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은 지난 5월 19일 한국지도학회와 공동으로 "역사지도집 : 개념과 방법론"이라는 주제 아래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는 동아시아 역사지리정보 전문가인 피터 볼 하버드대 교수를 초청,역사지리정보 시스템 관련 프로젝트와 역사지도책을 만드는 ‘황금기준’이 무엇인지 그 개념과 방법론에 관한 조언을 들었다.
피터 볼(Peter K. Bol)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와 문명학과 부학장
하버드X(하버드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프로젝트 책임자이며 China GIS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주요 저서로《중국지식인들과 정체성-사문을 통해 본 당송시대 지성사의 대변화》(1994),《역사 속의 성리학》(2010), 《송대의 역경》(1990, 공저)을 비롯해 다수의 중문, 일문, 영문 저서 및 논문이 있다.
김종근 사학자로서 생소한 역사지리정보 시스템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피터 볼 중국의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던 로버트 하트웰(Robert Hartwell)이라는 뛰어난 사학자께서 중국의 역사지리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계셨는데 저는 그 일에 관심을 가진 몇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트웰 박사께서 1996년에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하버드-옌칭 연구소의 몫으로 남게 됐습니다. 박사님께서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그 시스템을 책임지고 맡을 의향이 있는지 제게 물어보신 적이 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제가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중국에 관한 지리정보 시스템 관련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중국, 미국, 대만, 그리고 호주에 흩어져 있었는데 2000년에 다함께 만나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지 타진해 본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김종근 중국 역사지리정보 시스템 프로젝트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피터 볼 중국 역사지리정보 시스템(China Historical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즉 CHGIS프로젝트는 중국 역사 속 행정 체계를 보여주는 권위 있는 무료 데이터베이스 겸 지리정보 시스템을 구축한 프로젝트입니다. CHGIS 데이터베이스에는 중국에서 서기 221년에 통일된 관료주의적 제국이 탄생한 시점부터 역사 기록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모든 행정 단위가 입력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행정 단위가 시간이 지나면서 겪은 변화들도 모두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는데 왕조들의 시대가 끝나는 1911년 전까지 각 단위의 내부 개편뿐만 아니라 행정 단위와 경쟁하던 정권이나 왕조들의 수립과 종말이 가져온 변화들까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한을 두지 않은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2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국 역사 속에 존재했던 행정구분들을 탐구하는 기반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고 시공간 속 각 행정구역의 위치들을 디지털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입니다.
CHGIS는 사용자들에게 특정 시기나 관심 지역의 사회, 정치, 경제나 문화에 관한 정량적(quantitative) 그리고 정성적(qualitative) 데이터를 추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하나의 단일한 틀 안에서 사용자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다른 종류의 여러 데이터를 찾아 함께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합니다.
중국의 역사 기록이 가진 특유의 깊이와 폭을 감안할 때 CHGIS 프로젝트는 정확한 위치나 경계가 밝혀지지 않은데다 참고할 만한 지도도 존재하지 않는 먼 과거에 관한 정보를 다뤄야 합니다. 이것이 과거 속 지도 자료를 통해 위치나 경계의 확인이 가능한 지리적 단위들로 구성된 여타 국가들의 지리정보 시스템 프로젝트들과 다른 점입니다. 이와 같이 CHGIS 프로젝트는 고대(古代)의 역사적 장소들을 기록하는 데이터베이스 개발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역사지리정보가 역사기록에 대한 복수의 해석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역사지리에 대한 단일 서술을 반론의 여지없이 기정사실화하기보다는 데이터베이스 내부에 인용문과 출처들을 첨가해서 학술적 논쟁점들도 암시적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종근 하버드대 지리분석센터의 과거,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피터 볼 하버드대 지리분석센터(The Center for Geographic Analysis : CGA)는 2005년 가을에 제가 센터장을 맡아 설립되었고, 2014년에 센터장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CGA는 정량적 사회학 연구소(Institute for Quantitative Social Science : IQSS)의 "기술 플랫폼"의 한 연구 단위로 소속되어 있습니다. 하버드 지형공간 도서관과 지도 도서관이 마련해 놓은 기반을 토대로 해서 CGA는 지리정보학 인프라를 확충하고 그 결과로 창출되는 공간분석이 하버드 공동체 전반에서 이뤄지는 연구와 교육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CGA에는 지형공간 분석이 연계된 복잡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거나 연구 및 학습 응용 프로그램에 쓰일 첨단 기술을 도입 및 개발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상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나 자연환경의 지속적 모니터링, 위치파악시스템, 지리정보시스템, 지형공간 매핑기술 등의 활용, 원격 감지 화상과 벡터 데이터를 결합한 매핑 시스템의 활용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김종근 국제 협력이라는 차원에서 중국에 있는 중국 학자들과 공동으로 HGIS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에 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피터 볼 중국 학자들과 협력한 이유를 꼽자면 첫 번째로는 비전을 공유하고 두 번째로는 전문지식을 보유한 참여자가 필요하고 세 번째로는 자금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비전을 공유하는 여러 국가의 학자들이 우리 프로젝트를 위해 모였는데 이에 관해서는 CHGIS 프로젝트 웹사이트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문지식은 복단대학교 역사지리연구소에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자금은 모든 협력 기관들이 힘을 합해 헨리 루스 재단(Henry Luce Foundation)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시는 바와 같이 상기 공동 프로젝트는 저희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리기는 했습니다.
김종근 역사지도책을 만드는데 있어 역사 연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피터 볼 역사지도책은 역사적 자료를 모을 수 있는 연구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행정구역 내의 계급, 구역의 위치나 관할범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들 없이는 학문적으로 신뢰할 만한 역사지도책 편찬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현재에 있는 누군가의 정치적 소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거를 다루는 역사지도책을 만들어 낼 수도 있기는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전제는 우리가 학자로서 정직함과 청렴함을 마음속에 되새기면서 동시에 최고 수준의 연구를 지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종근 HGIS 프로젝트나 다른 역사지도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리학자나 지도제작자들과 협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떤 점일까요?
피터 볼 제가 참여해본 프로젝트가 CHGIS 밖에 없는데 그것은 역사지도책이 아닙니다. 대신 역사지도책을 만드는데 활용 가능한 기초적인 지리정보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오늘날 중국의 특정 지역에서 서기 221년부터 1911년 사이에 존재했던 왕조 국가의 행정 기관들이 어느 위치로부터 얼마 동안 존재했는지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중국의 강과 해안지대에 관한 데이터 세트들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선과 점만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에 지도제작자들과 일할 필요는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지리학자들은 저희 프로젝트에 있어 필수적입니다. 그분들이야말로 각 장소나 수로, 해안선에 나타난 변화들에 관한 연구를 가장 잘 파악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김종근 국제 표준에 맞는 역사지도책을 편찬하고 출간하려면 역사학자들, 지도제작자들, 그리고 지리학자들 사이에 어떤 식의 협업이 필요할까요?
피터 볼 이번 국제학술회의의 기조강연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역사지도책을 만드는 ‘황금 기준’이 무엇인지 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종류의 정보를 포함시킬 것인가에 관해서는 각 편찬사업의 주체가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프로젝트에 필요한 전문지식이 무엇인지 파악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종근 저희 재단의 역사지도책 프로젝트를 위해 가장 적절한 본보기가 될 만한 역사지도책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추천해 줄 수 있으신가요?
피터 볼 개인적으로 좋은 본보기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과감하게 새로운 기술을 통해 ‘도약’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뒤따르지 말고 앞장서보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