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7일부터 10일까지 중등교사 30명과 중국 하얼빈과 주변의 쌍성, 아성 지역에 동아시아사 교원 현장연수를 다녀왔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비롯해, 독립운동 관련 유적이 다수 남아있는 곳이다.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더듬은 첫째 날
연수팀은 하얼빈 도착 직후 2014년 하얼빈역에 새로 개관한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달려갔다. 기념관 뒷쪽 통유리 너머로 하얼빈 역 승강장에 안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위치 표지를 볼 수 있었다. 이어 하얼빈 구내 승강장이 내려다 보이는 철로 위 제홍교에 오르니, 그곳에서 안 의사가 이토를 정확하게 저격하기 위해 구체적인 동선과 방법을 모색하였던 모습이 그려졌다. 하얼빈 시정부는 안중근 의거를 기념해 하얼빈 시내 조린공원에 1m의 화강암 비석을 세워놓았다. 조린공원 역시 안 의사가 동양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의거계획을 구상한 장소다. 기념비에는 안 의사의 이름과 손도장, 안 의사가 쓴 글씨를 집자한 ‘청초당(靑草塘)’과 ‘연지(硯池)’가 새겨져있었다. 연수팀은 조린공원에서 안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에 대한 장세윤 교수실장의 강의를 들은 후 하얼빈 역 앞 일본총영사관 건물을 찾았다. 이곳은 안 의사와 더불어 남자현 여사 등 북만주 지역 독립운동가들이 잡혀 심문을 받고, 허형식 등이 1930년 항일시위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연수팀이 확인한 결과 현재 개축된 화원(花園) 소학교 건물 지하 감방에 안 의사가 수감되어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유적지 관리가 부실했던 쌍성보 전투 유적지
둘째 날은 ‘하얼빈 건축 예술관’으로 불리는 성 소피아 성당을 방문하여, 전시되어 있는 하얼빈시 역사 사진을 관람하였다. 이어 하얼빈의 유태인 역사가 전시되어 있는 유태인박물관, 중화인민공화국의 개척사와 그 성과를 전시해 놓은 ‘북대황(北大荒)박물관’을 참관하였다. 북대황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의 무대가 된 북만주 벌판, 북쪽의 드넓은 황무지를 뜻한다. 중국 동북 지방의 북부를 이루는 쑹넌(松嫩)평원과 싼장(三江)평원을 부르는 지역 이름이며, 지금은 중국의 거대한 식량창고이다. 이곳은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후 군인들에 의해 식량기지로 본격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국가 주도의 역사가 그대로 남은 까닭에 지금도 베이다황 집단은 중국 정부의 농간(農墾)총국 산하 국영기업이다.
오후에는 하얼빈 남쪽 쌍성시의 쌍성보(雙城堡) 전투 유적지를 찾았다. 쌍성보의 서문(승은문) 앞에서, 1932년 지청천 장군이 이끄는 한국독립군과 고봉림(考鳳林)의 중국 길림자위군 등 한중연합군이 일본군에 맞서 활약했던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역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쌍성보 전투이건만, 현장은 쌍성보 전투를 설명하는 표지판은 없고 낙서와 쓰레기만 눈에 띄었다. 많은 교사들이 중국 당국의 역사 유적지 관리 문제점을 토로하였고, 이러한 상황은 동행한 기자에 의해 기사화(8월 12일자 한국일보)되기도 했다.
인류애를 강조해 새 단장한 731부대진열관
셋째 날 아침 일찍 일본 관동군 731부대진열관을 참관하였다. 하얼빈 근교에 위치한 731부대는 1939년 이시이 시로가 창설한 생화학 실험기지이다. 생체실험 대상은 주로 중국, 한국, 러시아, 영국인들이었고, 전쟁 기간 이곳에서 실험으로 희생된 사람은 약 3,000명에 이른다. 중국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2015년 신관을 만들었는데, 이전의 전시는 일제의 잔혹상을 증명하기 위해 투옥·고문·처형장면 등의 자료 사진을 직접 보여주었지만, 신관은 절제된 형식의 세련된 기법으로 인류애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곳 김성민 관장은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와 관동군사령부가 부대의 존재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종전 뒤 소련과 중국이 세균전을 추적했지만, 미국의 비호 등 냉전의 벽에 막혔기 때문에 지금도 정확한 피해자 규모를 모르며, 신원이 확인된 이는 1,549명이고 그중 조선인은 7명(한국인은 250명 내외가 ‘마루타’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이라고 했다. 교사들은 731부대 신관의 풍부한 전시 내용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직접 찍은 사진으로 수업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1931년 세워진 하얼빈 경찰청 건물 동북열사기념관을 찾아갔다. 이 곳은 과거 일제가 중국인들을 핍박하던 장소였으나, 현재는 항일열사들을 기념하는 전시로 채워져 있고, 동북항일연군에 가담한 조선인 열사들의 이름도 많이 등장한다. 오후에는 하얼빈 남쪽 아성(阿城)의 금(金) 태조릉과 금 상경(上京) 역사박물관을 찾아, 북방 민족·북방 왕조와 한국사와의 관계,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과 관련하여 중국 당국이 여진족 금왕조 역사를 어떻게 전시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참관한 곳은 중국의 ‘인민음악가’로 칭송받는 ‘정율성 생애사적 전시관’이다. 정율성(1914~1976)은 전남 광주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중국인민해방군가’ 를 작곡한 음악가이다. 기념관의 전시 내용은 유족들의 유품 기증으로 비교적 풍부한 편이며, ‘안중근 의사가 직접 적을 쓰러뜨렸다면, 정율성은 노래의 선율로 중국군의 심장을 격동시켜 일본을 물리친 혁명가’로 소개되어 있다. 많은 분들이 정율성 전시관이 왜 하얼빈에 있는지 궁금해했는데, 하얼빈시가 유족들을 적극 설득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번 교원 현장연수는 하얼빈시 일대를 탐방함으로써 중국 동북 지역사, 만주(여진)족의 역사, 우리의 독립운동사, 그리고 하얼빈을 매개로 한 중국인·러시아인·한국인 등과의 교류사 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여 교사들은 현장답사의 체험을 기반으로 학생들에게 독립운동 현장과 인물들을 보다 생동감 있게 가르칠 수 있게 되었고, 향후 한중 역사갈등 해소와 바람직한 교육 방향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교육연수원도 중국의 북방왕조 교수방법을 발표 . 토론해주신 황진상, 강수웅 선생님과 감상문을 보내주신 이혜경 선생님을 비롯해 현장연수에 적극 참여해 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내년에도 교육 효과와 만족도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