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단은 『발해유적의 국가별 발굴 성과와 재해석』(연구총서 108)을 출간하였다. 이는 그동안 재단이 진행한 각국의 발해유적 발굴 성과를 톺아보고 재해석한 것으로, 이후 공동 조사와 보존의 방향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본다.
발해의 영역과 유적 현황
발해(渤海)는 고구려 멸망 후 30년 뒤인 698년 건국하여 926년 거란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존속한 고구려의 계승국이다. 그러나 발해는 멸망 이후 2백여 년에 걸친 유민 부흥 운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사에서 발해 계승국을 이루지 못하였다. 발해의 영역은 중국의 동북 3성 지역, 러시아 연해주 전역, 그리고 북한 지역 등으로 나뉘어 있다. 그 결과 자국 중심의 역사 인식이 주류를 잇는 현대 역사학에서, 중국, 러시아, 북한의 역사 인식이 발해사에 반영되어 서로 다양한 해석을 표출하고 있다.
발해유적의 발굴과 연구의 현주소
이 책은 중국, 한국, 북한, 일본, 러시아의 발해사 연구와 발해유적 발굴 현황에 대한 분석과 재해석에 관한 내용이다. 이를 발간한 배경에는 발해사에 대한 해석이 중국, 러시아, 남북한, 일본 등 인식 주체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발해사의 원형을 재구성하려면 발해유적의 공동 조사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 하나는 최근 동아시아 각국이 자국의 시각에 맞춘 발해유적 발굴 보고서를 출간하고 있으나, 각국이 필수적으로 제한한 전공자만 연구에 참여하여 발해사 연구의 보편적 인식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각 보고서들 자체의 추가적인 학술 연구와 보완이 필요하다.
이 책은 가장 먼저 한국의 발해유적 성과와 해석을 통해 우리 학계의 현주소를 담았다. 우리나라 발해사 전공자들이 직접 발해유적을 조사하기는 상당히 한계가 많다. 그래도 발해사를 주제로 학위를 취득한 연구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이다.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유학 중인 박사과정 연구자들이 차츰 늘어가는 것은, 추후 발해사 연구 환경의 외연을 넓혀간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 자산이 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계속된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성
한-러 공동 발굴(2018년 발굴)
국가별로 돌아본 발해유적의 발굴 성과
한국 학계에 이어 일본의 발해 관련 유적의 발굴 조사 성과를 정리하고 그것이 발해사 연구에 미친 공과를 검토하였다. 발해는 동해(東海)를 통해 일본과 사신을 교환하면서 발해의 문화와 대륙의 정보를 일본에 전파하였다. 일본의 성과는 1945년을 기점으로 제국주의 대륙 침략 시기의 발해유적 발굴 전통과, 그 이후 일본 내 발해 사신들의 여정 관련 유적 발굴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이 주제는 단순히 한일 교류사의 한 부분을 넘어서 동해를 통해 형성된 동아시아 문화의 허브라는 각도에서 연구의 진전이 기대된다.
한편, 러시아 연해주는 중국과 북한 내의 발해유적과 함께 발굴 조사와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다른 지역과 달리 러시아의 발해유적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 학계와의 공동 조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발해유적에 대한 러시아 학계의 해석은 우리와 공감대가 제일 크다. 러시아 학자들은 연해주의 발해유적과 유물 성격에 대하여 한국 학계와 같이 고구려의 계승성, 신라와의 교류 등을 강조하고 있어 중국학계와 다른 인식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발굴 조사 내용을 보면 세부적으로 규명할 과제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말갈 문화 등의 유적들에서 발해 시기의 것을 구분해 내고, 그리고 이들이 발해 문화의 하나였음을 체계적으로 논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연해주 유적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적극적인 발굴 조사는 물론, 관련 자료 수집이 절대적이다.
다음으로 북한 내 발해유적의 분석에 관한 내용을 실었다. 북한은 발해 시기 남쪽의 신라와 함께 한국사에서 남북국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북한 내 발해유적 발굴 성과를 활용한다는 것은 남북국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잇는 것이다. 북한의 발해유적 발굴 성과는 연구의 주제와 서술이 획일적이며 단순하기는 하지만, 발해의 고구려 계승 관계 전개에 관한 서술의 일관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북한의 발해유적 발굴 성과의 분석과 활용은 조만간 다시 이루어질 남북 학술 교류의 준비로서 큰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 학계의 사례는 2000년 이후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발해사 연구 현황’에서는 분석 범위의 연도별 연구 현황, 고고학과 문헌학 연구 현황, 연구 유형별 현황, 유적·유물의 주제별 연구 현황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유적 관련 연구 성과와 주요 논점’에서는 도성, 고분, 사찰, 촌락 등으로 분류하여, 상경성·서고성·팔련성의 발굴 경과와 핵심 쟁점인 도성의 변천에 관한 논의를 재해석하였다. 이는 중국의 자국 중심적인 발해유적 발굴과 조사 연구에 대한 실증적 대안을 제시하는 자료가 된다.
발해유적의 보존 관리를 위한 국제적 논의 절실
이 책은 발해유적에 대한 국가별 발굴 성과를 우리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재해석의 디딤돌을 놓았을 뿐, 앞으로 발해유적을 어떤 각도에서 다룰 것인가에 관한 논의를 시작할 때다. 이 논의의 완결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솎아내어야 할 진정한 재해석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책의 제목에서 보이는 재해석으로의 회향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전제가 있다. 중국, 러시아, 북한의 관련 연구 담당 주체가 발해유적과 유물을 자국만 관리할 수 있다는 옛 관습과 오래된 인식에서 깨어나야 한다. 아무리 현재 발해유적을 관리하고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영토역사학이 발해 시기 당시의 역사 이해로 소급되어서는 안 된다. 발해유적의 발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잘 보존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관한 국제적 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발해사를 다룬다고 말할 수 있다. 바야흐로 발해유적에 관한 연구의 균형과 생각의 조화를 화두로 던져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