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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역사를 통해 국제적 안목을 키우자
  • 임기환 |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임기환

최근 사람들이 둘러 앉아 나누는 가장 두드러진 화제는 미국으로부터 나오는 소식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소위 세계경제 위기의 진원지도 미국이고, 또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하는 것도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당선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변화의 모색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여전히 세계의 중심 지위에 있음이 확인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롭게 다극화의 체제로 움직여 가는 세계 질서 변동의 계기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고, 미국도 그러한 대세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세계질서가 새로운 맥락으로 변동하는 시점에서 우리 역시 이제와는 다른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안도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실 필자는 각종 언론에서 쏟아내는 이런 세계적 동향에 그리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세계적 변화들이 이내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내 가정이나 주위의 사람들에게까지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문득 깨닫고는 놀라게 된다. 나도 모르게 그리고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내 삶이 "세계" 속에 편입되어 있었음을 자주 확인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세계화의 물결은 우리 한국인에게는 한때 IMF 관리체제를 겪는 뼈저린 아픔도 주었지만, 아울러 현대 세계사의 맥락과 우리 국가 사회가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갖고 있음을 다시금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90년대 이후 학계의 일각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제법 넓은 기반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론'도 그러한 성찰의 산물로 이해된다.

이러한 현실은 역사 연구에서도 민족과 민족사의 범주를 넘어서서 세계사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할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세계사는 요즘 유행하는 글로벌 히스토리를 가르키는 것은 아니다. 각 시대마다 다양하게 전개되는 한국사를 둘러싼 확장된 세계 정도로 한정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굳이 동아시아론이 아니더라도 당대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사의 맥락을 짚어보아야 한다는 역사인식은 당연하다.

한국사와 세계사의 맥락을 결합해야

사실상 우리 역사를 간략히 개관해 보면 과거 전근대시대에도 역시 동아시아라는 당대 세계 질서의 변화 맥락에서 한국사 역시 새로운 변동을 추구하거나 혹은 변화가 강요되곤 했음을 쉬이 알 수 있다. 우선 7세기 동아시아세계의 변동만 보아도 그러하다. 수와 당이라는 통일제국의 등장으로 인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동은 고구려, 백제의 멸망과 신라의 삼국통합 및 발해의 건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후 고려의 성립 역시 대륙에서 당이 무너지고 오대십국시대가 전개되는 변동기와 맞물려 있다. 조선의 건국은 원명교체기라는 국제정세의 변동과 깊은 연관관계를 갖는다. '모든 근대사는 곧 세계사'라는 명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근대사야말로 세계자본주의의 확대의 역사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지 않은가. 물론 위에서 지나치게 개괄적이고 거시적인 사례를 들었지만, 왕조의 부침이 가장 격렬한 역사 변동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리 틀린 예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교과서에는 이러한 세계사와 한국사의 연관관계가 매우 소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초등역사교육은 아예 그 범위가 한국사에만 한정되어 있고, 중고등 역사교육에는 세계사 영역이나 과목이 편성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그 내용은 서구중심의 세계문화사의 인식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아니라, 한국사와 세계사를 기계적으로 결합한 인상도 지울 수가 없다. 새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 역사교육에 '동아시아사' 과목이 새로 편성되어 기대를 갖게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어떠한 내용으로 구성할 것인가 하는 과제 해결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는 그동안 한국사의 인식틀이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그리고 '우리의 세계사'를 구성하는데 얼마나 소홀하였는가는 드러내는 현실이기도 하다.

물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세계화, 국제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흐름은 지나칠 정도로 크다.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영어교육의 광풍도 따지고 보면 세계화라는 명제 속에서 촉발되고 있음이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나를 중심으로 세계와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에 대한 교육은 저만치 비껴나 있다. 근대사 이래로 한국은 언제나 세계 최강국의 이해관계가 교차되는 위치에 있어왔다. 이런 국제환경에서의 생존법에는 국제화된 안목과 대응 태도가 필수이다.

역사 속에서 국제적 안목을 배워야

사회의 다양한 학문과 교육 영역에서 이러한 과제를 수행해야 하겠지만, 필자는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이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역사의 영역이야말로 가장 다양한 세계사의 현실과 그 현실에서 민족과 국가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역사에서도 국제 질서에 대응 방식에서 당대의 성공과 실패가 교차되는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역시 기왕의 역사 기술과는 다른 관점과 영역을 새로 개척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대외관계사만 하더라고 매우 취약한 영역이지만, 이제는 단순한 대외관계사가 아니라 동아시아사라는 확장된 역사의 범주를 설정하여 그 속에서 역사 맥락을 읽어내는 역사 연구와 역사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역사 연구나 역사교육의 구체적인 작업을 어디에서 중심적 위상을 갖고 수행할 것인가이다. 한국에는 여러 역사관련 연구 기구가 있지만, 각 기구의 지향점이나 역할에 일정한 차이가 있다. 그중에서도 동북아역사재단은 그 이름대로 국제화 세계화된 역사연구의 중심이 되기에 가장 적절하다. 물론 동북아역사재단의 출범이 한·중·일 간에 전개된 역사 및 영토 분쟁 등을 계기로 하였다는 점에서 그 기능과 목표도 뚜렷한 바가 없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출범의 목표를 넘어서는 보다 확대된 역사연구의 추진체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근자에 빈번해진 한·중·일 삼국의 역사 분쟁도 따지고 보면 다양한 요인이 있으며, 상대방이 있는 국가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성찰 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자신의 역사인식의 틀을 확장할 때 비로소 한국역사학이 가장 큰 소득을 얻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새로운 변동을 모색하는 시기라고 한다. 무엇보다 변동의 시기에는 특히 역사에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굳이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만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발걸음을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역사 연구가 그러한 본연의 역할을 크게 확장해야 할 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