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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기 과제를 수행하고 지원하는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 손준식(중앙대 교수)

재단에 바란다

 

2016년 동북아역사재단이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동북아역사재단 뉴스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재단의 활동성과를 점검하고, 재단의 발전을 위한 고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번 호에는 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손준식 중앙대 교수에게 한국과 대만의 역사 인식 및 외교 관계를 전망하고, 향후 재단의 발전 방향에 관한 조언을 듣는다.

     

손준식 중앙대 교수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중국 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 · 역서로는 戰前日本在華北的走私活動(1933-37), 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모(공저), 식민주의와 언어(공저)대만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공역)가 있으며, 대만 역사에 관해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Q.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대만에서 유학하여 대만사를 연구하신 것으로 압니다. 특별히 대만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손준식 처음부터 대만사를 공부하기 위해 대만에 유학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공부하던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하기 전이라, 중국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만에 가서 유학생활을 해야 했죠. 저도 중국의 근현대사를 전공하기 위해 대만에 갔는데,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대만 사람들이 일본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을 보고 일종의 문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다 박사과정 수업 중 두 학기에 걸쳐 대만사 수업을 들으며 <청대대만지의학(淸代臺灣之義學)>이라는 리포트를 작성했는데, 이게 대만 국사관관간(國史館館刊)에 게재된 것이 또 하나의 계기가 됐죠. 하지만 이후로도 박사논문은 1930년대 중·일 관계 방면으로 작성하는 등 대만사와 중국 근현대사 연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귀국 후 조교수로 임용되면서 본격적으로 대만사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대만사 연구가 같은 시기 한국 역사와의 비교를 위한 작업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Q. 대만은 동아시아의 이웃이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역사학에서 대만사 연구의 의의를 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손준식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만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 하면, “대만 사람들이 중국어를 하느냐고 제게 물어올 정도입니다. 대만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 그냥 동남아시아의 어느 한 국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어쨌거나 역사학적으로 대만사 연구가 필요한 이유를 들자면, 우선 우리나라와 대만은 역사적으로 많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중화제국의 변방이었다는 점, 일제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점, 냉전체제 하에서 반공의 최전선에 있었다는 점, 또 개발 독재와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꼽히기도 했고, 민주화와 정권 교체를 겪으며 최근 여성 대통령이 당선된 것까지 많은 부분에서 유사점이 있고, 그래서 우리 역사 특히 식민지 시대와 냉전 시기를 심층적으로 연구할 때 비교 대상으로 매우 유용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든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단일민족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대만은 다족군, 다언어로 구성된 나라예요. 이러한 다문화적 배경 하에서 나온 대만의 역사 연구는 단일민족이나 민족지상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국 학계가 그동안 갖지 못했거나 감히 시도할 수 없었던 관점 혹은 연구 주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에게 통일은 당위지만, 대만에는 중국과의 통일을 반대하고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렇게 관점을 달리 해서 본다면 역사를 보는 눈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죠.

     

Q. 대만 유학시절 혹은 이후 대만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면?

     

손준식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많지만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이야기하면, 대만은 우리와 같은 유교 문화권임에도 여성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의 단적인 예로, 198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정폭력의 주체가 남편으로만 그려졌거든요. 그런데 당시 대만 TV드라마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었어요. 물론 이것은 일찍부터 대만 여성들의 경제적 진출이 활발했던 탓도 있고, 역사적으로 대만이 이민사회이기 때문에 여자가 굉장히 귀한 존재로 여겨진 탓도 있겠지요.

이밖에도 나이나 지위가 높은 자, 예를 들면 교수 같은 사람들의 권위의식이 낮고, 외형적인 체면보다 내면의 실속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국가나 민족의식이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약한데, 이는 자신이 중국인인지 아니면 대만인인지에 대해 정체성 혼란을 가진 것 때문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건 대만 사람들이 국제 관계에서 강대국, 특히 중국의 패권주의나 강대국 간 세력 균형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는 소외받는 약자의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경제와 무역, 문화산업 등에서 경쟁국인 한국이 앞서 나갈 때에는 과거 전통적인 중화의식(兄弟之邦)을 내세우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이중적 자세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대만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이런 부분들을 이해하고 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Q. 대만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우리나라에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맺은 영향으로 봐야할까요?

     

손준식  1992년 한·중 수교는 대만 사람들 입장에서 상당히 큰 배신감을 느낀 사건이었죠. 다만 당시 대만의 국민당 정부가 여론을 그렇게 유도해 간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국과 중국의 수교 그리고 대만과 한국의 단교라는 게, 어찌 보면 결국 자신들의 큰 외교적 실패거든요. 그걸 감추기 위해 일부러 한국이 배신했다는 식으로 더 이야기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 우리 정부가 끝까지 중국과의 수교를 사전에 알리지 않은 외교적 결례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서 당시 대만 외교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컸어요. 외교 관계를 맺은 국가가 몇 나라 되지 않았던 대만으로서는,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일본 등과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죠. 당시 대만 국민들에게는 우리나라와의 단교가 큰 충격이었고, 아마 그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겁니다.

