성장은 중국효과에 기인한 바가 크고 앞으로도 버팀목이 될 공산이 크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25%에 달했지만, 무역다변화를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한·중교류는 모든 영역에서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며, 중국인들 사이에 한국여행은 유행이 되었고 한국에서 '중국 붐'도 식지 않고 있다.
이러한 중국 부상과 한·중관계 밀착은 다른 한편 한국 대중국정책의 전략적 난이도를 높이고 있다. 더구나 한반도에서 미·중 간 힘의 균형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익숙한 방식대로 우리가 미국에 대한 편승정책을 추구하거나 '균형자(Balancer)' 역할을 자임하기에는 현실이 간단치 않다. 여기에 2012년 체제를 앞둔 미국과 중국의 국내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한반도 문제는 미·중 간 전략적 이해라는 틀 속에서 조정될 개연성도 나타나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가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 기대와는 달리 북·중관계는 공고화되었고, 최근 한·미관계도 '더 이상 좋을 수 없다'고 평가하지만, 북·미관계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중관계에서 몇 가지 원칙과 실행과제를 새롭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한·중관계 발전의 대원칙은 양자관계를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2008년 한·중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지만, 아직 전략 내용을 채워가고 있는 초보적 단계다. 이것은 한·미동맹, 북한문제, 역사와 영토문제, 이데올로기 문제 등 인식차이로 인해 공동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공동회피(Common aversions) 프레임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식차이가 프레임으로 고착될 경우 이를 해결하는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숙원인 한반도 통일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나 한·중관계의 밀도를 고려할 때 중국을 우회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보다 적극적인 관계발전의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선 새로운 인식 필요
내년은 한·중 간 외교관계를 수립한지 20년이 되는 해다. 인간관계에 비유하면 성숙하고 책임있는 관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의 대중국정책도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아나가는 구동존이(求同存異)를 넘어 적극적으로 차이를 줄여나가는 자세와 '중국위협론'이나 '중국기회론'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선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우선 공진(共進 : Co-evolution)의 자세다. 한·중 양국이 멀리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한다. 둘째, 고정관념을 깨고 낡은 생각을 넘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대담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셋째, 트리플 윈(Triple win)이다. 한·중관계는 양자관계의 이익을 넘어 지역의 국제문제에도 기여해야 한다. 넷째, 복합적 사고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각축하는 림랜드(Rimland)이고, 북한을 통해 세계와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러한 전략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 부상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따라서 한국의 국가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파악하여 대응, 적응, 순응하는 한국외교의 구체적인 위상을 정립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첫째, 한반도에서 중국변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미·중 간 중첩(Intersection)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에 북한문제 조기 해결을 위한 적극적이고 유연한 조치가 필요하다. 이것은 한반도문제에서 한국의 주도권과 대중국정책의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미·중갈등이 한반도로 파급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또 하나의 헤징(Hedging)전략은 다자안보체제를 적극적으로 기획하는 일이다. 이미 동아시아에서는 동맹 네트워크만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따라서 소지역협력, 그리고 비전통적 안보문제에 대한 협력 성과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중관계는 중·일관계와 같은 '정냉경열(政冷經熱)'의 낭만적 접근이 통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한국 외교정책이 미국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중국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불식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넷째, 한국의 대중국외교 원칙과 방향을 정립하는 일이다.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역사인식과 같은 가치 영역에서는 양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한편, 다른 영역에서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보영역에서 중간계층을 공고화하여 한국 외교의 이념적 진폭을 줄여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다섯째, 외교적 시스템 정비다. 우선 호흡이 길면서도 섬세한 대중국 전략을 수립하고 컨트롤타워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대중국 실무인력 확충과 정비 그리고 대중국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가 집단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여기에 차관급 전략대화의 내실화, 다층적인 비공식 전략대화의 확대, 중국 내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 설립과 같은 공공외교에 대한 일대 혁신도 필요하다. 여섯째, 새로운 경제관계 수립이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연간 400억 달러 이상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한·중 FTA를 우회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를 현실로 수용하고 기술경쟁력 확보, 인적 인프라 구축, 산업구조 재조정에 대비하는 한편 동아시아 FTA도 기획하는 새로운 경제관계 틀을 선제적으로 제기할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