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은 몽골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소장 D. 체벤도르지)와 공동으로 7월 21일부터 8월 20일까지 30일간 몽골의 아르항가이, 오브스, 흡수굴, 헨티 등의 아이막 내에 분포하는 선사 시대의 암각화와 사슴 돌 유적지를 조사하였다. 이 조사는 지난 2007년의 고비알타이 아이막 바양 올 솜 일대의 암각화 조사에 이어서 두 번째로 실시된 것이다. 이 조사를 통해서 총 300여 개의 암면에 그려진 형상들을 채록하였다.
이번 조사의 목적은 문헌 사료가 없는 중앙아시아 선사 및 고대 문화의 보편성과 한국 민족 문화의 계통성 등을 밝히기 위함이다. 한국 상고사와 관련하여서는 안타깝게도 우리의 조상들이 남긴 문헌 자료들이 빈약한 상황이며,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주로 화이관에 입각하여 기술된 중국 사료들을 주 자료로 활용하여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국 측의 사료들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내용 등 우리가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도 지니고 있다.
문헌 사료가 안고 있는 이와 같은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당시의 사람들이 이용하였거나 남긴 생활이기 또는 조형 예술품 등을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선사 시대 인류의 문화유산은 주로 지표 속에 매장되어 있거나 바위, 돌멩이, 뼈 그리고 도구 등에 시문된 조형 예술품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고고학자나 선사 미술 연구자들은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조사하는 등의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고 또 그 성과를 토대로 하여 지나간 시대의 문화상을 하나씩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ㆍ종족 차이를 통합하는 보편성을 찾아서
광역의 문화권 속에는 풍토와 종족 그리고 시대의 차이에 따른 지역색이 드러나는 등 문화상의 상이성이 분명히 살펴지지만, 특정한 시대에는 지역과 종족의 차이를 통합하는 시대적 보편성 또한 나타난다. 바로 그 보편성을 추출하기 위하여 동북아역사재단은 예니세이 강 중ㆍ상류 지역, 몽골, 카자흐스탄 그리고 중국 북방 지역의 암각화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고자 하였고, 그 첫 번째 조사 대상지로 청동기 문화의 발상지 가운데 한 곳인 '하카스코-미누신스크' 분지 일원의 암각화 유적지들을 지난 2006년에 조사하였다(『중앙아시아의 바위그림』, 2007, 동북아역사재단).
2007년도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고비 알타이 아이막 일원에 분포하고 있는 암각화를 조사하였으며, 이를 통해서 초기 고구려 고분벽화의 핵심적인 주제인 수렵도, 행렬도, 개마무사, 전투도 등과 동질의 그림들이 이 지역의 고대 암각화 속에서도 그려져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곧 한국 민족 문화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북방의 수렵 및 유목민 문화와 친연성이 짙어짐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결과물도 자료집의 형식으로 발간 준비를 하고 있다(2008년 12월 발간예정).
전술한 것처럼, 동북아역사재단은 2008년도에 몽골의 서북쪽에 있는 오브스, 북부 지역의 흡수굴 그리고 동북쪽의 헨티 아이막에 분포하고 있는 암각화 유적지들을 조사를 하였다. 이 가운데서 오브스 아이막에서는 '조라그트 하드', '후렝 우주르 하단 올' 등의 거대한 암각화 유적지를 조사하였다. 이 두 유적지는 그동안 학계에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한ㆍ몽 공동 조사단은 처음으로 공식적인 조사를 한 셈이다. 차후 유적지의 위치, 규모, 내용, 미술 문화사적인 성격과 의의 등을 관련 학계에 공식적으로 보고할 예정이다.
흡수굴과 헨티 아이막 내의 암각화들은 그 내용이 부분적으로 소개된 바 있으나 구체적인 규모 및 주제 등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이 지역의 암각화들이 우리나라 학계에는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조사를 통하여 뜻 밖에도 사람 발자국, 말발굽, 곰발자국, 여성 생식기, 동심원, 타원형 등의 도상들이 집중적으로 그려져 있음을 확인하였다.
'조라그트 하드' '후렝 우주르 하단 올' 유적지 첫 공식 조사
예를 들면, 흡수굴 아이막 체체를렉크 솜의 '오로신 톨고이'와 부렝토그토흐 솜의 '친군자빈 이흐 바가 몬' 등지의 암각화 속에는 각종 동물 형상과 함께 사람의 발자국(사진 1), 여성 생식기, 말발굽(사진 2) 그리고 곰 발자국(사진 3) 등의 도상들이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또한 헨티 아이막 우문 델기르 솜의 '아라샨 하드'와 '우주르 하드' 암각화에서도 곰 발자국이 집중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특히 아라샨 하드 암각화는 석기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동물, 기하학적인 형상 그리고 거란과 몽골 등의 고대문자와 함께 한자로 쓰인 기록들이 남겨져 있었다. 이러한 점은 아라샨 하드 암각화 유적이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 주민들의 중심적인 성소의 역할을 하였음을 증거 해 주는 것이다. 특히 이 유적지 중의 한 암면에는 동심원, 타원형, 수직으로 분할된 동그라미 등의 기하학적인 형상들이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었다(사진 4).
그런데 우리나라의 안동 수곡리, 경주 금장대, 포항 칠포리 그리고 울산 천전리 등지의 암각화 속에도 유사한 유형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수곡리와 금장대의 암각화 속에는 사람의 '발자국' 형상과 더불어는 소위 '말발굽'과 '곰발자국' 도상들이 새겨져 있으며, 포항 칠포리 암각화 가운데 한 암면에는 여성기가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다. 또한 국보 제147호인 천전리 암각화 속에는 마름모꼴, 동심원, 타원형 등을 중심으로 한 기하학적인 형상과 원명과 추명 등을 포함하여 천 수백 개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간 국내 학계에서는 내몽골 일원에서 단편적으로 살펴지던 유사한 형상들을 두고, 한국 암각화의 원류가 그곳이었다는 주장들을 펼쳐왔다. 그러나 우리 재단이 펼쳐온 일련의 조사 성과들은 그러한 주장들이 지나치게 성급하였음을 지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광역의 문화권 속에서 펼쳐온 그간의 조사 성과와 그것을 토대로 한 지역 간의 비교 연구는 동일 계통의 제재, 주제 그리고 양식의 분포 지역과 범위를 새로이 설정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다시 말하자면, 동일 문화소들이 보다 광역의 문화권 속에 분포하는 점과 그에 대한 새로운 방점을 찍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한국 선사 문화와 동질의 문화권을 밝히는 일이자 동시에 한국학 정립의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