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지배’ 인식을 둘러싼 벼랑끝 대치
최근 일본군‘위안부’에 이어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재판에서 정반대의 판결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의 뿌리는 한일협정이다. 한일협정 조문에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이 포함되지 않았다. 문서로 담지는 못했으나, 일본 정부는 최종적으로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를 표명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개최와 한국에서의 한일회담 반대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등 국내 정치 문제로 잠시 휴식기를 갖던 7차 회담이 같은 해 12월 재개됐다. 1951년 예비 회담을 시작한 후 14년이나 끌었던 회담이 막바지 타결을 앞두고 있었다. 주일 대표부 김동조 대사는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悦三郎 외상의 한국 방문을 타진했다. 한국 정부는 시나 외상이 방한하여 일본의 한국 식민 통치에 사죄를 표명하면 국내의 한일회담 반대 여론이 누그러들 것으로 기대했다.
1965년 1월 외무성 조사관으로 한국에 파견된 마에다 도시카즈前田利一(주한일본대사, 1981~1984)는 시나 외상이 사죄의 뜻을 밝히지 않으면 ‘외상이 방한하더라도 역효과가 날 것이며 한국인의 마음에 응어리가 남게 될 것’이라고 본국에 강한 어조로 보고했다. 한국 언론은 한일회담 타결을 위해서는 먼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는 보도와 사설을 내보냈다. 한국 정부 역시 회담 타결을 위해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에다는 식민 지배 당시 한국인이 얼마나 견디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려웠는지 현지 분위기를 본국에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했다. 이동원 외무장관의 회고록을 보면 마에다의 전보를 받은 일본 정부는 시나 외상의 방한에 부정적이었고,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언어도단’이라며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사죄 발언은 어떻게 나왔나
한일회담 내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양국의 인식 차이가 표출됐으나, 이것이 회담의 주제는 아니었다.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냐, 합법이냐의 문제는 회담 전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다뤄졌다. 한국은 1910년 일본에 의한 강제병합조약이 강압과 불법에 의해 체결되었으므로 식민 지배는 처음부터 불법이고 무효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합법적으로 체결된 조약으로 식민 지배도 합법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은 35년간의 식민 지배로 인한 피해를 모두 보상받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배상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나 외상이 한국을 방문했다. 일본 정부는 야당이나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에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하여 논란이 될만한 상황은 피하려 했다.
하지만 마에다뿐 아니라 미국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냈다. 외무성은 고민 끝에 ‘불행한 시기가 있었던 것은 유감이지만’이라는 표현을 넣기로 하고 마에다에게 시나 외상이 발표할 성명을 보냈다. 마에다는 그것을 번역하면서 “역시 무리인가. 그러면 외상이 오더라도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겠다.”며 우울한 기분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런데 시나의 방한을 하루 앞둔 2월 16일 밤, ‘깊이 반성한다’라는 문구를 넣었다는 외무성의 연락을 받고 “마냥 기뻐하며 번역문을 수정하였다.”고 한다.
사죄 문구는 시나가 직접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우시로쿠 도라오後宮虎郎 국장(주한 일본대사, 1972~1975)에 따르면 “시나 외상은 한일 간 감정 융화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고 한다. 시나는 그 부분을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유감이다’, ‘깊이 반성한다’는 문구를 직접 추가했다.
한일 역사 화해의 시작점
2월 17일 서울에 도착한 시나 외상은 “양국 간 오랜 역사 가운데 불행한 시기가 있었던 것은 실로 유감이며 깊이 반성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 최초의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 표명이었다. 마에다는 김포공항에서 성명을 통역할 때 ‘깊이 반성한다’라는 부분을 일부러 더 크게 말했다고 했다. 그는 ‘반성’이라는 단어가 한국의 전체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했어도, 한일회담을 체결하는 데는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시나의 3박 4일간의 방한 일정이 끝나는 날 감정이 북받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국에서 보면 매우 부족한 사죄였지만, 이 표현이 나오는 데도 많은 진통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나는 1965년 2월 24일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자신이 발표한 성명이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에 대해 반성을 표명한 것이었다고 명확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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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한 사이에 불행한 기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깊이 반성하며 장래의 일한 우호 친선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결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더 말씀드리자면 한 민족이 역사적·문화적 전통을 가진 다른 민족을 지배한다는 것 자체가 지배당한 민족의 민족감정이라는 점에서도, 또는 국제정치의 관점에서도 정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나 외상의 발언은 한일회담 타결을 위한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토대 위에 국교 정상화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애초부터 조문 안에 식민 지배가 불법이었다는 문구를 넣었다면, 일본의 태도를 둘러싼 논란이 해소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식민 지배가 합법이고 정당했다는 인식이 일본에서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나온 시나의 발언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원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일본 외무성이 2015년 공개한 회고록 「마에다 참사관, 일한관계와 나」, 「일한관계 교섭의 회고 - 시나 외상에게 듣는다」, 「일한 교섭에 대한 약간의 회상(우시로쿠 도라오)」을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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