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縣)에 있는 사비에르고등학교에서 국제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노구치 미나코입니다. 한국 정부가 재정 지원하고, 동북아역사재단이 주관한 한일 고등학생 역사 교류 프로그램에 담당 교사로 참여했으며, 이번에 그 사례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모든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직 한국어가 서툽니다. 이번 발표도 원래 일본어로 말하고, 한국어로 통역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든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이야기해 온 만큼, 저 역시 스스로 본보기가 되고자 이번 발표문을 한국어로 작성했습니다.
◎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일 고등학생 역사 교류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역사를 단순히 지식으로 배우는 데 목표를 두지 않았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한일 양국의 고등학생들이 과거의 역사를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담당 교사로 참여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야마구치현에서는 우리 학교를 포함해 세 학교가 학생들을 맞이했습니다. 프로젝트 참여가 결정되면서 세 학교가 함께 논의하여 야마구치현 전체가 협력하는 수용 체제를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가 학생들을 맞이하면 다른 두 학교도 함께 지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하의 내용들도 이러한 협력 체제를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담당 교사로서 중요하게 생각한 관점은 무엇인가요?
담당 교사로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점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사립학교라서 공립학교에 비해 지역 사회나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고 교육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세이탄광(長生炭鑛) 유적에 지금도 잠들어 있는 희생자들의 유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는 일본 사회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조세이탄광 현장 답사와 재일대한기독교회에서의 증언을 통해 학생들뿐 아니라 저 자신도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내 가족이 그 입장이었다면’이라는 관점에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성찰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조세이탄광이 있는 우베시(宇部市)에서 태어나 자랐고, 친정집도 탄광 유적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게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 조세이탄광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한 학생은 “정치적인 국가 방침보다 인간으로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라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인 저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 조세이탄광을 방문한 경험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조세이탄광을 방문하여 바다에 헌화했을 때, 학생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채 파도에 흔들리는 꽃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생각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한 현지에서는 원활한 유해 발굴을 위해 갱도를 보강하고 정비하는 지역 어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과거의 ‘비극’과 현재의 ‘행동’이 같은 장소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세이탄광 유적을 방문하여 헌화하는 한일 참가자들
조세이탄광 유적에 방문한 한일 고등학생들
◎ 증언을 직접 듣는 경험이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적 효과를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재일대한기독교회에서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의 딸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학생들의 표정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강제노동을 겪은 아버지의 이야기와 그 가족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가 매우 진솔하게 전해졌습니다. 그 순간, 역사는 하나의 ‘사건’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으로 학생들에게 다가왔다고 느꼈습니다.
그 이후 한국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이 역사를 배우는 것이 일본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기 위함은 아닙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배우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하여, 밝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말씀은 이 프로그램의 교육적 의의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참가 학생들의 소감과 교류 이후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세요.
○ 교류에 대하여
학생들로부터 “기간이 짧아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체류 기간 동안 전일 홈스테이를 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또한 한국 학생들은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 일본사 수업에도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더 많은 수업을 함께 듣고 의견을 나누고 싶었다”는 소감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 학생 수에 비해 일본 학생 수가 많아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해 아쉬웠다”는 솔직한 의견과 함께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해 주어서 일정을 짜기 쉬웠고, 함께 행동하기 편했다”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 학교 학생들과도 교류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의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역사 탐구에 대하여
역사 탐구에 관해서는 한국과 일본 학생 모두 “조세이탄광이나 과거의 한일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공통된 깨달음을 보였습니다. “이번 연수를 계기로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좋았다”, “지역인 야마구치현의 일인데도 모르는 것이 많아 조금 부끄러웠다”는 소감도 있었습니다. 또한 “첫날에 교회와 위령비 등 무거운 주제가 이어졌기 때문에 관광이나 문화 체험처럼 밝은 분위기에서 교류할 수 있는 시간도 있으면 좋겠다”는 건설적인 제안도 나왔습니다.
○ 오프라인 교류 이후
이번 교류 이후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남학생을 홈스테이로 맞이해 걱정이 되었지만, 함께 게임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며, 한일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주 친해질 수 있었다”라는 소감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연락을 계속하고 있고, 연하장도 주고받고 있다”, “SNS로 자주 연락하며,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에 만나러 갈 예정”이라고도 했습니다. 또한 “친구가 호스트 패밀리가 되어 즐겁게 교류하는 모습을 보고, 다음에는 나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라는 변화도 보였습니다. 이러한 소감을 통해 이 교류가 일회성 경험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관계와 시야를 지속적으로 넓혀 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교사로서 얻은 점은 무엇입니까?
2년간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은 교사인 저 자신이었습니다. 역사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제 조부모는 1920년 전후에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조부는 참전 군인이었기 때문에 생전에 전쟁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었는데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조부에게 솔직히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부가 돌아가신 지금에 와서는 왜 그 이야기를 더 진지하게 듣지 않았을까 깊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조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제게 이야기해 준 적이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하다고 믿게 되었다”라는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험 덕분에 저는 인종 차별이나 일방적인 역사 인식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었고, 그 점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맺은 인연과 축적된 경험이 한일 관계의 미래를 조금씩이라도 바꾸어 나가는 힘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담당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학교와 학생들이 만나고, 이후에도 SNS 등을 통해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 간의 교류는 아직 일회성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능하다면 이 소중한 인연이 한 번의 만남으로만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학교 간 교류로 발전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비에르고등학교는 국제교류를 중요한 교육 특색 중 하나로 삼고 있으며, 교장 선생님도 영어 교사인 제가 국제교류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깊이 이해하고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그동안 교류해 온 용호고등학교, 함안고등학교, 남성여자고등학교, 순천고등학교 학생들이 일본을 방문할 경우, 입국부터 출국까지 전반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건이 허락된다면, 우리가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앞으로 더욱 의미 있고 지속적인 교류로 발전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