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갈수록 더해가는 한일 역사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재단은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 중 하나로, 오랜 시간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힘써온 일본의 역사, 정치, 언론·문화 분야 전문가 13인을 선정하여 이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일본 지식인에게 듣는 한일관계와 역사 문제>라는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이 뒤엉킨 한일 역사 갈등을 풀어나갈 가교와 건설적인 방안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며 신간을 소개한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학교 대학원)
더 나은 한일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
먼저 인터뷰 대상자 선정을 위해 한국 측 전문가 자문회의를 구성하여 일본의 정치 분야, 언론·문화 분야, 역사 분야 전문가 30인을 추천받아 아래와 같이 최종 13인을 선정하였다. 정치 전문가는 오구라 기조小倉紀蔵, 간 히데키菅英輝, 히라이와 슌지平岩俊司, 시라이 사토시白井聡,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언론·문화 전문가는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 마쓰바라 가즈유키松原一征 그리고 역사 문제 전문가는 나카쓰카 아키라中塚明, 우츠미 아이코内海愛子,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기미지마 가즈히코君島和彦, 미쓰하시 히로오三橋広夫 이다.
인터뷰는 2018년 10월~12월 초순에 걸쳐 진행하였고, 깊이 있는 인터뷰와 원활한 진행을 위해 외부 전문가와 함께하였다. 역사 분야는 정재정 시립대 명예교수에게 전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언론·문화 분야는 심규선 전 동아일보 대기자, 정치 분야는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인터뷰는 전문가의 답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거나 반론을 제시하기보다는 대체로 그들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13명의 인터뷰 내용을 다 언급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니, 정치 분야 전문가 인터뷰 내용 일부를 소개하려 한다.
시라이 사토시 (분카가쿠인대학)
일본 내 혐한, 반한 감정의 형성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류韓流 붐이 없었다면 혐한嫌韓도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며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NHK는 2003년 4월부터 이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시청자가 갑자기 늘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 이후 한글 강좌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져 오구라 교수는 NHK 한글 강좌 프로그램에서 이 드라마를 교재로 사용하였다. 일본 전역에서 편지가 쇄도했는데 대체로 40대부터 80대 여성들이 쓴 것이고 내용도 거의 비슷했다. “이웃 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등장 인물의 마음이 아름답고 우리가 옛날에 배웠던 인간의 순수함이 그려져 있어 팬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한류 열풍의 시작이었다. 당시 한국의 이미지는 ‘순수하다’는 것과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답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5년에 한류 붐을 혐오하는 사람들, 혐한이 나타났다. 이를테면 『만화 혐한류』라는 책이 출판되었는데 그 내용은 ‘한국인들은 순수하지 않다’, ‘한국인은 거짓말쟁이’ 등 한국인을 욕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한류와 혐한, 이 두 개의 축이 일본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
간 히데키 교수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이 미해결 문제를 그대로 둔 채 결착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한일관계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당시 한일 간 국력 차, 특히 경제력 차이는 매우 컸다. 국교 정상화 협상 과정을 보더라도 일본 측은 한국 측이 요구하는 금액에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주장했지만, 한국 측은 6·25 때 사료가 소실되면서 제시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국력 차 이외에도 협상 당시 한국 측이 불리한 상황이었음을 고려할 때, 한국 측에 불만이 남아있을 만한 미해결 문제를 그대로 둔 채 결착된 것이라고 했다. 식민지 지배에 관한 쌍방의 의견 대립과 같은 미해결 문제가 차후에 불거진 것이 강제징용 문제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히라이와 슌지 교수는 반한反韓 여론을 불러온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 관해 이야기했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에 상륙한 것, 그 후 일왕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 그리고 이제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대통령의 언급으로 인해 일본인은 한국에 대해, 특히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반감을 보이게 되었다고 했다.
마쓰바라 가즈유키 (조선통신사 연고지협회)
다와라 요시후미 (어린이와교과서전국네트21)
일본 지식인이 보는 한일 갈등의 본질
시라이 사토시 교수는 전후戰後 일본의 내셔널리즘의 본질은 전쟁에서 졌는데도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여전히 일등국가이며 유일한 선진국이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1990년대 일본은 아시아에서 압도적인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의 자의식 속에는 아시아의 유일한 일등국가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후 일본이 침체하면서 주변국들에게 추격을 당하거나 추월당하게 되어 자의식만 폭주하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만이 유일한 일등국가이므로 아시아에 합류하기 싫다, 한국도 중국도 모두 건방지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일본 내셔널리스트의 문제는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와, 아시아에 대한 오만함과 우월감이 하나 된 구조임을 스스로 잘 모른다는 데 있다고 했다.
기미야 다다시 교수는 일본과 한국이 비대칭적asymmetrical이고 상호보완적인 관계에서 대칭적symmetrical이고 상호경쟁적인 관계로 변화하고 있어 한일 간 대립이 악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양국 간 힘의 관계가 변화하면서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에 대해 더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일본은 일본대로 “한국에 대해 양보만 해서는 안 된다, 정정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식으로 서로 참는 부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우에무라 다카시가 일본군‘위안부’ 기사 작성으로 우익의 공격을 받고 오히려 얻게 된 넓은 세계에 감사한다는 내용, 그리고 마쓰바라 가즈유키가 지난 30년 동안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의미를 현대에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온 발자취에 대한 설명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한일 역사 갈등을 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