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은 갈등연구의 천국과도 같다. 그만큼 각 대학들이 갈등분석이나 갈등해결, 갈등중재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갈등연구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갈등분야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볼 수 있는 무력갈등이나 인종갈등부터 통상마찰에 이르는 갈등까지 귀에 걸면 귀거리, 코에 걸면 코거리 식으로 갈등연구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그중 갈등연구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조지메이슨대학의 '갈등분석과 해결을 위한 연구소'(Institute for Conflict Analysis and Resolution)의 케빈 아르브흐 교수를 찾았다. 이 연구소는 자체적으로 갈등연구의 석박사과정을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고 있으며 갈등연구의 이론분야에 있어서 인정을 받고 있다.
Q.양미강(이하 양): 안녕하세요. 지금 동아시아에는 위안부문제, 영토문제 등 다양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지요?
A.케빈 아르브흐(이하 아르브흐): 네. 잘알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역사적 상흔이나 트라우마는 모두가 나서서 해결할 때까지 결코 해결되지 어렵다고 봅니다.
Q.양: 선생님이 역사적 트라우마라고 말씀하시는게 꽤 흥미롭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A.아르브흐: 내가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개인적 상처와 마찬가지로 사회와 국가 역시 그들의 역사에 의해 규정받고 있기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다는 점이죠. 과거는 결코 과거를 끝나지 않고 항상 현재가 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역사적 트라우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Q.양: 동아시아의 역사적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아르브흐: 직접적 요인은 1920-30년대 일본제국주의와 군사주의의 팽창에서 비롯되었지요. 2차 세계대전의 큰 지각변동이 있었는데,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쳤든지 간에 2차 세계대전은 승자가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거기엔 오직 패자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오늘날과 같은 갈등 상황은 일본이 무능한 게 주요한 원인이지요. 특별히 일본은 아시아의 이웃으로, 아시아의 일원으로써 담당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일본이 일종의 두려움, 그러니까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상처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군사주의나 우익의 민족주의가 그러한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
Q.양: 동아시아에서 역사갈등이 지역안보를 위협하거나 지역협력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A.아르브흐: 동아시아 역사갈등이 직접적으로 평화를 위협한다고 보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대부분 나라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거든요. 나는 협의의 개념으로 안보를 생각하지 않고요. 더욱 큰 문제는 국가간, 사람들간의 신뢰와 공감대가 없는 겁니다. 마치 전기휴즈가 타버려서 사고가 일어난 게 군사적 행동이나 폭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실 동아시아보다는 이스라엘이나 레바논이 더 큰 문제죠. 그들은 전기휴즈가 너무 짧아져서 조만간 사고가 일어날 것 같아요. 그러나 동아시아는 전기휴즈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Q.양: 정부나 엔지오 등이 역사갈등을 해결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A.아르브흐: 모든 사람들은 역할을 해야하고 할 수 있어요. 정부는 국가의 목소리를 법제화하거나 공식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죠.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은 국제법이나 공식적인 구조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죠.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엔지오 활동가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
Q.양: 최근 한일 양국간의 역사대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엔지오 차원에서는 한중일 공동으로 교재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A.아르브흐: 와우! 대단한 일이네요. 공동교과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공동교과서는 학교나 커리큐럼에서 과거의 역사를 다루기 때문이죠. 이것은 최소한 10년, 혹은 두 세대의 시간이 지난 후 지금의 학생들이 동북아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하는 중요한 작업인 것이죠.
Q.양: 미국은 동아시아 역사갈등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어떤 것이 미국의 역할일까요?
A.아르브흐: 미국은 거의 지구상의 모든 갈등에 개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미군은 오키나와에 주둔하면서 자연파괴, 강간이나 학대 등에 개입되어 있죠. 물론 매우 복합적인 문제죠. 갈등에 따라서는 미국이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어요. 특히 일본과 관련해서는 주변원인을 제공하지요. 그러나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90년대에 나왔었지요? 뉴욕타임즈에서 정규적으로 그것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 하원도 적절하게 결합되었구요. 그러나 미국이 이 문제에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Q.양: 작년에 통과된 미 하원의 결의안을 알고 있나요?
A.아르브흐: 미국이 다른 나라에 도덕성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다소 위선적이라고 봅니다. 상대방을 비난함으로써 행위를 촉구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미국이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비판하는 것은 비효과적입니다. 그것은 일본 정부의 입장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미국식 접근인 겁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으로 인해 반대효과, 즉 일본 우익이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Q.양: 어떤 방식이 공공여론을 확산할 수 있을까요?
A.아르브흐: 가장 좋은 방법은 학교교육과 미디어라고 생각해요. 일반 여론이 뒷받침 되지 않은 정부의 사과는 의미가 없어요. 그 예가 여기에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국민이 원하지 않은 채 정부가 앞서 나간 사례예요. 클린턴 대통령이 1992년에 아프리카를 방문해서 노예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을 때 그는 법적인 배상이 아닌 단지 유감만을 이야기했지요. 그때 미 하원의장인 텀 디레이가 대통령 탄핵을 이야기했습니다. "대통령 당신이 사과할 권리가 있느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대통령이 한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내가 왜 사과해야 하느냐?"고 반발했어요. 클린턴의 유감표명은 시기상조였습니다. 두 번째는 15년전인가요? 호주에서 정부가 국민들의 요구로 원주님들에 대해 사죄한 경우입니다. 당시 호주는 보수적인 국회와 수상으로 인해 당시 엔지오와 활동가들이 원주민들에 대한 사과를 하라고 요구해왔지만 거절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호주정부에게 압력을 넣기 위해서 사죄 북(sorry book)이라는 엽서를 통한 캠페인을 했고, 90년대 중반에는 온라인으로 서명을 진행해서 6-7년 지난 후에는 평범한 호주사람들로부터 수만, 수십만명의 서명이 있었어요. 그후 노동자 정당과 진보적인 수상이 당선되자 호주 원주민들에 대한 사죄안은 통과되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비록 정부로부터 일찍 사죄를 채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풀뿌리로부터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인터뷰는 미국인 연구자 로버트 파 박사와 함께했다. 케빈 아르브흐 교수는 중동 갈등전문가 답게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동아시아 역사갈등을 해결하는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와의 인터뷰는 연구소에서 이루어졌으며 구렛나루 달린 마음씨 좋은 시골 아저씨 같은 소박한 인상이 인터뷰 후까지 인상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