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8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어느 외딴 섬에서 벌어진 강제 노역과 나가사키 피폭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군함도》가 1, 2권으로 출간되었다. 27년 전, 일본 도쿄(東京)의 헌책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접한 《원폭과 조선인(原爆と朝鮮人)》이라는 책에 충격을 받아 집필을 결심했다고 밝힌 한수산 작가는, 피해자들에 대한 취재와 현지답사를 거듭한 끝에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게 된 감회를 책 말미에 피력하고 있다. 그는 “피해당사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역사를 복원하고 문학으로 기억한다는 작가적 의무 속에서” 지내온 세월이었다고 술회하며, ‘군함도’가 역사의 망각 속에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오늘의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한 작가를 무려 27년 동안이나 하나의 주제에 매달리게 했던 강제징용의 현장 ‘군함도’였지만 정작 이 일본의 외딴섬이 세상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초 일본 정부가 하시마(端島)섬을 비롯한 나가사키(長崎) 소재 일본 근대화 관련 시설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면서부터다.
‘한 가족같이 지냈다’던 지옥섬 군함도
군함을 닮았다고 하여 ‘군함도’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섬을 일본 측 관광홍보자료에는 “군함도의 주민들은 의식주를 함께 한, 하나의 탄광 커뮤니티였으며 한 가족처럼 살았다”고 선전하고 있다. 섬의 과거에 대해 잘 모르는 관광객의 눈에는 이 섬이 정말 따뜻한 인간애를 발휘하여 함께 역경을 헤쳐 나간 역사의 현장으로 비춰질 것이고, 또 어떻게든 그렇게 유도하려고 일본 당국자들이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을 당한 조선인들에게는 한 가족같이 지냈다던 바로 이 군함도가, 한 번 들어오면 죽기 전에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강제 노역의 인권유린 현장이었기에 맹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이곳에서의 지옥같았던 기억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곧 한국에서는 전 국민적 관심 속에 세계문화유산 등재 반대 운동이 전개되었고, 이에 국제 여론도 호응하는 듯하자 부담을 느낀 일본 정부가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로 노역하였”고, “피해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건립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군함도를 2015년 7월 5일 “일본의 메이지산업혁명유산 : 철강, 조선, 탄광”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옥섬 군함도에 대한 일본 측 설명에는 가혹한 인권유린에 대한 언급을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진실의 망각을 거부하는 몸부림
바로 이런 때에 당시의 참상을 문학적 기억으로 남기려는 《군함도》가 출간되었기에 세간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사실 《군함도》는 이전부터 몇 차례에 걸친 시행착오와 수정, 개편 등 담금질을 거쳐 이번에 빛을 보게 된 작품이다. 처음 1993년부터 3년간은 <중앙일보>에 연재한 「해는 뜨고 해는 지고」로 첫발을 내디뎠으나 실패로 끝났고, 2003년 재기의 의지를 불태우며 출간한 대하소설 《까마귀》(전 5권)도 작가 본인의 말을 빌자면, “작품의 부실을 스스로 통감하여 단순한 개정이 아니라 다시 쓴다고 할 만큼” 책 제목부터 등장인물들의 출신과 배경 설정까지 대폭 개작한 끝에 내놓은 역작이다.
춘천의 이름난 친일파 집안 출신임에도 군함도에 끌려오게 된 주인공 ‘지상’은 자칫 ‘식민지 통치자 일본인 vs 식민지 피지배자 조선인’이라는 단순 양분 구도로 흐르기 쉬운 등장인물 간의 갈등에 문제의 복잡성을 부여하였다. 또 지상의 아내 ‘서형’은 눈물로 옷고름 적시며 남편을 기다리는 수동적 캐릭터가 아닌, 적극적으로 남편을 찾아 나서고 종국에는 탄광사무소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는 주체적 여성으로 그리는 등 소설의 구성미를 높임과 동시에 당시 시대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돋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열악한 작업환경에 내몰려 온몸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절망에 몸부림쳐야 했던 강제징용자들의 일상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고자 했던 기억 전달자로서 작가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진실의 사회적 공유를 위한 문학적 기억작업’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1920년대 말 일본에서 발표된, 게잡이 원양어선에서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자에 대한 가혹한 착취를 고발한 소설 《게공선(蟹工船)》(고바야시 다키지 小林多喜二, 1929, 〈戦旗〉 5,6月号)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군함도》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독자에게 사실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분법적 대결 구도를 취하며 긴장 관계를 전개시킨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러한 구도 덕분에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애초의 집필 목적을 무난히 달성했다는 점에서도 두 소설은 상당한 공통점을 보인다.
남겨진 현실 과제
현재 세계문화유산 ‘군함도’를 둘러싼 한·일 양 국민 간의 갈등 문제 역시 소설 《군함도》에서의 그것처럼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 간의 대립 구도로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양국 간 갈등은 어느 한 쪽이 상대를 일방적으로 극복하는 식의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해 보이며 이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해 보인다.
다시 말해 지옥섬 ‘군함도’에서 자행되었던 살인적 강제노역의 피해는 강제징용당한 조선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힘 없고 빽 없는 일반 일본인들에게도 혹독한 희생을 강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론 “우리도 전쟁 피해자”라며 은근슬쩍 자신들의 허물을 덮고 넘어가려는 일본 우익들의 뻔뻔스런 주장과 혼돈될 우려가 있어 조심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일본인이니까 일본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수혜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된 전제이고 극히 소수의 수혜자 계층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일본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희생자였다는, 그래서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만행에 대해 함께 공분하고 대처해 나가야 할 동반자로 다수의 일본 국민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접근법을 고민하고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