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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일 시민이 함께 나눈 감동, 새로운 역사를 쓰다
  • 이윤정 사진_ 송호철

지난 8월 22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개막해 29일 막을 내린 '강제병합 100년 한일 시민 공동선언대회'는 한일 역사 화해와 공동 번영을 위한 그간의 노력을 집대성한 것으로, 그동안 축척된 한일 시민사회 교류와 연대활동의 백미라고 할만하다. 이번 대회를 주관한 '강제병합 100년 한일 시민 공동행동 한국실행위원회' 이이화 상임대표를 만나 감동이 넘쳤던 선언대회의 뒷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_ 편집자 주

이이화 상임대표이이화 상임대표

지난 8월 강제병합 100년 한일시민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뤘다. 성공요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실행위원회 상임대표로서 소감은?

성공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대회가 열릴 무렵에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이례적으로 식민 지배를 사과하는 발언을 했다. 문화재 반환과 더불어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국인 지원 등을 거론했고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진일보한 발언을 한 것이다. 사실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 총리의 발언이 그 전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간 것도 사실이다. 이것만으로도 일본과 한국 시민 사회 관계자들 모두 고무된 분위기에서 희망을 가지고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요인은 발전한 시민의식을 들 수 있겠다. 특히 일본의 시민사회가 예전보다 훨씬 발전하여 국수주의, 군국주의를 벗어나고 있는 지식인 세대가 많아졌다.

대회를 치르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감동적이었다. 그동안은 간토(관동) 대지진 문제, 사할린 문제, 강제동원 문제 등 사안별로 따로따로 소규모 모임이 간헐적으로 진행되다가 이렇게 한국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통합적으로 진행했는데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8월 22일 일본 도쿄 도시마 공회당에서 열린 한일시민선언 일본대회에 참석 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8백석 자리에 1천3백여명이 들어차 끝까지 함께했다. 일부러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다니며 시민들로 가득 찬 현장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일본 우익들이 몰려와 소리치는 가운데서도 동요 없이 자리를 지킨 일본시민들을 보면서 울기도 했다. 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일본 시민들과 우리들, 또 역사문제의 피해자들이 한 데 어울려 대화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북돋아주었다. 그렇게 공감대를 만들며 또 감격했다. 그 자체가 평화였던 그날, 정말 많이 울었다.

시민대회 기간에 선보인 각종 공동프로그램과 행사 중에서 시민들의 참여와 반응이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은?

학술대회를 비롯해 부대행사, 문화행사, 지역별 행사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행사들을 많이 준비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뒤풀이 자리가 제일 좋았다. 한일 시민들 모두가 높낮이 없이 한 데 어울려 마음을 터놓는 그런 자리는 억지로 만들 수 없는, 정서적 교감을 나눈 자리였기 때문이다. 사실을 알게 하는 학술도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학술을 바탕에 깔고 정서적인 접근을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시민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함께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나누고 어깨동무를 하고 아리랑과 아침이슬을 부르며 감동을 나눈 사람들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시민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으로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거대한 감옥 식민지에 살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강제병합 100년 특별전시회'를 꼽을 수 있다. 나중에 전시회 관람객 숫자를 전해 들었을 때 깜짝 놀랄 정도였다. 지난 9월 30일까지 열렸던 전시회에서는 일제강점기 유물 및 개인 유품과 영상·음향자료, 전시영상, 사진, 회화, 공예 등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자료들이 시민들과 만났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부터 그 시대를 살았던 노인들까지 두루 전시회를 관람했다. 아이와 함께 전시회를 관람한 뒤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전해온 일본 시민들도 있었다.

시민들의 요구와 행동계획들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는데, 분야별 행동계획 중 현재 가장 시급한 계획과, 비교적 진척이 빠른 것은?

비교적 빠르게 진척되는 것으로는 원폭피해보상 문제를 들 수 있겠다. 원폭피해 문제는 누가 봐도 논란의 여지없이 분명한 것이고 피해자도 적다. 일본 내에서도 반대가 없으니 그나마 쉽게 해결이 될 것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로는 강제동원 문제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들 수 있다. 포괄적으로 보면 '위안부' 문제도 강제동원 문제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문제는 여성인권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따로 분류했다. 알다시피 그 시대에 강제동원 되었던 할아버지들,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 중에는 이제 생존자가 많지 않다. 생존해 있을 때 문제를 풀어줘야 한다. 한일시민들이 그렇게 많은 집회를 하고 요구를 해왔지만 명분 때문에 버티며 꿈쩍도 하지 않는 일본정부 때문에 애만 태웠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더디게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외교관계와 얽혀있어 정부차원에서 강력하게 요구할 수 없다" "정치는 현실이다"라고 말들 하지만 현실에서도 풀어야 할 것은 풀어야 한다.

