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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역사적 사실과 영화 미학의 결합 -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다 -
  • 글  유장근 경남대 역사학과 명예교수

1987년 제작된 베르나르드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가 국내에서 개봉되었을 때, 영화비평가나 관객들은 대체로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것은 이 영화가 권위에 빛나는 아카데미상을 휩쓴 데다,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역사성과 더불어 영화적 요소가 탁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영화의 저본이 되었던 아이신지오로 푸이의 자서전과 영화를 비교해 보면, 감독은 비교적 공정하게 푸이의 일생을 그리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역사를 왜곡했다거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이유를 들어 비난하기도 하였다. 서양의 자본으로, 서양의 감독이 주로 구미의 관객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만든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푸이의 가정교사인 존스톤은 합리적이고 문명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청조의 전통이나 인물들은 대체로 기괴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양상으로 묘사되어 있는 장면들이 그렇다.

네 개의 국가 유형을 거친 마지막 황제의 일생

이 영화에서 푸이의 일생을 죽 따라가다 보면 식민지 국가인 만주국을 포함하여 청조라는 왕조 체제, 중화민국이라는 공화 체제,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인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네 개의 국가 유형 속에서 유동했던 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그에게 청조란 철없는 시절의 국가였던 반면, 청년 시절에 겪은 중화민국은 분노의 대상이었다. 특히 청조의 황제릉이었던 동릉이 도굴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는 다짐까지 할 정도였다. 이와 달리 중화인민공화국은 그에게 전범이란 딱지와 더불어 개조된 인간이란 명예를 부여하였으며, 만주국은 황제라는 명예와 함께 일본의 괴뢰라는 치욕도 동시에 안겨 주었다. 감독은 특히 이 시기를 살았던 푸이의 삶을 몇 가지 색으로 표현하였을 정도로 그의 인생을 묘사하는데 전력을 다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노란색은 최고의 황제 시절을, 붉은 색은 푸이의 삶 자체를, 하얀 색은 형무소 안에서 자유를 얻었을 때의 완숙함을 표현한다고 한다.

푸이가 마주친 국가 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만주국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 덕택에 우리는 만주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만주국이란 일본의 괴뢰일 뿐이다. 영화에서처럼 만주국의 황제나 위정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 일본의 전범과 동일한 수준에서 처리되었다. 한국에서도 만주국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천지였던 동시에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에게는 저주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최근 만주국에 대해 새로운 형태로 주조된 현대 국가라는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일본의 괴뢰국이었다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되풀이된 바와 같이 푸이를 비롯한 만주인들은 자신의 국가를 갖고 싶어 했다. 개개의 민족들에게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일이 근대의 중요한 추세였음을 감안한다면, 푸이의 소망도 당연히 그러한 시세 속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만주국을 일본의 괴뢰국이라고 규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푸이나 만주족의 이상이 얼마나 투영되어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푸이를 둘러싼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더 유용할 것이다.

만주국 건국을 통해 왕조 부흥을 꿈꿨던 푸이

<마지막 황제> 에서도 감독은 이 부분에 특별히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수용소 시절의 푸이를 역사적 사실에 가장 가깝게 묘사하기 위해 수없이 이곳을 찾아 수용소장 등 관련 인사들의 증언을 들었다고 한다. 감독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전범 신분으로 푸순 수용소에 갇히는 과정에서 공포를 느낀 푸이가 화장실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을 삽입하였을 만큼 중공 측과 푸이의 감정을 세세하게 묘사하였다. 중국 당국이 끊임없이 심문하는 장면도 이 영화의 주요 테마일 것이다. 회상 형식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의 첫 장면이 바로 푸순역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중국 당국의 심문 요지는 과연 그가 자발적으로 일본과 협력하여 만주국을 건국하였는가, 아니면 강요에 의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 영화 속에서 중국 조사관은 거의 악귀처럼 그려지는데, 이것이 아마도 푸이가 처음으로 부딪혔던 인민공화국이라는 실체였을 것이다.

사실 푸이는 그의 자서전 속에서, 일본의 도움을 받기는 하였지만 자신의 왕조를 부흥시켰으면 하는 희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속마음을 심문관 앞에서 정직하게 발설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죄가 더 무거워질 것을 염려한 까닭에 만주국의 황제 취임은 일본의 강요에 따른 것이라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중국 당국의 심문 의도는 결국 만주는 만주인의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토이며, 따라서 그의 죄는 국토를 떼어 내어 일본에 넘겨주었다는 데에 있었다. 푸이가 이를 자백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수단의 여하를 불문하고 심문은 외견상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감독은 만주국에 대한 중국 측의 의도를 변호했다기보다 오히려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백을 강요한 것에 더 비중을 두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푸이가 수용소에서 김원 소장을 만난 것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한 줄기 빛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상북도 봉화 출신이었던 김원은 생활고로 야반도주한 부모를 따라 만주에 간 뒤 중국 공산당 소속의 8로군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감화 덕에 푸이는 그야말로 새로 개조된 인간으로 재생되어 사회에 나갈 수 있었다. 특히 김원은 푸이에게 자서전을 쓰게 함으로써, 뒷날 문화대혁명 때 반역자를 도왔다는 이유 때문에 홍위병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면 푸이의 개조라는 것도 사실은 국가의 조작이라는 혐의가 짙다.

어쨌든 동서양을 문명과 기괴라는 대립된 이미지로 설정한 것에서 보듯 <마지막 황제>의 영화적 역사 해석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푸이를 통해 중국의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충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