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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분쟁지명의 국제표준화를 서두르자
  • 이기석 | 동북아역사재단자문위원(서울대명예교수ㆍ사단법인동해연구회장)

지난 10여 년간 물밀 듯 다가온 세계화는 우리 생활을 여러 면에서 바꾸어 놓았다. 특히, 정보통신의 발달은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세계 여러 장소와 생활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가져다주었으며 더군다나 장소를 일컫는 지명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구촌을 이해하는 기본 지식의 일부분이 되었다. 즉, 지명은 각 지역의 고유한 역사의 일부분으로 문화유산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국제간에는 교통·통신·소통 수단의 하나로 정보화 과정에 중요한 매체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익숙하고 소중하게 지켜온 지명들이 외국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바로 잡으려고 하여도 반대하는 나라가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난 2000년 역사에서 한반도 동쪽바다 이름을 '동해'라고 불러 왔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나라의 세계지도들이 소위 '일본해'라고 표기하고 있어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 1929년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있을 때 국제수로기구(IHO)에서 세계 해양과 바다 이름을 표준화 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인 후 지금까지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국제수로기구는 개정판인 해양과 바다의 경계 책자를 발간하려고 하는데 관련 국가 간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여 지난 10여 년간 답보 상태에 있다.

국제사회에서 달리 불리는 우리의 지명들

국제사회에서 우리 고유 지명의 왜곡은 이 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표기하고, 두만강을 "도문강"이라고 쓰고,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고, 미국 연방정부는 독도를 "리앙쿠르"라고 부르고 있다. 특히, 프랑스 어원인 "리앙쿠르"는 1849년 프랑스 고래잡이배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어 외국지도에 알려진 후 아직까지 쓰이고 있다. 이 뿐이 아니라 해도 상에서 동해 해저지형 명칭인 "울릉분지"가 "쓰시마분지"로 일본인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 이는 모두가 우리 영토·영해의 명칭을 국제적으로 표준화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일을 게을리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할 일은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고유한 명칭을 조속히 국제표준화 하고 이를 올바로 쓰도록 하는 일을 서두르는 일이다.
그러나 한번 잘못 왜곡된 지명을 바로 잡기는 정말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동해 명칭만 하더라도 1970년대 초반부터 관심 있는 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정부 차원에서는 1992년부터 UN과 관련 국제기구인 국제수로기구(IHO)에서 이를 바로 잡기위하여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간 정부와 민간의 노력으로 많은 민간 지도책과 전문서적의 표기들이 바뀌어 졌지만 국제기구의 관행은 아직껏 바뀌지 않은 채 지지 부진한 상태다. 특히, UN이나 IHO는 왜곡된 명칭을 바로 잡기위한 관련 결의안을 1970년대부터 채택하여 회원 국가들로 하여금 이에 따르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문제는 관련 당사국들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행히 동해 명칭에 관한한 UN이나 IHO에서 국제적으로 분쟁명칭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제 적절한 시기에 이들 국제기구를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또한, 지명의 국제표준화를 다루는 국제기구들은 관련 당사국간의 협의를 통한 해결을 종용하고 있으나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이 협의가 이뤄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처지다. 국제기구에서 동해명칭의 표준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중에 하나는 현재 국제기구에서 오래 전에 채택된 관련 권고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하여 세계화시대에 지명의 국제표준화의 중요성과 디지털시대의 지명표기의 유연성을 알리는 수정 권고안을 유엔지명표준화회의와 국제수로기구 총회를 통하여 채택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기존 권고안들이 채택 된 것이 이미 30여 년 전의 일이라 최근 지도 제작 기술 발달에 따른 전자디지털 지도의 상용화 그리고 새로운 유엔해양법에 따른 해양의 배타적 경제 수역 설정 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UN의 "일본해" 통용 바로잡는 외교력 발휘를

그리고 동해 국제표준화 문제의 경우 1992년 이래 이미 UN지명표준화회의(UNCSGN)와 UN지명전문가회의(UNGEGN)에서 분쟁명칭으로 논의가 지속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UN내에서는 "일본해" 명칭만을 통용하는 잘못된 관행을 지속하고 있어 속히 강력한 외교력을 발휘하여 바로 잡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내에서 표준화된 우리의 고유한 명칭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실용적인 홍보전략을 세우고 이를 수행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UN은 회원국에서 표준화된 명칭을 국제표준화의 기틀로 삼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표준화 현황을 널리 알리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최근 정부에서 발간한 『대한민국 국가지도집』의 주요 지도를 선별 재편집한 축소판을 만들어 홍보에 이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밖에 외국에서 발간되는 세계지도집과 해마다 출간되는 각종 세계연감집의 지명표기의 잘못을 체계적으로 시정하는 일을 동북아역사재단이 중심이 되어 우선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정 작업의 일부를 지금과 같이 NGO에 의존하는 일은 효율성 뿐 아니라 국가기관의 공식적 입장 전달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재고하여야 할 것이다. 재단에서 이 분야의 전문가를 확충하는 일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왜곡 문제를 관련국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협의하듯이 가능하다면 지명의 왜곡과 국제표준화를 위하여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 토론과 논의를 하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명의 국제표준화는 정보통신사회에서 보다 신속한 정보 교환을 위해서 필연적인 것이며, 국가의 정체성을 알리는 첩경이 되기 때문에 잘못된 명칭들은 서둘러 시정하여야 한다. 동북아지역의 평화 공존과 번영은 구성 국가간의 역사 왜곡을 중단하고, 영토와 영해에 대한 갈등을 청산 할 때에야 만 이루어 질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로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