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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수박 속에 담긴 한・몽 교류의 역사
  • 홍성민, 재단 북방사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과 몽골은 역사상 오랜 기간 동안 교류해 왔다. 고려(918~1392)와 거란국(요나라, 916~1125)원제국(1270~1368) 사이의 교류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려와 거란의 교류는 고려 개성 일대에서 출토된 피낭호, 혹은 거란문자가 새겨진 청동거울 등을 통해 잘 나타난다. 그렇다면 채소나 과일, 곡식과 같은 작물의 교류는 없었을까? 수박의 전래 과정을 통해 한몽 교류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 ⓒ국립중앙박물관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

ⓒ국립중앙박물관

 

 

수박의 원산지와 동아시아 전래

수박은 한국어로 물이 많은 박이라는 뜻이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이집트 일대인데, 4,000년 전부터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수박은 지속적으로 개량되었는데, 17세기 서양화 속 수박은 오늘날보다 붉은 과즙 부분이 적다. 이는 점차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가 동쪽으로는 실크로드(사막의 길)를 통해 중앙아시아까지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박의 동방 전래에 대해서는 중국 문헌에서 확인 가능하다. 중국어로 시과西瓜서쪽에서 온 박이라는 뜻이다. 또 몽골어에서 수박은 타르바스(тарвас)’시과(шийгуа)’ 두 어휘가 확인되는데, ‘шийгуа는 청제국(1636~1912) 시기에 중국 어휘가 몽골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와 거란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출토품 (좌)가죽 주머니 모양 청자 주전자(皮囊壺)고려와 거란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출토품 (좌)가죽 주머니 모양 청자 주전자(皮囊壺)


고려와 거란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출토품

(좌)가죽 주머니 모양 청자 주전자(皮囊壺)

(우)거란문자(小字)가 새겨진 청동거울진

 


구양수歐陽脩(1007~1072)가 지은 오대사기五代史記사이부록四夷附錄에서 호교胡嶠라는 사람이 거란국에 7년간(947~953) 포로로 잡혀 있었는데, 상경上京(오늘날의 중국 내몽골 적봉赤峯 일대)에서 (중략)동쪽으로 가서 처음으로 수박을 먹었다. 토착인이 말하길 거란이 위구르를 쳐부수고 수박씨를 얻어 쇠똥으로 시렁을 덮고 씨앗을 심으니, 열매의 크기가 중국의 동과東瓜와 같았고 맛이 달았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처음으로 수박의 존재를 중국 밖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금나라(1125~1234)에 왕여가王如可의 시를 보면, 금대 중국에 수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278년에 몽골군에 의해 대도大都(오늘날의 중국 베이징)로 연행되어 1283년에 처형된 송나라 최후의 충신 문천상文天祥수박을 읊다는 시에서 황금의 패도佩刀를 뽑아서 파란 옥병玉甁을 잘라내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베이징에 수박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품종 개량 이전의 수박 (17세기 서양화)

품종 개량 이전의 수박

(17세기 서양화)


 

수박의 한반도 전래

수박이 언제 한반도로 전해졌는지는 문헌 확인이 어렵다. 다만, 신사임당(1504~1551)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초충도草蟲圖에 들쥐가 수박을 파먹고 있는 모습에서 16세기 조선에 수박이 있었고, 양반집 여성의 그림 소재가 될 정도로 일상적인 작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속의 기록 세종실록22, 세종 5(1423) 음력 108일에는 환관 한문직이라는 자가 주방을 맡더니, 수박을 도둑질해 쓴 까닭에 곤장 1백 대를 치고 영해寧海君로 유배 보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15세기 전반에 조선 궁중에서 수박이 식용으로 이용되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수박이 전래된 시기는 1423년보다 이전이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승려 기도 슈신義堂周信(1325~1388)1376년 무렵에 완성한 문집 쿠게슈空華集에는 수박에 대해 읊은 시가 있다. 만약 이 시기에 일본에 전파되었다고 한다면, 몽골제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고려에도 이미 전파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늦어도 14세기 중반에는 고려에 전래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1123년에 송나라의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의 토산품에 능금, 청리, 참외, 복숭아, , 대추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수박이 있다고 하지는 않았으니, 12세기 초는 고려에 전래되기 전이라고 하겠다.

수박은 고려와 몽골제국 간의 교류를 통해 한반도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나라는 전쟁을 한 시기도 있었지만, 1260년 고려와 원제국 간에 강화가 성립된 후로는 친선관계를 맺었다. 이후 많은 인적·물적 교류가 발생하였으니, 수박도 이때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리하자면, 수박은 13세기 중엽~14세기 중엽의 어느 시점에 고려와 몽골 간의 교류 속에서 대도 지역의 수박이 고려로 전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15세기 전반에는 궁중에서 소비되는 정도였고, 16세기가 되면서야 그림의 소재가 될 정도로 일상화되었다.

 

이집트 벽화에 묘사된 수박

이집트 벽화에 묘사된 수박

 

 

21세기의 한몽 수박 교류

2019101일 자 연합뉴스의 함안군, 몽골에서 함안수박 재배 성공보도를 보면 오늘날 한몽 수박 기술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수박을 매개로 한 한국과 몽골의 교류는 21세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10세기 이래 거란국과 몽골국에서 동쪽의 고려로 전해지고, 그에 한국의 재배 기술이 더해져서 다시 몽골로 전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10세기 초 거란국이 천산 위구르를 쳐서 수박씨를 얻지 않았다면 수박의 동쪽 전래는 더 늦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원제국과 고려국 간에 교류가 없었다면 수박의 한국 전래는 14세기보다 더 늦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수박은 단순히 물이 많은 박이 아니라, 10세기가 넘는 한·몽 교류의 역사가 담긴 작물이다. 여러분이 올여름에 수박을 쪼갤 때, 그 속에서 붉은 과즙뿐 아니라 한·몽 교류의 역사도 꺼내어 주변 사람과 공유하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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