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2월, 신정부의 과거사와 역사외교 대응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전문가 간담회를 마련하고, 일본과 중국관련 전문가를 각각 초청하여 발표·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정리해 싣는다. _ 편집자주
먼저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대응평가와 신정부의 대응방향"을 논의한 일본관련 간담회에는 박철희 서울대 교수, 이원덕 국민대 교수, 진창수 세종연구소 부소장 등이 참여하였다. 발표자들은 노무현정부가 일본의 과거사문제와 경제사회 교류를 연계하지 않은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또한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제도적 기반 마련 및 국제적 연대협력의 가능성 증가와 다양화도 긍정적 측면으로 보았다.
부정적 측면으로 대통령과 청와대 중심주의, 외교적 신중성 결여, 과거사 환원주의, 일본 내 건전한 세력과의 연대를 위한 노력부족 등을 지적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의 국내우파가 결집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한국인의 호감도가 낮아진 점, 지방자치 교류의 심각한 타격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과거사는 완전한 해결이 힘들며, 문제가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견해가 공통된 결론이었다.
신정부의 과거사 대응 방향에 대한 논의에서는 과거사 문제 발생 시 필요한 관리지침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예컨대 정부각료가 삼가야 할 발언을 규정한 대응지침(code of conduct) 형식의 비공식적 관리기준을 마련하고 일본과도 합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관성 있고 명확한 대일 외교원칙과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과거사 발언 대응 지침 마련을
사안별 분석에서 발표자들은 우선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에서 미국과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일본 공직자의 야스쿠니 참배는 전후 미국의 국제질서인 샌프란시스코 강화질서를 부인하는 것이므로, 이에 반대하는 미국 내 학자 등 여론을 움직이는 세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독도문제는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자신감 위에 이를 공고화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현재 일본외교부 영토사료실 등이 일본에 불리한 사료를 파기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러한 고증자료를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발표자들은 현재 일본의 우경화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건재하므로, 일본이 주변국과 국제적 공존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우리의 국력이 증대되면서 우리와 일본의 국력차이를 실제보다 훨씬 낮게 인식하는 경향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역사논쟁의 현황과 신정부의 정책방안"이라는 주제로 마련한 중국간담회에는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유용태 서울대 교수, 한석희 연세대 교수, 임기환 서울교육대 교수 등이 참석하였다.
먼저 간담회에서는 중국 역사학계의 최근 동향으로, 1990년대 이후 자국의 전통에 대한 긍정을 핵심으로 하는 문화보수주의 담론이 부상하고, 새로운 중국사 창출을 위해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역사공정(하상주단대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동북변강역사현상계열연구공정 등)이 진행되면서 황하지역과 계통이 다른 지역의 고대문명을 자국사 범주로 편입하여 체계화하는 상황이 언급되었다. 이에 따라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지방정권으로 규정하고 그 범위를 계속 확장하여 백제와 신라, 고려까지 소수민족 지방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중국의 한국고대사 왜곡의 새로운 경향으로 기존의 조공·책봉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연구방법론이 등장하였다. 이는 민족공동체와 국가공동체를 구분하는바, 고구려는 독립성을 갖는 민족공동체이지만 중국이라는 국가공동체에 속한다는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중국동북사 연구의 이론적 틀은 '요하문명론'에 이어 '장백산문화론'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론뿐만 아니라 중국이 동북지역의 한국고대사 관련 유적을 복원과정의 잘못으로 재 왜곡하거나 역사유적 훼손까지 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예컨대 중국 각 지방행정 단위별 관광지 개발사업의 주요대상인 고구려성곽 유적에 대한 훼손과 파괴가 빈번하여, 중국 문물국이 이에 대한 관광지 지정을 취소했을 정도라고 한다.
발표자들은 2000년대 초부터 한·중 역사문화분쟁의 첨예한 대립이 확대되는 양상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우선 중국에서는 개혁개방 후 이념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통과 민족주의, 중화주의가 부활하는 추세 및 속지(屬地)주의적 문화관 등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중국 측이 주장하는 한국의 원인은, 외형적 경제성장을 달성한 후 문화적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자원이 부족하므로 원조인 중국문화를 끌어다 쓰는 '남의 것 침탈' 현상 발생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일국중심 배타적 문화관 대신 냉정한 관점 필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는 한국과 중국이 함께 일국중심의 배타적 문화관을 뛰어넘는 냉정한 관점이 필요하며, 중국문명이 원래 호혜적이고 주변민족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 것임을 중국 측이 자국민에게 힘써 알리도록 촉구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현재 중국 학계에서는 중국문명이 다양한 종족들의 문명 위에 형성되었다는 다원주의론이 정론이지만, 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주변국의 역사와 문화를 쌍방적 관계로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의 대국주의 역사인식은 동북공정의 논리를 보강함으로써, 우리 역사인식 체계와 마찰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작년에 공식적으로 일단락된 동북공정은 여러 역사공정의 하나이며, 한·중관계로만 접근해서는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협소한 일국사적 인식 보다는 세계 문명사와 동아시아 지역사에 대한 보편적인 시각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찾아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향후의 대응방향에 대해, 발표자들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에 많이 소개함으로써 한·중간 문화갈등과 오해를 풀어야 하며, 동북지역 고구려 유적의 복원이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바로잡아야 하고, 나아가 중화민족사관을 상대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네스코가 마련한 '국제이해교육표준'에 입각하여 '국제이해지수'를 측정하는 등 한·중관계만 아닌, 세계적 시각의 대응을 모색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하였다. 특히 동북아역사재단이 국제기구와 연대하여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국내 동아시아 역사인식을 제고하는 연구와 교육활동을 배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