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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민주시민을 기르는 역사교육
  • 박중현 | 양재고등학교 교사

"요즘같이 국제사회가 좁아지고 많은 민족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어떤 사회가 발전하는 길은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각각의 개성이 최대한 발휘될 때 그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다."

며칠 전 한일역사교육교류회에서 실시한 일본 답사(교류회에서는 2008년 일본 답사의 주제를 '바다를 건넌 사람들'로 정해 한국과 일본에서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중 오사카의 한국인 집단 거주지인 츠루하시에서 만난 코리아센터의 김광민 씨의 말이다.
그는 스스로 한국도 아니고 조선도 아닌 '코리아'라는 용어를 쓴 것에 대해 "민단은 서울을, 총련은 평양을 닮아가려고 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한국 국적으로 일본 사회에 살고 있는 코리안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그 사회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 하였다. 히로시마의 조선학교를 방문하여 수업을 참관하고, 고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직접 수업을 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 사회 교과서를 들춰 본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교과서는 3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각의 장은 과학기술과 정신문화, 생활과 환경문제, 국제사회의 과제였다. 어디에도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부분은 없었다.
교과서 내용 어디를 살펴봐도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부분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마지막 장에서 조차 반핵, 평화, 민족문제와 국제질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사회의 구성원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가지면서. 학생들의 모습은 밝았다. 메일 주소를 가르쳐 주면서 한 부탁은 전혀 모르는 슈퍼 주니어의 사진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미국에 가서 영주권이라도 따려고 발버둥치는 군상들보다 한국 국적을 고수한 채 사는 사람들이나 조선 국적(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무국적자들이다)을 가진 사람들이 진정 가슴으로 맞아야 할 사람들이라 생각하게 하였다.

일본 속 코리안들과 우리안의 외국인 노동자

2001년 일본의 후쇼사 교과서의 등장은 제국주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였고, 평화와 인권에 기반을 두어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후쇼사판 역사 교과서의 채택률을 1%도 미치지 못하게 하였다. 한국에서는 우리의 역사인식과 교육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하였고, 국사의 명칭이 세계사를 포함하여 '역사'라는 과목으로 나타났으며, 한국 문화사나 동아시아사 등의 과목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은 민주주의 성장이다. 민주주의가 가진 포용이 그를 가능하게 하였다. 상대도 나와 같은 인간이며,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재일 코리안의 처우를 비판한다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재일동포를 통해 동아시아를 볼 수 있으며, 동아시아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통해 평화와 공존의 동아시아 세계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의 시작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맞는 세계시민으로서의 행동과 실천이다.
아직도 부족한 측면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일부 국수적, 또는 무조건적 한국사 전공자들의 불만, 비판은 극복의 대상이다. 한 역사교육 심포지엄에서 필자는 '동아시아사'를 이야기하면서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어떻게 동아시아적 시각이 가능하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무시로 국경을 넘나들고, 미국의 주가가 그 날 한국의 주가에 반영이 되는 시대에, 특히 이 땅에 외국인 부모를 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이 시대에 언제까지 우리는 한 민족, 한 핏줄만을 강요할 수 있는가? 한국사를 통해 이 땅에 사는 이들이 아이덴티티와 이 땅의 문화에 대한 소양을 키우고,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볼 수 있을 때 이 사회가 진정 발전하고, 떳떳이 세계와 호흡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측면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필자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역사가 가장 재미있는 과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학생들에게 외면 받는 과목이 되었다. 역사를 좋아한다는 학생은 찾기 힘들고, 역사를 전공하겠다는 학생이 면담을 해 오면 눈물까지 날 지경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 역사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많은 이들이 역사를 암기식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두꺼운 역사책을 펴면 교사나 학생이나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리고 외우는 것은 왜 그리 많은지. 그런데 중간, 기말고사, 고등학생의 경우는 수능만 끝나면 다 잊어버리고야 만다. 점수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는 과목으로 전락하였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세계사는 2년 연속 채택률 최하위 과목으로 전락하였다.
따라서 개편되는 교과서는 지식 요소를 줄이는 대신 재미있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외우는 것을 줄이면 아이들이 역사를 정말 좋아하게 될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년 초 수업을 시작하면서 역사를 어떻게 공부할 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자신의 일대기를 써보고,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일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역사를 배우는가를 질문한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수업하면서 과거의 삶 속에서 어떤 것들이 의미가 있었고, 그것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최종적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 역사다'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말년에 인생을 반추할 때 부끄러움보다는 떳떳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역사라고 말이다.
학교가, 입시가, 직장이, 사회가, 자신의 뜻대로 되진 않는다. 이 모든 것은 경쟁으로만 생각한다면 그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나 역사 수업을 통해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정해진다면 그의 모든 행동은 경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성실히 실천하는 과정이 된다. 그의 앞길에 몇 번의 실패가 있더라고 그것은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하나의 담금질일 뿐이다. 역사가 그런 민주시민으로서 실천의지와 삶의 의미를 깨우치는 과목이라는 인정을 받을 때 역사 교사나 전공자들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나 외국인 자녀들도 그러한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것들은 전혀 다른 내용인 듯하지만 두 가지 내용을 관통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역사교육이다. 당당한 존재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고, 이 사회가 더 긍정적인 모습으로 발전하기 위해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동북아 역사재단 역시 동아시아 또는 국제시민으로서의 성장에 기여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지원해야 할 책무를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