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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고
비극을 치유하고 평화를 꿈꾸는 섬
  • 박윤조 (한양대 사학과 3)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산, 짜릿한 레저 스포츠로 각광받는 섬 제주. 제주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 뒤에 숨겨진 근현대사 속 제주는 비극, 그 자체였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제주 4·3사건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의만으로는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어난 역사 사건에 다가서기는 어렵다.

가장 먼저 왜 무력충돌이 일어났는지 의문이 생긴다. 1947년 3월 1일은 31절 28주년이었다. 이에 제주도민 중 '민주주의민족전선세력'이 기념 집회를 주최하였다. 이 때 집회를 구경하던 한 어린이가 경찰에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성난 군중이 경찰에 돌을 던지자, 경찰은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했고, 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사상자 12명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주도민들은 경찰과 행정관리, 나아가 미군정을 향한 반발이 커졌고, 결국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은 미군정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무력봉기를 일으켰다. 이에 정부는 진압을 위한 군 병력을 증파하며 강력한 진압작전을 펼쳤고, 결국 8년 동안이나 무력충돌이 이어진 것이다.

미군정과 제주도민 사이에 이렇게 오랫동안 무력충돌이 지속된 원인은 무엇이고 갈등의 뿌리는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일제를 향한 증오가 미군정에 대한 반발로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은 미군에게 오키나와를 점령당한 후 본토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제주를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 보루로 삼았다. 이에 따라 각종 군사기지를 제주 곳곳에 세웠고, 제주도민은 아주 심한 인적·물적 수탈을 겪었다. 일제를 향한 제주도민들의 증오가 컸던 만큼 광복 후 해방감은 아마 상상 이상으로 컸을 것이다. 하지만 해방 후 들어선 미군정은 행정효율을 이유로 일본인과 친일파를 경찰과 관리로 임명했고, 그들은 비리를 일삼았다. 이런 뿌리 깊은 갈등의 골이 있었기에 4·3 사건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었던 것 아닐까.

아직도 4·3사건을 '빨갱이' 소행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제주도민은 빨갱이가 되었을까? 당시 미군정과 우익단체를 공격한 무장대는 500여 명이었는데, 이들은 소위 말하는 '좌익'이었다. 국가는 이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해 경찰병력 1700여 명을 파병했다. 이 과정에서 평범한 제주도민까지 무자비하게 검속되었고, 이에 정부는 실수를 덮고자 무고한 제주도민들을 빨갱이로 만들었다.

아직까지도 4·3사건 희생자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대략 3만 명에서 최대 8만 명으로 추산될 뿐. 당시 제주도민이 30만 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끔찍했던 사건이었는지 알 수 있다. 무장대 500명, 희생자 3만여 명… 이처럼 수많은 희생자와 상처를 남긴 것이 제주 4·3사건이다.

유물을 보여주는 대신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시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 제주 4·3평화공원은 역사적인 아픔을 기억해,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곳이다. 무엇보다 4·3사건을 이해하고, 평화를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다. 4·3평화공원 전시실에는 유물이 많지 않다. 다만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주'島'라는 특수성이 제주 역사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부터 일제에서 해방된 것,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좌절된 제주도민의 꿈을 보여준다. 이후 1948년 4월 3일 무장 봉기 발생 과정과 배경, 사건의 전개 과정, 마지막으로 4·3사건의 상처와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제주도민의 노력을 보여주며 모두가 함께 상처를 치료하길 호소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이야기 속에는 아트워크 작품들이 있다. 유물보다 생생하게 역사를 전달하는 몇 가지 작품 중 이가경 작가의 '불타는 섬'이라는 애니메이션은 4·3사건을 배경으로 당시 평범한 주민의 희생을 담았다. 조각가 고길천의 '죽음의 섬' 역시 당시 주민들이 겪은 비극을 조각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부끄럽지만 사학도인 나는 사실 박물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유물과 설명만 가득한 공간을 돌다 보면 지루하기 일쑤였다. 헌데 제주 4·3평화공원은 내게 설명하려 하기보다 들려주려 했다. 유물과 더불어 전시된 아트워크 작품들은 나를 소름 돋게 하기도, 때로는 가슴 먹먹하게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4·3사건에 관해 하나도 모르고 찾은 이곳에서 앞으로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봄, 제주는 봄꽃과 함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할 것이다. 제주가 주는 아름다움을 본 뒤 잠시나마, '제주에 이런 아픔도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4·3평화공원을 찾을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꿈을 함께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