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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일본 평화헌법의 의미와 현재
  • 이종국(한일관계연구소 연구위원)

일본의 평화헌법은 일본의 패전과 함께 제정된 것으로, 일본헌법은 전쟁을 포기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제9조를 두었다. 이것으로 일본은 전쟁 포기와 무력 불소지라는 두 가지 대원칙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아베정부는 일본헌법을 개정하여 일본이 보통국가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헌법 개정 논의의 중심이었으며, 전후 일본 보수정치인들의 최대 관심사였던 일본헌법 제9조는 국제 정치의 환경 변화와 일본 국내 정치의 변화에 따라 서서히 개정 움직임이 나타났다. 즉 일본이 보통국가를 지향하고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집단적 자위권 강화를 수행해야 한다는 이유로 헌법 개정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한 일본 국내 동향은 현실정치적 측면과 평화론적 측면이 존재하였다.

     

1989년 글로벌 차원의 냉전이 종식되면서 이러한 헌법9조 개정을 둘러싼 논의는 평화주의보다 자위대의 합헌과 미·일 안보 견지라는 입장이 우세하는 상황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냉전기에는 핵무기 개발과 핵억지 등으로 평화론적 시각이 우세하였다. ·소 대립이라는 상황 속에서 미국의 핵전력 우위를 전제로 한 미·소의 군사적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던 1970년대 말, 일본에게 방위노력이 요구되었다. 소련의 위협이 강조되면서 일본의 방위노력에 대해 미국 내 불만이 높아갔으며, 일본의 안보에 대해 무임승차론주장도 강해졌다. 동시에 미국은 일본에게 방위비 증강을 요구하였다. 미국의 요구에 힘이 난 일본의 방위 당국자들은 불가능하다고 답하였지만, 이것은 대일본 압력의 성격을 잘 나타낸 것이었다.

     

냉전종식 이후 미국의 압력으로 일본은 평화헌법을 가지고 평화국가 이념을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 냉전기의 평화주의 수단보다 적극적인 안전보장 정책을 전개하면서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특히 미국은 세계의 자유시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에게 군사적 분담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평화헌법의 의미

헌법9조는 평화헌법의 상징적 조항으로 인식되었다. 냉전기 동서진영의 대립과 핵시대 인류의 파멸과 생존의 갈림길에서 인류에게 새로운 국면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군사기술의 진보와 핵전쟁의 가능성에 직면한 현대의 위기상황 속에서, 9조는 국가주권으로부터 인류주권으로 가야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오며 새로운 협력체제를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당시 국가가 무장을 포기한 데에는, 물론 점령당국의 압력이 있었지만 국민의 중요한 결심이 있었다. 헌법9조는 주권 유지를 군사력에 의존한 이전의 상식과 비교하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었고, 이러한 노력은 평화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커다란 전진이었다.

     

일본 제헌의회에서도 9조는 평화국가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세계를 향해 선구적인 선언을 행하는 것으로 제안되었다. 1950년대 이후 재군비 논쟁에서 활발한 논의가 있었지만 많은 일본 국민들이 9조에 찬사를 보냈으며, ‘전쟁포기에 찬성 70%, 반대 28%를 보이기도 하였다.

     

자민당은 헌법 개정 초안 제9조에대한 설명에서, 일본헌법 91항은 1929년 발효한 파리 부전조약’ 1조를 고친 규정으로, 당내 논의 가운데 보다 쉬운 표현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본헌법 3대 원칙의 하나인 평화주의를 정한 규정이라는 이유로 기본적으로 변경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자민당이 강조하는 것은 이전과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9조와 안보체제는 미·일 안보체제와 밀접하다. 현재의 미·일 안보조약은 9조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9조를 개정하면 미·일 안보조약도 수정되어야 하고, ·일 동맹은 점점 글로벌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여론은 여전히 평화주의 지지

일본의 여론은 여전히 헌법9조를 지지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평화주의를 지지하면서 안보와 자위대의 현상을 긍정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공법학자들은 위헌이라고 판단하지만, 자위대를 긍정하는 입장은 60년대 이후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일반인들은 합헌이라 보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자위대는 많은 일본인들에게 인지되고 있으며, 여론상으로는 자위대와 헌법9조가 병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개헌론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헌법9조가 일본의 국제공헌에 장애가 된다는 인식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헌법9조 개정 찬성 여론도 증가하였다(여론조사 결과, 비율은 다르지만 같은 경향을 보였다). 당시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여론은 1980년대 말을 정점으로 최고에 이르렀지만 1990년대 전반이 되면서 떨어지더니, 후반 이후에는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국제 환경의 변화가 일본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헌법 개정과 제9조의 개정에 관한 여론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며, 특히 헌법9조 개정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우세함을 확인할 수 있다.

     

     

변화하는 미·일 관계

미국의 오바마 정권은 부시 정권의 미·중 협조정책을 계승하면서 대화와 협조를 중시하였다. 오바마 정권의 아시아 정책 변화는 일본의 아베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며, 군사력과 재정 부분에서 아시아를 중시하는 정책을 전개하였다. 먼저,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 지역뿐 아니라 세계에서 자유시장 경제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과 공동 정책을 전개하였다. 둘째로, 중국이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독자적인 패권을 추구하면서 세력권을 구축하려고 할 경우,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한다는 정책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아베 정부는 헌법 개헌과 미·일 동맹 강화를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아베 정부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 변화와 헌법9조를 옹호하는 다수의 일본인들 의견에 입각하여 두 가지 전략을 주장하였다. 그 하나가 해석개헌 전략이다. 이것은 아베 정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고, ·일 공동작전의 실현을 위해서는 공공연하게 군사대국화를 경계하는 미국의 예상대로, 일본 국민의 명문개헌에 대한 경계를 기초로 해석개헌을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개헌은 사실상 헌법 개정이다.

