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암기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저는 역사 교육이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그리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어떤 미래를 설계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2025 동북아 역사 교류 활성화 사업’ 프로그램을 설계하며, 저는 현재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화폐를 떠올렸습니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이음(e음)카드’처럼, 저는 이번 활동을 통해 인천 (부평)의 삼산고등학교 학생들과 중국(주지시)의 하이량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로 이어지는 ‘e음의 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는 제2외국어 수업은 있지만 안타깝게도 중국어 교과 수업은 개설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중국과의 교류 경험도 전무했습니다. 더욱이 최근 일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확산된 이른바 ‘혐중 분위기’는 학생들에게 충분한 사실 확인도 없이 막연한 거부감을 심어주고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참가 학생 12명 중 중국어로 기초 의사 소통이 가능한 학생은 단 1~2명뿐이었지만, 우리는 무모해 보이는 이 길을 떠나보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단순한 상호 방문을 넘어, 과거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꽃피웠던 김구 선생과 추푸청(褚補成) 일가의 우정을 오늘의 청소년들이 함께 인식하고 계승하기를 바랐습니다.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꿈꾸는 동아시아 공동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편견이라는 안개를 걷어내고 현재와 미래를 잇는 진정한 ‘e음의 길’을 시작하였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자기주도적 e음’의 준비
Q. 중국어 교과 수업이 없는 환경에서 교류를 위해 어떤 단계와 준비를 거쳤나요?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편견 없이 사실을 확인하고 이해하는 데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먼저, 1차 온라인 교류를 통해 서로의 일상과 학교 생활을 공유하며, 온라인 너머에 있는 서로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형성된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임정로드 4,000km’ 북토크를 진행하며 독립운동의 역사를 함께 공부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김구와 추푸청의 우정을 담은《한중 이중언어 그림책》을 직접 제작했습니다. 기초적인 중국어 소통이 가능했던 학생이 번역을 맡았고, 모든 모둠원이 웹툰 제작 콘텐츠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그림책을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그림책은 중국 교류 학생들에게 사전에 소개되어, 오프라인 만남의 설렘을 높여주었습니다.
Q. 온라인 교류 당시 학생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처음에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할 만큼 긴장감과 어색함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사전 패들렛(Padlet)으로 MBTI, 좋아하는 K-POP 스타와 문화, 상급학교 진학 방법 등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공간과 환경이 다를 뿐 모두가 하나의 세계”라는 고백은 온라인 소통의 과정에서 이미 싹트고 있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전개된 e음
인천 삼산고등학교와 중국 하이량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이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과 패들렛을 활용하여 서로의 관심사와 지역을 소개하며 연결을 시도하였다.
말이 아닌 ‘진심’으로 완성해 간 현지의 활동
Q. 11월 오프라인 교류 당시 학생들이 준비한 사전 활동은 어떻게 활용되었나요?
우리가 제작한《한중 이중언어 그림책》은 현지 수업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그림책은 김구와 추푸청의 삶,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우정을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풀어내고자 기획한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중국 친구들과 그림책을 읽으며 역사 속 인물들의 관계를 이해했고, 이를 바탕으로 짧은 낭송극 대본을 만들어 모든 친구들이 한 문장씩 직접 공연하였습니다. 서툰 한국어와 쑥스러운 몸짓이 뒤섞인 무대였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교류는 의미 있었다”고 할 만큼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언어의 장벽을 가볍게 넘어섰습니다.
이어 한국의 나전 소반과 중국의 전통 문양을 활용한 에코백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또 시스구리(西施故里)의 오후 햇살 아래 모두가 하나 되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합창하며, 편견 없는 정서적 일체감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따뜻한 분위기는 주변에도 펴져, 산책을 즐기던 시민들도 학생들의 노래와 춤 공연을 함께 즐기며 진심 어린 호응을 해 주었습니다.
현장의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마주한 역사의 무게
Q. 오프라인 현장 답사 중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어떤 교육적 화두를 던졌나요?
상하이사범대학 내 ‘평화의 소녀상’을 답사하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사전에 방문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문에서 입장을 제지당해 40여 분간 대기하는 난처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간신히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느낀 무겁고 폐쇄적인 분위기는 역사적 이슈가 오늘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음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이후 방문했던 다른 팀은 결국 입장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가 마주한 이 역사적 이슈에 대한 과도한 ‘불편함’이 동아시아 연대를 위해 반드시 현명하게 넘어야 할 과제임을 깨달았습니다.
Q. 이번 경험은 학생들에게 어떤 배움과 메시지를 남겼을까요?
학생들은 역사가 박물관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정치적‧사회적 관계 속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을 것입니다. 굳게 닫혔 있던 상하이사범대학의 정문은 동아시아 연대가 결코 장밋빛 우정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당시의 ‘난처했던 대기 시간’을 통해 역사적 기억을 올바르게 공유하는 데 얼마나 많은 인내와 용기가 필요한지 직접 경험하고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했을까?”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역사적 이슈를 바라보는 양국의 태도와 관점 차이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우정이 미래의 연대로
Q. 이번 동북아시아 역사 교류를 마치며 담당 교사로서 느낀 점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이번 활동을 통해 제가 가장 깊이 느낀 것은, 역사는 결코 멈춰 있는 과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중국 자싱(嘉興)의 좁은 피난처에서 김구 선생과 추푸청 일가가 목숨을 걸고 나누었던 뜨거운 우정은 90여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날 한국과 중국 청소년들의 만남으로 다시 이어졌습니다.
미래로 흘러가는 ‘e음의 길’ 위에 서다
비록 우리 학교에는 중국어 교과 시간이 없고, 사회적으로는 편견의 안개가 퍼져 있었으며, 답사지 정문에서 그저 막연하게 대기해야만 했던 난처한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함께 활용한《한중 이중언어 그림책》과 이를 바탕으로 한 낭송극 활동은 이러한 장애물을 넘어, 어제의 인연을 오늘 생생한 우정으로 꽃피우는 소중한 현재의 ‘e음’이 되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역사 속 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 새롭게 써 내려간 이 우정은 동아시아 전체를 평화로 잇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또한 과거의 우정이 현재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다시 미래의 더 큰 연대로 확장되는 이 길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교육의 방향성일 것입니다.
학생들은 위챗(WeChat) 등을 통해 종종 안부를 주고받으며 이 우정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이 우정이 훗날 동아시아 평화의 든든한 가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이 소중한 ‘e음의 길’ 위에서 저는 앞으로도 학생들과 기꺼이 함께하겠습니다.
시스구리(西施故里)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한‧중 학생들
활동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단체 기념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