이렇게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해보기 위해서 일본실행위원회와 상의해서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입법을 촉구하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일본 국회의원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수결'을 극복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런 역사적인 사안들은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와 민족의 문제이니 서로 소모적으로 대립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펼쳐온 한일 시민공동행동 사업에 대한 민과 관, 주위의 평가가 궁금하다.

우리들은 자발적으로 모여서 움직인다. 생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비를 들여서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한다. 알면서도 도움에 인색한 정부에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뜻에 동참해주는 시민들이 있어서 고맙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되돌아보고 얽힌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동참해주는 한일 시민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는 것, 그것 자체로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난 이번 시민공동대회에서 큰 가능성을 보았다.

앞으로 한일 시민공동행동 사업 추진위원회의 행보가 궁금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입법을 위해 계속 힘쓸 것이다. 말로만 이렇다 저렇다 하고 법을 만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문제가 터지게 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일본 국회에서 입법해야할 사안들이 더 많다. 상황은 분명히 예전보다 좋아졌다. 우리 생각에 동의하는 국회의원도 생겨났고 시민 압력단체의 힘도 점점 세지도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역사 문제는 평화의 문제다.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한일관계의 정립을 위해서 역사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한다. 더불어 중국과의 문제도 풀어야 한다. 지금 중국은 패권주의, 옛날의 중화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 있어 참으로 걱정스럽다. 주변국들로 하여금 옛날의 조공국으로 못 박으려는 듯 한 태도라고 느끼게 한다면, 갈등은 불가피하다.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초대이사장을 맡아 고구려역사관 건립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자체간 갈등, 고구려역사관 모금 강압수사 등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현재 어떻게 진행 중인지 궁금하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결국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이 사업은 지방정부에서 추진하게 되었고 시설등급도 한 단계 낮추어 '고구려 역사전시관'이 되었다. 2015년 완공 예정으로 구리시 교문동에 10만평의 고구려역사유적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공원 내에 고구려 역사전시관이 생긴다고 한다. 아차산 유적을 공유한 서울 광진구 측과도 협력해 함께 고구려 브랜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이야기가 되었다. 다만 애초에 공표했던 것처럼 순수 성금으로 건립하는 일은 한계에 부딪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고구려역사관 건립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중국이 중화주의로 회귀한다면 무서운 일이다. 고구려역사를 왜곡하며 우리 역사의 뿌리를 흔들고 있는 이때에 고구려역사를 바로 알고 널리 알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구려역사를 정립하는 일은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 줄 것이다.

평생을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애쓰며 역사를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다양한 역사이야기를 해주었다.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제 우리 역사와 문화를 보다 긍정적인 각도에서 보고 이야기하고 싶다.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우리나라 궁궐은 접근성이 뛰어나다. 크지도, 높지도, 거대하지도 않다. 돈이 없어서 못 지은 것이 아니라 백성을 생각해서 임금이 제한한 것이다. 또, 왕릉은 한 번도 도굴당한 적이 없다. 그 안에 보물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검소한 왕릉은 없다. 이런 숨은 이야기들을 알고 또 알려야한다. 우리 문화 전반에 걸쳐 장점들은 물론이고 단점까지 객관적으로 담은 역사와 문화이야기를 5개 국어로 번역해 출간할 계획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별러왔던 '한국인권사 이야기'도 쓸 계획이다. 집필을 위해서 앞으로는 외부활동을 줄이려고 한다. 더 갈고 닦아서 못 다 했던 이야기들을 쓰고 내 인생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갈 계획이다.

이이화

1937년 출생. 주역의 대가인 부친 야산 이달선생에게서 제도교육 대신 한학을 배웠다. 20대 후반부터 한국사 연구에 몰두해 민족사, 민중사, 생활사 중심의 책을 집필하며 근현대사 연구에 참여했다. 역사문제연구소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이사장, 강제병합 100년 한일 시민 공동행동 한국실행위원회 상임대표 등을 지냈다. 현 서원대 석좌교수. 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해 단재상, 심산상, 임창순 학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표적인 저서로는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인물로 읽는 한국사》 《백두산을 오르며 만나는 우리역사》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