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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특집Ⅱ- 2007년 한·중 고구려역사 학술회의] '고구려 초기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중 학자 열띤 토론 "큰 의미"
  • 김진순 | 제2연구실 연구위원

재단은 중국사회과학원과 지난 2007년 12월 17일~18일 양일 간 중국 북경 구화산장(九華山庄)에서 『2007년 한·중 고구려역사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학술회의 개최와 관련된 실무협의는 재단의 제2연구실과 중국사회과학원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담당하였으며, 북경에서의 회의 개최 및 진행 준비는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맡았다.
이번 학술회의는 고구려연구재단과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 연구중심이 2004년부터 2005년까지 2회에 걸쳐 공동 개최한 학술회의를 계승한 것으로, 재단과 중국사회과학원이 처음으로 공동 주최하는 학술회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또 양국 지도부의 관심과 지원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학술회의 개최 결과에 대한 책임감도 그만큼 막중하였다. 한·중 공동 학술회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양측은 1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우여곡절을 겪으며 노력을 기울여 왔다.
양 기관 간의 공동 학술회의 개최가 처음 제안된 것은 2006년 10월이었다. 당초의 의도는 그해 12월에 학술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이었으나, 상호 연락 채널의 혼선 및 일정상의 문제로 연내에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2007년 4월 김용덕 이사장이 중국사회과학원의 초청으로 북경을 방문, 천자꿰이(陳佳貴)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과 회담을 갖고 양 기관 간의 공동 학술회의 및 학술교류 전반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 뒤 한·중 학술회의가 탄력을 받고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듯싶었으나, 중국 측 행정상의 문제로 줄곧 미루어지다가, 지난 11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반병률 제2연구실장과 이국강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부주임이 「2007년 한·중학술회의 개최 관련 협의서」를 체결하였다. 학술회의는 기본적으로 이 협의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이처럼 2007년도 한·중 학술회의는 오랜 기간에 걸친 양측의 끊임 없는 노력과 정성이 이루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노력과 정성이 만들어 낸 성과물

이번 학술회의에서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점은 학술회의 주제가 그동안 한·중 학자들 간에 의견 차이를 보여 왔던 '고구려 역사'였다는 것이다. 2004년, 2005년 고구려연구재단과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간에 2차에 걸쳐 개최된 『한·중 고구려 학술회의』가 '고구려 문화'라는 주제만을 다루었던 것을 염두에 두고 재단에서는 이번 학술회의에서 고구려 역사를 직접적으로 다루어 볼 것을 제안하였고, 그 결과 보다 첨예한 주제인 '고구려 초기 역사'를 놓고 한·중 양국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띤 토론을 펼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학술회의의 의의는 매우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학술회의는 ▲고구려 족원 연구, ▲고구려 초기 사회제도 연구, ▲초기 고구려와 주변의 관계, ▲고구려 초기 고고 및 신화 그리고 ▲고구려 초기 왕성 및 천도 연구 등 5개 의제에 대해 한·중 대표가 일대일 대응 식으로 발표를 하고 이에 대해 상대측 학자가 약정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국 측 회의 참가자는 이기동(사회, 동국대), 노태돈(발표, 서울대), 임기환(발표, 서울교육대), 김기흥(발표, 건국대), 윤용구(발표, 인천시립박물관), 조법종(발표, 우석대), 강현숙(토론, 동국대), 이도학(토론, 한국전통문화대), 금경숙(토론, 재단), 김현숙(토론 및 사회, 재단), 이성제(토론, 재단)와 반병률 제2연구실장(단장, 재단) 외 3명의 행정관련 재단 직원으로 구성되었다. 중국 측 회의 참가자는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의 리셩(勵聲)주임 외 4명의 연구원 및 행정원과 박문일(朴文一 : 중국학자대표, 연변대), 웨이춘청(魏存成 : 발표 및 토론, 길림대), 왕멘후(王綿厚 : 발표 및 토론, 요녕성 박물관), 양쥔(楊軍 : 발표 및 토론, 길림대), 박찬규(朴燦奎 : 발표, 연변대), 리신췐(李新全 : 발표, 요녕성 문물연구소), 왕쩐종(王震中 : 토론,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위훵춘(于逢春 : 토론,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왕웨이( 사회,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그리고 후바이천(付百臣 : 사회, 길림성사회과학원) 이었다.

학자들,'나부체제론'에 깊은 관심

참가자들은 모두 양국 학계를 대표하는 고구려사 관련 연구자들로서, 이번 회의를 통해 양국 학계의 고구려 초기 역사에 대한 주요 연구 성과들을 발표, 토론했다. 특히 중국학자들은 그동안 언어장벽으로 인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한국학계의 연구 성과들을 직접 접하고 토론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가운데에서 한국 학계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고구려 정치체제론인 '나부체제론'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이를 높이 평가하였다. 물론 한국학계에서도 중국이 독점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새로운 고고학 자료들을 접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한·중 간에 존재하는 역사 갈등 문제들이 단번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중국 측은 학술 발표의 각론에 대해서는 우리 측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고구려 역사의 귀속성에 대해서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여 여전히 통일다민족국가론에 따른 역사해석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의견 대립에 대해서는 이후 양 기관 간의 지속적인 학술회의를 통해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발표, 소개하고 함께 토론하여 상호 인식의 차이를 점차 좁혀가야 할 것이다.
김용덕 이사장과 천자꿰이 부원장은 학술회의 개회식에 참석하여 양 기관의 첫 번째 학술회의 개최를 축하하며 향후 우호적인 학술관계를 지속, 발전시켜 나갈 것을 희망하였다. 특히 두 대표는 학술회의 기간 중 별도의 공식 회담을 갖고 양 기관 간의 폭넓은 학술교류를 위해 MOU 체결 및 한·중 역사공동 연구위원회 설립 추진 등에 대해 긍정적인 담화를 나누었다. 2002년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되어 2007년 공식적으로 마무리되고 그 후 다시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오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가까운 이웃 나라로 여겨 왔던 우리에게는 경악과 충격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충격과 분노에서 벗어나 그동안 소홀하였던 양국 역사학계 간의 학술교류를 활성화시키고 학자들 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한 동북아시아 역사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상대의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상호 협력한다면 동북아시아 이웃 국가들이 모두 번영의 21세기를 향해 함께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