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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EBS 독도의 날 특집 다큐멘터리 <설민석의 독도路> 제작기
  • 허성호 EBS 역사전문 PD

독도



제가 가겠습니다. 명색이 역사 선생인데 꼭 가야죠.”지난 8,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소재의 설민석 선생의 사무실에 EBS 역사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진, 그리고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의 김영수 박사가 둘러앉았다. 요즘 방송가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를 만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만나는 순간부터 출연이 결정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채 3분이 지나지 않았다.

     


독도의 날 특집 다큐, 제작의 서막이 오르다


그는 겸손했고 확실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었다. “저는 여러 연구자님들의 연구라는 토대 위에 우리 역사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지식 소매상입니다. 이번에도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를 국민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설민석 선생의 출연 여부는 촬영 일이 되어서야 확실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독립운동 100주년과 일본의 역사 왜곡, 경제 보복에 따른 사회 분위기를 타고 연예인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독도에 가고 싶다고 언급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그러나 수년간 독도 프로그램을 맡아온 PD의 경험상, 몇 가지 이유로 그들의 희망 사항이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기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 먼바다 항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도와 울릉도에 뜻하는 일정에 입도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일단 들어가면 언제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는 지명도가 높은 스타일수록 금전적 타격을 입을 위험이 크다는 이야기다. 둘째로 연예인 본인이 가고 싶다 해도 기획사에서 말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14년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경직되지 않았을 때도 가수 이승철 씨가 일본 출입국에 문제가 생겼던 적이 있다. 특히 한류스타의 경우 일본에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섭외 확률이 0%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설민석 선생과의 첫 만남에서 기획 회의가 이뤄졌다. 먼저 설민석 선생은 저 같은 사람 말고 진짜 역사학자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며 한국 근대사 석학이자 본인의 스승인 재단 김도형 이사장을 추천했다. 김 이사장의 풍부한 역사 해설을 독도에서 직접 시청자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미래인 어린 학생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며 일본군위안부알리기 운동을 벌여온 영어 신동 전기범 군(제주 애월초6)을 추천했다.


아이디어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독도에 사연이 있는 분들을 떠올리며 앞다퉈 생각을 보탰다. 92세의 고령이지만 독도가 내 처지와 비슷해서 죽기 전에 가보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북가주 교민들과 함께 독도와 위안부알리기 운동을 벌여온 억만장자 치과의사 김한일 대표(미국 공익법인 김진덕·정경식재단) 그리고 그림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70SNS 인플루언서 이찬재·안경자 부부가 출연 후보자로 선정됐다.


더 놀라운 것은 이날 회의에서 언급된 분들 100%가 참가를 수락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기상은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10월 초순으로 잡았던 첫 일정은 태풍의 북상으로 보기 좋게 취소됐고, 7명의 출연자들의 일정은 모두 재조정됐다.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독도에 모이는 형태의 TV 프로그램이 이제껏 한 번도 방송되지 않은 이유를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독도 

서도를 배경으로 선 EBS 독도탐방단 7인

앞열 좌로부터 안경자(화가, SNS 인플루언서), 이용수(일본군위안부피해자),

전기범(초등학생 SNS 크리에이터), 뒷열 좌로부터 이찬재(화가, SNS 인플루언서),

김도형(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한일(재미교포 독도, ‘위안부운동가), 설민석(역사강사)

 


     


독도 다큐에 담아낸 진실과 진심


D-Day는 다시 1017일로 잡혔다. ‘독도의 날방송 일정을 맞추기 위해 단 하루의 천운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독도 촬영은 언제나 그랬기 때문이다.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에 초연하지 않은 제작자는 결코 좋은 독도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없다.


1016일 새벽에 제작진 선발대는 배편으로 울릉도로 건너가 이튿날을 기다렸다. 운명의 17, 제작진 본진과 출연자들은 새벽차로 서울을 출발해 독도행 헬리콥터가 마련된 경북 영덕으로 향했다. 어둠을 가르며 동쪽으로 향하는 차편에서 아침 해가 또렷한 원을 그리며 올라오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오전 930, 가벼운 오프닝 촬영을 마치고 출연자 전원은 헬기에 탑승했다. 50분 정도의 비행 끝에 울릉도 사동항 인근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던 이용수 할머니가 소리쳤다. “독도가 보인다!” 1년에 약 40일 정도만 볼 수 있다는 독도를 이날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재단 김도형 이사장은 울릉도에서 독도를 볼 수 있는 것이 독도 영유권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알기 쉽게 설명했다.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이번 프로젝트의 제1단계가 하늘의 도움으로 순탄히 해결된 것이다.


독도 새우를 곁들인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단 20분의 비행으로 독도 헬기장에 출연자들의 첫발이 닿았다. 김한일 대표, 이찬재·안경자 부부, 전기범 학생 등 독도에 처음 상륙해보는 출연자들은 그 찰나의 감동을 숨길 수 없었다. 독도 첫 방문이 주는 뜨거움은 스스로가 진정한 한국인이라는 증거다. 이용수 할머니는 한국령암각 앞에 큰절을 올리며 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되뇌었다. 이에 모두 숙연해졌다. 그리고 현장에 있었던 모든 이의 머리는 더욱 차가워졌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이 날로 극심해지고 그로 인해 양국이 경제 전쟁까지 벌이는 이 시기에, 100여 년 전 일제가 처음 빼앗아간 우리 영토에 닿았다. 그것도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감당해온 올해 92세인 역사의 산증인과 함께. 출연자들은 그 역사의 현장에 꼿꼿이 서서 저마다 자강自强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었다. “주권이라는 건 아는 사람지켜야만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김 이사장의 해설은 독도가 우리 민족에게 부여한 역사적 사명이자 이번 프로그램의 주제 의식이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출연자들의 의지, 재단의 아낌없는 지원 그리고 하늘의 도움을 더해 EBS <설민석의 독도>라는 독도의 날 특집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여타 TV 프로그램에서 시도해보지 못한 도박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많은 시청자들이 지루함 없이 독도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상식들을 얻어 갈 수 있었다. 이번 <설민석의 독도>는 학술적 깊이보다는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전략이었다. 차기작은 동북아역사재단의 최신 연구를 좋은 영상으로 구현해 작품성과 학술적 완성도를 겸비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 EBS 역사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목표다. 그날을 위해 제작진은 다시 재단의 연구서를 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