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가 펼치는 여정의 시작
한국 고대사에서 동해안과 연해주 일대에 존재했던 집단들을 연구하는 일은 문헌기록이 부족할 뿐 아니라 중국, 북한 측 자료는 접근조차 쉽지 않다. 강인욱 교수는 이와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는 실마리로 러시아 연해주 일대의 고고학 발굴 자료를 제시한다. 그간의 연구 결과를 책 『고고학으로 본 옥저문화』(동북아역사재단, 2008)를 통해 알렸고, 이후 새롭게 축적된 연구성과를 『옥저와 읍루-숨겨진 우리 역사 속의 북방민족 이야기』 안에 담았다. 기존 연구서와 달리 쉽고 편하게 서술함으로써, 옥저와 읍루의 이야기를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일반 대중들과 이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서튼 후(Sutton Hoo) 유적 발굴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더 디그(The Dig)>에서는 흙에서 뒹굴며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선대와 후대를 잇는 사람들, 바로 고고학자들이다.
저자는 고고학자로서 한국 고대사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옥저와 읍루 두 지역을 발굴을 통해 얻은 각종 자료들로 새롭게 써 내려간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원문에서도 1,000자를 넘기지 못할 정도로 소략한 자료의 한계를 고고학으로 극복해 나가며 옥저와 읍루로 들어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바이칼 호수 인근 시베리아횡단 철도, 러시아 이르쿠츠크 지역
고고학 자료를 통해 전해지는 생생한 삶의 모습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북방 민족의 역사라 함은 단순히 한반도 북쪽과 만주라는 지리적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지리환경의 차이에서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고대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나 국경이 없었고, ‘여기까지가 한국사’라는 이야기는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현대 문화의 국경이나 국적은 잊고 한국사와 그들의 주변을 거시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지금까지 한 - 러 공동발굴로 축적된 다양하고 많은 고고학 자료들이 등장한다. 크로우노프카로 대표되는 옥저의 유적에서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온돌을 설치하는 옥저인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들의 무덤 형태는 에벤키나 나나이족과 같은 극동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사례를 들어 더욱 이해를 높여주었다. 또한 유적지에서 발견된 화폐와 동검 등을 통해 옥저가 당시 활발한 교역을 하며 성장했음을 알 수 있는데, 저자는 옥저의 ‘민며느리제’ 또한 그 값을 ‘돈’으로 치렀다는 점을 짚어준다.
그리고 읍루의 문화, 즉 폴체 문화 중에서도 기록만으로는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습들도 최근의 고아시아족 민족지 조사 결과를 함께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에 지붕으로 드나드는 주거지나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모습 등이 마치 수수께끼가 풀린 것처럼 드러난다.
저자는 옥저와 읍루인들이 극심한 기후 스트레스를 극복하여 농경이라는 쉽지 않은 삶에 적응하고, 어떻게 북방 역사의 한 축을 형성해 나가는지 고고학 자료를 통해 지금껏 알려져 왔던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게 그려냈다. 이 과정에서 과거 속 ‘죽음’을 전제로 하는 고고학 연구가 끝내 밝혀내고자 하는 것이 사실은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옥저와 읍루는 현재의 우리와 어떻게 이어지는가?
이 흥미로운 여정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우리는 이 두 지역이 현재의 우리와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는 남한 고고학의 편중성에 대해 지적하고 옥저와 읍루는 백두대간을 거쳐 북방 유라시아와 이어지는 교류의 중심이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오늘날 유라시아 철도가 바로 이 옥저와 읍루의 땅을 지난다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로만 느껴졌던 이 두 지역이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한국 고대사의 모습을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역할처럼 어렵고 전문가들의 영역처럼 느껴지는 고고학의 세계를 대중들과 이어주고 소통하게 해주는 사람들, ‘고고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제5회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독후감 성인부 최우수상 고고학으로 길어 올린 숨겨진 역사, 『옥저와 읍루』를 읽고'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