     

Q. 대만과 한국은 같은 일본 식민지를 경험했고, 또 냉전을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 않은가요?

     

손준식 일본에 대한 대만 사람들의 호감은, 식민통치를 받았던 대만인들 중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같은 사람이 나는 20세 이전에 일본인이었고, 아직도 일본어로 대화하는 게 더 편하다고 노골적으로 향수를 드러낼 정도입니다. 학계에서도 일제 시기 식민지 근대화론이 아무런 저항 없이 수용되는 상황이니, 일반 사람들의 인식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가.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일본 패망 후 국민당이 대만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2.28사건과 백색공포 등 강압적 통치를 펼친 게 대만인들의 큰 불만을 야기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일본)가 가고 나니, 돼지(국민당 정부)가 왔다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결국 이에 반발해 형성된 대만 독립파들이 일본을 자신들의 활동기지로 삼은 점이나 대만이 일본을 중국의 무력통일 위협 견제 카드로 쓰고 있다는 점도 일본에 대한 긍정적 감정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냉전체제 하에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은 생존을 위해 미국의 보호를 받아야 했는데, 당시 미국이 설정한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전략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중일전쟁에서 적국이었던 일본이 어느 순간 중공에 대항하기 위한 반공의 동반자, 경제 발전의 후원자로 뒤바뀌게 되었던 것이죠. 대만 사람들이 일본 상품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일본 사람들이 대만에 합작사를 많이 세웠기 때문인데, 그걸 국민당에서 다 허가하고 받아준 겁니다.

냉전의 경험에서도 대만과 한국은 차이가 있는데, 둘 다 미국의 보호를 받았으나 그 방식과 정도가 달랐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6·25전쟁 때문에 지속적으로 미군이 주둔했던 것에 반해, 대만은 일정 기간 군사고문단 정도가 주둔하는 수준이었거든요. 게다가 국민당은 자신의 생존을 보장했던 시스템에 의해 데탕트의 희생물(유엔 탈퇴)이 되는 아이러니도 경험하게 되지요. 한편으로 대만인에게 냉전체제는, 국민당 정부의 중국 대표성을 인정함으로써 그 장기 독재체제를 보장하고 대만의 주체성을 억압한 시기로 인식되는 아픔도 있습니다.

     

Q. 대만도 일제 식민지 시기 위안부의 슬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혹 대만의 위안부역사관 설립 등 위안부 문제의 현황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재단에 바란다

     

손준식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대만 국민들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지난 1992년 대만부녀구원기금회(臺灣婦女救援基金會)에서 위안부 존재 발굴(신청)을 처음 시작한 뒤 위안부소위원회(臺籍慰安婦專案小組)를 성립시켰고, 1996년 대만 외교부가 일본 정부에 위안부 배상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본격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안부역사관의 경우는 2004년 대만위안부기념관 준비소조 회의를 개최하면서 건립 계획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지지부진하다가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공약으로 대만의 광복절인 지난해 1025일 개막식을 거행하고, “阿嬤(阿嬤閩南語할머니라는 의미)和平與女性人權館이라는 현판을 달았죠. 하지만 운영은 20169월부터 시작할 예정이라는데, 아무래도 운영 경비 부족 등 여러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대만 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낮은 까닭은 현재 대만의 위안부 생존자가 3(2015년 말 기준)밖에 안 된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대만인들의 일본 식민지배 기억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으로서는 일본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했기에,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집권하던 시기(2000~2008)에는 위안부 문제처럼 일본과 마찰을 빚을만한 사안을 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Q.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현재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 연구 주제가 있다면?

     

손준식 지금까지 주로 일제 식민지배에 대해 대만인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여 왔는가를 연구했는데, 아직 관련 분야가 많이 남아서 그 부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최근에는 냉전 시기 대만 역사 연구도 하고 있지만 이것은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또 한·일 간 독도문제 대응과 해결을 위해 참고로 삼고자 조어도(釣魚島)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대만, 일본의 조어도 연구 성과에 대한 통계 분석을 진행 중이고, 앞으로 영유권 관련 쟁점 분석 및 향후 전망에 대해 계속 연구할 예정입니다.

     

Q. 현재 재단 자문위원으로 계시는데, 재단은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았습니다. 평소 재단에 대해 느끼신 점이나 향후 재단의 앞날에 대해 조언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손준식 자문위원을 3년째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마는, 재단 내부의 운영 같은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신임 이사장 취임 이래 연구 중심의 조직 개편과 국제 교류 강화를 위한 세미나, 학술회의 개최 등은 매우 긍정적인 성과로 보고 있습니다.

굳이 제언을 하자면 어느 조직이나 구성원이 자긍심과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앞으로 재단이 보다 더 구성원들의 소속감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재단은 여러 부처가 협치를 해서 운영하는 국가기관이다 보니 적지 않은 제약이 있는 것 같습니다. 행정이나 예산 문제, 재야단체의 견제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일 텐데, 이러한 것들을 극복하고 순수 연구기관으로서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또 하나 제가 자문위원회의를 통해 여러 번 이야기한 부분이기도 한데, 지금 재단에서 수행하는 연구 과제가 대부분 1년 미만의 단기 과제들입니다. 물론 예산 문제도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책임 소재 등 여러 애로사항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역사연구라는 것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이거든요. 무엇보다 재단이 장기과제를 수행하고 지원할 수 있는 연구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학문 후속세대에 대한 지원과 홍보가 좀 더 강화되었으면 좋겠고, 제가 대만사를 연구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동북아에 중국과 일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실 대만은 우리가 중국, 일본과의 관계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카드거든요. 대만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몽골 등 다른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도 함께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