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최악의 한일관계’라는 말들이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처럼 사방으로 난무하고 있는 현실이다. 양국 관계가 이러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은 한일 양국의 정체성이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1980년대 말, ‘Japan is Number One’으로 정점을 찍고 곧바로 ‘잃어버린 30년’으로 회자되는 경제적 침체를 겪으며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1965년경,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에서 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진전으로 유사 이래 최고의 자신감을 펼쳐가는 한국. 한일 간의 뿌리 깊은 불화는, 양국의 경제적 반전과 우경화 및 민주화라는 정체성의 엇갈림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018년 동북아역사재단은 현대일본학회와 함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국가 정체성 변화가 동북아 국제관계와 어떻게 연동되어 진행되었는지에 관한 기획 연구를 시행하였다. 오늘날과 같은 한일관계의 전개를 예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과제로 삼은 것은 연구자의 선견지명이라고 할까. 이 연구의 결과는 연구자는 물론, 일반 독자에게도 현재 한일관계의 본질을 이해하고 올바른 대응을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급격히 증진된 일본의 국력 신장은, 결국 역사 속에서 주변국과의 불화로 매듭지어졌음을 선명히 기억한다. 한편, 패전 이후에는 이전의 팽창적이었던 군국주의 국가로부터 돌변하여 내부 지향적인 ‘일국평화주의’ 국가, 달리 표현하면 군사력을 극력 억제하고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여 상업적 활동에 전념하는 ‘통상국가’로 거듭나는 정체성의 변신을 보여 주었다. 이 시기의 한일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냉전(冷戰)이 끝나자 새로운 일본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거세졌다. ‘전후 레짐(regime)으로부터의 탈각’을 통해 ‘적극적 평화주의’를 외치며 집요하게 헌법 개정을 추구하는 정치 세력의 급격한 부상은 일본을 ‘통상국가’로부터 새로운 국가로 변모시켜나갈 것이다.
이 세력이 추구하는 일본은 어떤 국가상일까? 새롭게 출현할지도 모르는 일본의 정체성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현재 불확실한 일본의 미래가 한일관계를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일본의 정체성이 한국에 영향력을 끼쳐온 양국 관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일본의 근현대 역사·정치 관련 8명의 연구자가 다양한 방법론에 기초하여 찾아가고 있다.
일본 우익 단체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준(연세대)은 ‘국가 정체성과 국제관계’에 대해 연구하면서 국가 정체성이라는 개념의 유용성을 강조하였다. 다양한 국내 변수들에 의해 형성된 국가 정체성이 국제관계를 구성하면서 영향력을 미친다는 입장은, 앞으로의 국제관계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영역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영준(국방대)은 ‘메이지 유신 전후 일본의 국가 정체성 변화와 대외 정책’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는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는 러시아 위협론을 제기하면서,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어온 청국과 조선에 대해서는 제휴론 혹은 연대론의 입장을 표명한다. 그는 이와 같은 인식 아래 정한론의 주장에 반론을 펼친다. 한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문명의 기준에서 국제 질서를 미개, 반개(半開), 문명국가로 구분하고, 일본이 반개半開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한다.
정지희(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는 ‘전쟁기 일본의 국가 정체성과 동아시아 질서’라는 주제에 대해 연구하면서 전시 일본의 국방국가 담론을 국가 정체성 구축 시도와 관련하여 검토하였다. 국가 체제로서의 국방 국가는 서양의 근대를 상대화하고, 일본을 현대 국가로 상정하여 아시아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상상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로 작용하였다.
남기정(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는 ‘일본의 패전국 정체성과 한일관계’를 연구하면서 훌륭한 패배자(good looser)와 어진 지배자(good ruler)의 이중 정체성에 대해 다루었다. 정체성에 대한 이중적 인식은 평화조약 준비 과정에 투사되었고, 이 과정에서 확정된 내용은 다시금 이중성을 강화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한일관계에는 훌륭한 패배자 정체성이 적용되지 않고, 어진 지배자 정 체성이 발현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한국은 한일 간의 역사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일본의 ‘훌륭한 패배자’ 정체성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를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찬(동북아역사재단)은 ‘냉전기 일본의 국가 정체성 변화와 동북아 국제관계’에 대해 연구하였다. 냉전기 일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시다 노선’은 동시 대에 이목을 끈 「전면강화」 대 「단독강화」라는 도식의 그늘에 숨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는 아시아의 부재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한 배상의 경감 액수와 지불할 방법은 전후 일본의 조기 부 흥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시아 전쟁 피해국의 용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영(美·英)에 의한 냉전형 강화에 의한 것으로 이로 인해 일종의 뒤틀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정환(서울대)은 ‘탈냉전기 일본의 보통국가 정체성과 복고주의 정체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는 전통적인 현실주의자의 관점에서 안보론을 구축하였고, 적의 잠재적 위협을 막아낼 전력과 동맹에 대한 국가 자율성 제한을 극복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는 탈냉전기 보통국가 정체성을 공유한다. 일평생 바랐던 일본의 안보 체제 변화는 그가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아베에 의해 현실화되고 있다.
조양현(국립외교원)은 아베 내각의 ‘탈(脫전후 체제론’을 중심으로 ‘21세기 일본의 국가 정체성 변화와 한일관계’를 연구한다.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화’ 작업에는 동아시아 안보 질서와 관련한 이중성이 내재되어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일본은 중국이 지역 질서를 혼란시키지 않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견제하는 중요한 세력이 될 수 있다. 반면, 최근의 일본 방위안보정책의 방향은 미·일 안보 협력의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로 향하고 있는바, 이는 지역 내 군비 경쟁과 패권 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
박철희(서울대학교)는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국과 일본의 국가 정체성과 외교 정책 방향’에 대해 연구하면서 국제 정치를 국가 정체성 분석의 틀로 사용할 때 다양한 시각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국가 전략의 정체성은 상수가 아닌 변수라는 점이다. 둘째, 국가 전략의 정체성은 다양한 목소리와 정치적 입장이 반영된 경쟁적인(contested) 성격을 띤다. 셋째, 국가 전략의 정체성은 상대성과 유동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