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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독도 탐방의 소중한 경험과 남은 과제
  • 강철구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동도를 배경으로 한 손에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동도를 배경으로 한 손에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울릉도·독도 탐방의 의미

  지난 917일까지 34일간 일본침탈과 일본의 역사왜곡 인식 제고를 위한 울릉도·독도 탐방을 다녀왔다. 이번 탐방의 목적은 1904 ~ 1905년 러일전쟁의 현장이자 일제 영토 침탈의 시작인 독도를 현장 답사하여 일본의 역사왜곡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였다. 재단 이영호 이사장을 비롯하여 전현직 자문위원 7, 일제침탈사 편찬위원 5, 그리고 재단 직원 6명 등 총 19명이 참가하였다. 각자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한국 최고의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우리 땅 독도라는 키워드를 통해 일본침탈을 어떻게 해석하고 다음 세대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대화를 가질 수 있는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140여 년 전 울릉도검찰사(鬱陵島檢察使) 이규원(李奎遠)도 보이는 곳곳이 절경이라 감탄했던 울릉도는 일주도로가 완공되어서 그런지 여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특히 같이 동행했던 재단 홍성근 교류홍보실장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역사해설은 다큐멘터리로 찍어 보관해 놓고 싶을 만큼 뛰어나 이해력을 높이는 데 부족함이 없어 모두를 감탄하게 하였다. 필자는 홍성근 실장의 독도에 대한 탁월한 정보력과 해석 일부를 영상으로 남겨 일본학세미나라는 과목에서 학생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울릉도 해저케이블 육양지점 표지석

울릉도 해저케이블 육양지점 표지석


독도의 가치는 대한민국 그 자체

  울릉도에서 맑은 날에는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이사장의 말씀에 34일간 아침인사는 모두들 독도 보셨나요?’였다. 몇몇 선생님들이 정말로 봤다고 하여 모두의 부러움을 샀고, 또 그 모습이 신기루인지 실제 독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같이 기뻐하며 육안으로 보지 못한 자신을 안타까워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안타까움은 독도를 직접 밟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대신하였다. 울릉도에서 떠난 지 한 시간 반 만에 독도의 동도 선착장에 여객선이 접안하였다. 출입문이 열리면서 탐방객들은 우리 땅 독도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감동에 눈시울을 붉히는 분들도 보였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울릉도 여객터미널에서 구매한 태극기를 움켜쥐고는 독도이사부길의 파란색 한글 도로명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서 이 땅이 확실히 우리 땅임을 확인하는 듯했다.

  독도의 가치를 화폐로 환산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독도가 곧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울릉도에 방문한 분들 중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분들이 독도를 방문한다. 물론 독도에 접안할 수 있을 만한 날씨가 관건이기는 하다. 또 체류 시간이 20여 분에 불과하지만 독도 탐방의 의미는 영토주권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살아있는 현장이요, 국민 화합의 장으로 방문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울릉도 해저케이블 육양지점의 역사적 고증을 설명하고 있는 이영호 이사장

울릉도 해저케이블 육양지점의 역사적 고증을 설명하고 있는 이영호 이사장


남아있는 과제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도 아쉬웠던 부분은 울릉도 사동 1리에 있는 해저케이블 육양(陸揚) 지점의 발견과 이곳 접근성이 안 좋아 방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일제의 동해 해저케이블에 대한 물적 증거가 국내에는 남아있지 않아 케이블의 실체에 대해 언급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199211, 한국통신(지금의 KT)이 발견하고 표지석을 만들어 놓아 역사적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다. 바로 이 지점이 1904년 일본이 시마네현(島根縣)의 현청(縣廳) 소재지인 마쓰에(松江)와 우리나라 원산 사이에 해저케이블을 부설하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연결한 케이블이 발견된 곳이어서 이곳이 극동의 통신 요충지였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도 중요한 역사적 증거와 발굴지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관광객이나 탐방객들이 접근하기에는 너무도 불편하거니와 이와 관련한 안내정보 역시 턱없이 부족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울릉군청이 이곳을 관광지화하고 접근성이 용이하도록 정비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또 다른 경험의 잔상

  우연히도 이번 추석 연휴에 일본 기타큐슈시립대학(北九州市立大學)에서 개최하는 학술대회에 참가하면서 고쿠라성(小倉城) 바로 옆의 젠린뮤지엄에 들러 볼 기회가 있었다. 동서고금의 고지도가 굉장히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만한 박물관의 지도 두 장이 필자의 시선을 멈추게 만들었다. 1736년 영국에서 동판으로 만든 세계지도책의 한중일 지도를 전시해 놓았는데, 우리 동해를 분명히 ‘SEA of COREA’라고 기술해 놓은 것이다. 한 장이 더 있다. 1790년 경 영국의 지도 출판제작자 로버트 세이어(Robert Sayer)가 그린 일본지도에서도 역시 동해를 ‘Sea of Japan’이 아니라 ‘COREAN SEA’라고 명기해 놓았다.

  일본 박물관에서 우리의 바다 동해를 표기한 지도를 발견했다는 것이 필자로서는 가슴이 뛰는 순간이었다. ‘정치·외교적으로는 독도나 동해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지라도 학문의 세계, 그리고 역사적 사료에서는 일본에서도 부정하지는 않고 있구나하는 나름의 해석을 해보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접근으로 일본의 역사학자와의 교류,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논리적으로 정면 돌파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귀국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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