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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과 일본, 좋은 이웃으로 사는 법
  • 권태억 |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서울대 교수)

한·중·일 세 나라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같은 문화권 안에서 생활해 오면서 긴 세월 동안 교류해 왔다. 그 결과 문화적 경제적으로 깊은 관계를 쌓아 온 이면에서 갈등하고 다툰 일도 드물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일이지도 모른다. 그 결과 한 나라의 영광은 다른 나라의 치욕이 되고, 한 나라의 영웅이 다른 나라에서는 원수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는 이런 일이 부지기수로 많다.
예를 들면 풍신수길은 일본에서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임진왜란의 원흉일 따름이며, 마찬가지로 이등박문은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어서 그의 초상이 지폐에도 오른 적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국망을 재촉한 원수이고, 그를 저격한 안중근이 영웅이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제국주의적 '발전'은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느낄 일일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이나 중국인들에게는 고통과 치욕의 연속일 뿐이다. 한·중·일 3국이 모두 국민국가를 이루고 그 구심점으로서 '국사'를 중시하고, 그 속에 다시 민족적 영광을 기리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진정한 화해는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은 결국 세 나라 사이에서 과거 역사 해석을 둘러싼 갈등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중국과의 동북공정 문제, 일본과의 해묵은 식민지 지배의 공과를 둘러싼 갈등 등이 대표적 예이다. 이런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 사이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은 뒤로 미룬 채 정치적 타협으로 미봉하기도 한다. 관계 국가들의 국민 대다수가 승복해서가 아니라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참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국가 간의 외교적 정치적 타협과 달리 일반 민간 또는 지방에는 과거의 역사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영웅'과 '원흉' 사이에서

지난 해 한·중·일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는 갈등보다는 상호 이해를, 반목보다는 평화와 협력을 지향하는 화해기조가 강해졌습니다. 이는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매우 고무적인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필자는 2007년 봄 연구년을 이용하여 일본 큐슈대학에 한 학기 동안 객원교수로 생활하였다. 큐슈는 잘 알다시피 일본 열도 중 한반도와 가장 가까이 있어 예나 지금이나 우리와 관계가 깊은 곳이다. 현재도 많은 한국 관광객이 찾아, 큐슈 관광객의 60%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 사람들이 한국인들에게 쏟는 관심도 각별하다. 큐슈의 중심지인 후쿠오까 지하철에는 한글 안내문이 있고, 상점에도 한국말 안내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과 역사적으로 긴밀했던 교섭, 관련된 유적·유물이 많다는 점을 살려 지역경제 발전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한국과의 화해를 위한 행사도 많이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밝은 겉모습을 한 꺼풀만 베껴 내면 그 밑에는 변함없는 과거 인식이 완강히 버티고 있다. 큐슈와 대마도에는 일본의 한국 침략과 관련된 유적지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신공황후와 관련된 유적이 눈에 많이 띈다. '신공황후의 신라정벌'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허황된 신화에 불과하지만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 할 때 이를 합리화하는 논리로 자주 동원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와 관련된 유적이 도처에 남아 있고 거기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빠짐없이 그 신화를 언급하고 있다. 이밖에도 나카사키 원폭 기념관 등에도 평화를 기원하고 일본인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언급은 있어도 자신들이 식민지에서 벌인 잔학 행위에 대한 반성은 없다든가 한 점은 한 두 사람에 의해 지적된 바가 아니다.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은 커녕 미화되고 확대 재생산되는 현장을 보고는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예를 더 들자면 현양사(玄洋社)는 일본이 제국주의적 침략을 벌여 나갈 때 그 앞장을 섰던 민간 낭인 단체이고, 우리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명성황후 시해에 앞장섰던 단체인데, 그 단체의 입김이 후쿠오까에는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들과 관련된 언론사가 발행한 지역 소개서를 보면 현양사는 명치유신기 일본 선각들이 만든 단체로서 조선의 김옥균, 중국의 손문 등을 도와 동양의 연대를 도모한 단체로 묘사되어 있고, 명성황후 시해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행적을 기리는 기념관이 후쿠오까 시내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인간의 존엄'이 기준이 되는 이성적 역사 인식을

한·중·일 세 나라는 앞으로도 싫든 좋든 이웃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좋은 이웃이 되어 공존공영하기 위해서는 세 나라 사이에 얽히고설킨 과거 역사에 대한 정확한 파악, 그에 기초한 반성과 청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 나라가 모두 민족의 영광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역사를 이용하는 현실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도 한국 사람으로서 위에서 말한 일본인들의 '두 얼굴'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일본인들의 그런 심리상태는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뉘라서 자신이 속한 국가나 민족의 영광을 기원하는 마음을 비난할 수 있으랴? 우리나 일본인들이나 똑같이 민족국가의 성원으로서 자신이 속한 민족(국가)의 영광을 기원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를 비난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우리가 그러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는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도 국익이라면 모든 것을 다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아닌가?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인가? 피해자인 우리가 나서서 저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반성과 사죄가 한·일 양국 모두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또 그러한 이해를 널리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국가만이 아니라 민간 차원의 활발한 교류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한·중·일 세 나라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공동 역사교과서 제작과 같은 작업은 의의 있는 일로서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 인식도 보다 이성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인들도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민족적 성향이 강하고, 그 결과 일본과 관련해서는 격정적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또 역사교육도 민족의 영광을 기리고, 침략 세력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해 온 나머지 국민들이 편향된 역사인식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민족주의의 폐기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지만 과거 역사에 대한 판단기준을 '민족'에 두기보다 '인간의 존엄성'에 둘 때 동아시아, 나아가서 세계 인류가 평화공존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