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와 독도가 한민족의 고유한 영토였다는
것은 한일 양국에서 발굴되고 있는 수많은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한
자신들의 영유권을 주장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한일 분쟁으로 몰고 가 궁극적으로는 국제사법재판소와 같은 제3의 기구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하기에
한일 양국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일본의 주장은 과연 합리적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19세기의 상황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독도 영유권의 실체 파악을 위한 이방인의 시선
19세기는 동서양의 만남과 교류가 극대화되던 시기로 과학적인 탐사를 통해 지도제작이 이루어졌다. 이 무렵부터 일본은 본격적으로 세계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서구의 지도제작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했고, 일본에서 생산된 지리정보를 서구세계에 제공하기도 했다. 19세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와 가장 가까운 과거이며, 전통사회와 현대사회 그리고 서구세계와 동아시아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따라서 소용돌이치는 19세기의 동아시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일본 측 주장의 실체와 한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동해상의 섬들에 관한 정보는 1717년 청나라에서 제작된 「황여전람도」에 반영되어 프랑스 왕실에 전해졌으며, 20년 후인 1737년에는 프랑스 왕실에서 프랑스어판 지도에도 수록되었다. 그리고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유럽과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18세기 후반, 영국과 프랑스 등 해양국들은 중국을 통해 입수한 극동 지리정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극동탐사에 나섰다. 기존 지도에 미처 수록되지 않았던 지리정보는 탐사를 통해 추가되었고, 지도상에는 있으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섬에 관한 정보는 지도에서 삭제되는 등 19세기를 지나는 동안 극동에 관한 지리정보는 점점 정확해졌다. 당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에 관한 지리정보가 활발하게 유통되었으며, 탐험가들의 증언은 지도제작에 곧바로 반영되었다.
독도 영유권의 실체를 보여주는 책
책의 1부는 ‘서구 세계에서 바라본 울릉도와 독도’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동해탐사와 서구인들에 의한 독도의 발견을 다루고 있다. 1장은 18세기 말, 영국 상선 아르고노트호의 동해진출 배경을 다룬다. 아르고노트섬은 독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19세기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명칭 혼란을 일으키는데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기에 독도 연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테마다. 2장은 프랑스 군함 카프리시으즈호의 동해탐사와 지도제작에 관한 내용이다. 카프리시으즈호의 출항 배경과 임무, 동해상으로의 진출 동기와 탐사 과정 그리고 아르고노트 섬의 실존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지도제작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정밀 분석했다. 3장은 러시아 전함 팔라다호의 조선 동해안 탐사와 지도제작을 다루고 있는데 러시아의 조선동해안도에 독도가 한반도 동해상에 표현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러시아 지도를 일본 해군성이 그대로 모사함으로써 사실상 당시 일본 정부는 독도를 한국의 동해상에 위치한 한국령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파트에는 ‘일본에서 바라본 울릉도와 독도’를 다룸으로써 19세기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울릉도·독도의 상황을 객관적인 측면에서 분석해 일본이 주장하는 고유영토론의 모순을 구체적으로 논증하고자 했다. 4장에서는 한일 간의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를 영유권적 측면에서 분석했다. 현재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에 이 지도를 게시하고 일본이 독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지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명확히 표현된 것은 사실이나 조선의 영토임을 암시하는 주기가 명시되어 있고, 일본의 본토나 오키섬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잇는 해상 거리선이 표현되지 않아 근본적으로 일본과는 관계없는 섬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5장은 20세기 초 대표적인 일본의 학술잡지인 『지학잡지』에 수록된 독도 관련 기록을 분석한 것이다. 이 잡지는 메이지 정부의 대외 팽창정책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당시에 발간된 이 잡지는 “1890년대 후반 무렵, 서양 및 일본의 지도에는 없는 ‘새로운 섬의 발견’, 즉 ‘양코’라는 섬을 발견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태정관지령』 등의 자료에 이미 나와 있듯, 당시 일본 당국에서는 익히 알고 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후반 무렵에는 오히려 이 섬에 대한 정보가 퇴보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6장에서는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영유권 주장의 실체와 한계를 다룬다. 일본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즉, 1870년 무렵, 일본 정부는 3인의 외무성 관리를 한국에 파견해 독도가 어느 나라의 영토인지 확인하려 했다. 조사단의 귀국보고서(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에 따르면,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또한 『태정관지령』(1877)에도 ‘독도는 일본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진술되는 등 이러한 모든 일본 측 자료는 일관되게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중반, 일본은 해도 및 세계지도 제작 과정에서 서구의 지도제작 전통과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 명칭에 대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19세기 동안 독도를 지도상에서 누락시키는 오류를 범했고 반세기 동안 그 상태가 유지하다가 1904-1905년 무렵, 러일전쟁을 계기로 독도에 대한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독도의 실체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1905년 일본은 돌연 독도를 시마네현에 다케시마(竹島)라는 명칭으로 불법 편입시켰지만, 사실 다케시마는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울릉도를 가리키던 명칭이었다. 즉, 일본에서는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로 알고 있었는데, 아르고노트섬의 등장과 영국-일본 간의 맵트레이드 과정에서 울릉도는 마쓰시마가 되고, 독도는 다케시마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책은 19세기의 울릉도와 독도 상황을 서구세계와 일본의 관점에서 다룸으로써 독도영유권 논쟁을 한일 양자 간의 구도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서 보다 객관적인 프레임에서 다루고자 했다. 즉, 독도 영유권의 문제를 한일 양국 간의 갈등 양상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 교류사, 탐험사, 지도 제작사적 측면에서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테마로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