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새 책
조선과 두만강 유역 여진인들의 관계
『조선의 경계인 여진족』 두만강 유역은 지금도 변경, 경계의 공간이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왕조의 발상지로 인식되었지만, 동시에 변방의 울타리를 뜻하는 번리(藩籬)로 불렸다. 그곳에 거주하는 여진인들은 번호(藩胡)라고 불렸다. 재단 교양총서『조선의 경계인 여진족』은 조선 건국에 참여한 여진인들을 소개하고, 조선이 두만강 유역을 어떻게 번리로 인식했는지, 또 번호라 불리던 여진인들과 이주한 조선인들의 관계와 삶이 어떠했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만주 지역 최대의 히트 상품이었던 초피(貂皮), 곧 담비가죽을 매개로 나타난 사회경제적 변화를 조명하고, 두만강 유역 여진인들의 반란과 이탈, 나아가 누르하치의 두만강 유역 여진 통합 속에서 번호라 불리던 여진인들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도 추적한다. 『조선의 경계인 여진족』 조선 건국에 참여한 여진족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선조들은 몽골 침략기에 전주에서 강원도 삼척으로, 다시 두만강 유역으로 이동한 뒤 함경도 지역에 정착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의 선조들은 자연스럽게 여진인들과 교류하게 되었고, 가
한성주 강원대학교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