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김새가 서로 같고,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는 단일민족입니다(초등학교 6학년 사회).""민족, 언어, 문화가 같은 단일민족인 우리나라는…(중학교 3학년 사회).""우리 민족은 반만 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세계사에서 보기 드믄 단일민족국가로서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등학교 1학년 국사)."
한국은 단일하고 순수한 혈통과 동일언어와 문화를 지닌 한민족만으로 성립되었다는 단일민족 관념은 초ㆍ중ㆍ고등학교의 교과서를 통해 반복 학습됨으로써 시민들의 역사적 기억을전유(專有)할 만큼 초역사적 실체이자 신화화된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으로 우리 뇌리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다.그러나 우리 모두가 한 핏줄이라는 단일민족이라는 지배적 통념은 단군 시대부터 비롯되는 유구한 관념은 아니다. 단군이 "민족의 시조"라는 인식이 확산된 때는 고려 말 조선 초라는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소위 단군의 자손이란 주장은 삼한정통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고려 말『삼국유사』나『제왕운기』를 통해 문자로 기록되었고 조선 초 권근 등에 의해 제기되어 실학자인 성호 이익등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고려 말에 나온『단군본기』와『제왕운기』에"신라, 고구려, 남ㆍ북옥저, 동ㆍ북부여, 예ㆍ맥 등이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거나"삼한 70여국의 군장들이 모두 단군의 후예"라는 인간 집단의 동원성(同源性)을 강조하는 기록이 나온다하여, 이를 근거로 신분의 차등이 있던 전근대시기에공동체의 성원 모두를 아우르는 민족의 수직적 통합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조선시대 삼한정통론에서 비롯된 단군의 자손이란 주장도 단군이 시기적으로 중국에 뒤지지 않는 나라를 세웠고, 기자가 중국 못지않은 교화를 베풀었으니 단군과기자를 계승한 조선은 중국에 필적하는 중화의 문명국이라는의미가 담긴 화이관(華夷觀)에 입각한 문명론이었지, 조선 사람 전체가 동일한 혈통집단이라는 점을 말한 것은 아니다.
단군자손, 만들어진 전통
서양사학자 임지현의 지적처럼 한국사학계의 단일민족론은 전근대사회에존재하는 "민족체"(Nationality)와근대 "민족"을 동일시해 민족을초역사적인 자연적 실재로 부당전제하는 과잉 민족의식이빚은 오류이다. 굳이 홉스 봄(E J. Hobsbawm)의 견해를 빌리지 않아도 우리 뇌리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인 모두는 단군의 자손으로단일민족이란 개념은민족주의의 형성과 함께" 만 들 어 진 전 통 "(the Invention of tradition)으로 근대 계몽기의 산물임이 분명하다.
농촌지역 신혼부부 열 쌍 중 두 쌍 이상이 국제결혼으로 맺어지고, 코리안 드림을 품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도50만 명을 상회하는 오늘 더 이상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이들은 낯선 타자가 아니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일원이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했지만 한국 사회는 다인종ㆍ다문화 사회로 접어든지 이미 오래이다. 이는 얼마 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가"단일민족"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의뿌리 깊은 사회ㆍ문화적 인식이 다양한 인종들 간의 이해와 우호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한국 사회의 다(多)인종적 성격을 인정하고 이에 걸 맞는 적절한 조치를 사회ㆍ문화ㆍ교육 분야에서 취하라는 권고를 한국정부에 전해온 데서도 알 수 있다.
신화화된 단일민족 관념과 아직 충분히 자각되지 못한 다인종 사회의 현실이 서로 부딪치고 있는 지금 우리 내면 깊숙한곳을 지배하는 것은 복제 오리엔탈리즘일 수도 있다. R과 L을본토인처럼 발음하게 하려고 어린 아이들의 혓바닥을 절제하는 수술을 서슴지 않으며, 서구인의 생김새를 흉내 내 콧날을세우고 쌍꺼풀을 성형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들은 하얀 가면 너머로 세상을 보는 데 너무도 익숙하다. 이주노동자라도 피부색과 생김새에 따라 하늘과 땅 정도로 차이 나게대우하며, 양첩과 천첩의 소생을 서자(庶子)와 얼자(孼子)로차등을 둔 조선시대 사람들처럼 오늘의 우리도 부모의 피부색을 기준으로 혼혈인을 갈라 세운다.
그러나 우리 의식 속 깊이 깔려 있는 타자에 대한 깔봄이 인종주의에서 유발된 것만이 아님은 같은 혈통의 고려인, 조선족, 재일동포, 재미동포에 대한 서열화 된 차별대우에서 알 수있다. 그것은 분명 단일민족의 신화가 빚은 인종적 차별이 아니라 돈의 유무에 기반을 둔 물신주의의 산물임에 진배없다.사람됨을 재는 척도를 재물의 많고 적음에 둘 수 없듯이, 인종과 문화가 다른 이들을 그들이 속한 사회나 국가의 물질적 풍요와 빈곤의 정도에 따라 내려 보고 올려 보는 것은 너무나 천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