     

다른 하나는 명문개헌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명문개헌은 중요한 제9조 개헌을 피하고, 9조를 숨기면서 먼저 개헌을 실행한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개헌의 수단으로 아베 총리가 생각하는 것이 96조의 개헌이다. 아베 총리는 국민들의 마음 속 수동적 내셔널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국민의식에 의지하여 헌법 개정을 실시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미·일 동맹 강화나 때에 따라서는 개헌을 용인하는 내셔널리즘이다. 이것은 대국주의 내셔널리즘과는 다른 것으로, 아베 정부가 활용하는 내셔널리즘은 일본이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을 통해 일본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호헌과 개헌 사이의 논의

그동안 9조는 동서대립과 일본의 현실정치 환경 속에서 격렬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자위대가 성립한 이후 제9조의 이상과 현실정치 사이의 심각한 대립은 점점 깊어져 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 학계의 통설은 제9조는 전쟁 포기와 군비 금지를 규정한 것으로 보고, 자위대와 같은 존재는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많은 사람들은 제9조의 평화주의가 세계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고 높이 평가한다.

     

아베 정권에 들어서서도 헌법 개정을 둘러싸고 일본 국내에서 호헌과 개헌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아베 정부가 안보관련 법안을 성립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가운데, 64일 중의원 헌법심사회에서 자민당 추천 헌법학자 3명이 모두 법안을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여 헌법학자의 봉기가 일어났으며 그 이후 안보법제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헌법 개정과 관련하여 정계와 학계, 언론계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호헌론의 입장은 집단적자위권을 인정하는 안보관련법은 헌법 제9조에 반하므로 위헌이기에 무효라고 설명한다. 9조를 삭제하면 전력(戰力)에 대한 억제가 헌법으로부터 없어진다. 그리고 9조가 전후 일본을 평화국가로 지켜주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개헌론자의 입장은, 냉전종식 이후 국제 환경 변화에 따라 자위권을 위한 필요최소한의 실력행사는 9조도 인정하고 있으므로 해석이 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아베 정부는 2014년 종래의 내각법제국 견해를 바꿔 각의 결정으로 집단적자위권도 합헌이라고 해석변경하였다. 그리고 2015년 집단적자위권 행사 용인의 안보관련법이 일본 국회에서 성립하였다.

     

     

아베 정부의 목표

당초 아베 정부는 개헌과 동맹강화 정책을 2013년 참의원 선거 전에 진행하여 참의원 선거의 쟁점으로 삼을 예정이었지만, 아베 정부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참의원 선거 이후 아베 정권의 개헌 전략은 해석개헌이 한층 빠르게 진행되면서 규모도 확대되었다. 초점은 집단적자위권에 관한 기존 정부의 해석을 바꿔 그것을 헌법9조 아래서도 가능하도록 하는 해석을 변경하여, 자위대를 미군과 함께 전쟁하는 군대로 변경함으로써 헌법상의 근거를 만드는 것이다. 해석개헌의 결정적 수단인 안보법제 간담회는 참의원 선거 전에 보고를 내고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해석변경을 진행시킬 예정이었지만,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비판이 강해지면서 어렵게 되었다.

아베 총리는 20162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전력의 불보지(不保持)를 규정한 헌법 제292항의 개정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당시 헌법학자 70%가 자위대는 헌법위반이라는 의심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점령시대에 만들어진 헌법으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강요된 헌법론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아베 총리의 주장은 헌법9조의 의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공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20159월 정부와 여당은 많은 국민들의 반대 목소리를 뿌리치고, 일본 헌법이 입헌주의를 뒤집고 민주주의를 집어던지면서, 9조의 평화주의를 파괴하는 전쟁법(안보관련 법안)을 강행 체결하였다. 이때 집단적자위권의 한정된 행사는 합헌, 현행 헌법 범위 내의 법안 등등 종래 정부의 견해로부터 일탈한 답변을 하면서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아베 정부는 명문개헌을 실시하려 하고 있다. 해석변경과 법률제정에 의한 헌법파괴에 더해, 명문개헌 주장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유사시에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고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한 긴급사태 조항창설이라는 주장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일본은 전쟁하는 군대, 전쟁하는 국가 만들기가 가능하며 결국 평화주의의 핵심인 헌법9조는 무력화되어버린다. 해석개헌이 먼저 되면 명문개헌의 필요성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아베 정권은 반드시 해석개헌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도 명문개헌에 착수할 것이다.

     

헌법 개정과 그 이후의 전망

현재 일본 정치 분위기 속에서 헌법 개정은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헌법9조의 개정문제는 어려울 수도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일본인들은 일본의 국제적 공헌을 기대하면서도, 평화주의만은 지키고 싶다는 심리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이 평화주의를 포기하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가 된다면,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환경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한 경우 우리는 동북아시아에서 안전보장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우리의 구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한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전략적 차원에서 한··일 협력 문제와 함께 과거 침략과 굴욕의 역사를 떠올릴 수 있다. 특히 한반도 유사 시 한··일 군사협력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안전보장 문제가 될 것이며, 한반도 통일 문제 또한 일본의 국가 이미지를 재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