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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75년, 나는 왜 야스쿠니신사와 싸우는가
남영주의 진술서
  • 정리 | 남상구,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소장

남영주의 진술서


남영주 원고의 오빠 남대현은 1923520일생으로 1942년 육군으로 강제동원되었다가 1944810일 뉴기니아에서 사망했다. 유족에 통보도 없이 19594월 일방적으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었다.

    

    남영주의 진술서


저는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에 강제로 끌려가 억울하게 죽은 오빠의 이름을 야스쿠니신사에서 빼달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이 법정에 섰습니다. 오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경에 일본 군대에 끌려갔습니다. 오빠는 8대 종손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를 이을 자식이라도 낳으라고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지만 얼마 되지 않아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마을에는 오빠 외에도 동원된 사람이 두 명 더 있어서 청년들을 환송하는 장행기가 마을 길을 뒤덮었습니다.

귀한 아들이 전쟁터에 끌려가니 어머니는 앓아눕고 집안은 온통 난리였습니다. 언니들과 저는 너무 무서워 얼씬거리지도 못하고 어른들한테 혼이 날까 봐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 뒤에 오빠에게 편지 한 통이 왔다는데 남양군도에 있다는 이야기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도 6·25전쟁 때 불타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오빠가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 한 장만 남아 있습니다. 제 기억 속에는 옛날에 살던 집 마루에 걸터앉아 손풍금을 치던 오빠 모습이 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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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오빠와 함께 일본군에 끌려간 두 분은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고 소식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귀한 아들을 징병으로 보냈다며 아버지를 크게 꾸짖었고, 그것 때문에 아버지는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자기 자식을 전쟁터로 내보낸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집안에서는 대를 이을 장손이 없어졌다는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도 아들이 없으니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1946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는 모두 오빠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집에서 오빠는 희망이고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오빠도 억울하겠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안타깝지만, 저 역시 엄마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너무 마음 아픕니다. 오빠를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메어옵니다.

    

저는 오빠의 생사라도 확인하기 위해 10여 년 전부터 피해자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35월 단체의 도움으로 오빠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오빠는 남양군도로 징집되었고, 1944810일 뉴기니아의 야카무르에서 총에 맞아 전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오빠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오빠의 사망 기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오빠 남대현은 집에서 사망한 것으로 호적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200612월 일본 후생노동성 기록을 조회했더니 2007130일 자 회신에서 오빠의 소속 부대와 징병일, 전사일, 공탁금액 등이 적힌 기록을 보내왔습니다. 유골에 관한 기록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야스쿠니신사에 합사 증명서를 요청했고, 합사된 날짜가 적힌 증명서를 발급받았습니다. 버젓이 기록이 있는데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은 오빠의 생사도 모른 채 사망신고를 하며 화병이 났습니다. 일본은 오빠의 죽음으로 우리 가족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오빠가 징용 가서 돌아오지 않아 집안이 뿌리째 흔들렸습니다. 생이별의 아픔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 생각만 하면 화가 나고 억울해서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남영주의 진술서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침략전쟁을 정당하고 미화하는 야스쿠니신사에 오빠가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가족에게 사망 통보도 하지 않고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했다는 것은 유족을 기만하고 모독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런 야스쿠니신사에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이 참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2012. 저는 오빠가 끌려가서 세상을 떠난 남태평양의 뉴기니아에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먼 곳까지 끌려와서 고생만 하다 고향에도 못 가고 전쟁터에서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멨습니다. 유골도 찾지 못했으니 그곳 어딘가에 오빠의 넋이 떠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을 담아 제사상을 차려 정성껏 술 한 잔 따라 올리고 오빠를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대답 없이 고요한 침묵만 감돌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현장에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오빠의 이름을 꼭 야스쿠니신사에서 빼내고야 말겠다고 말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오빠를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이역만리 땅에, 찾아주는 이 없이 묻혀 있는 오빠의 유골을 꼭 찾고 싶습니다. 한을 품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산소 앞에 비석이라도 세우려 합니다. 그리고 강제로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서 반드시 오빠 이름을 빼내어 해방시키고 싶습니다.

    

오빠의 유골이 왜 없는지, 조사는 해 보았는지 일본에 묻고 싶습니다. 인간이라면 그리고 양심이 있다면 자기들 멋대로 전쟁터로 끌고 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시킨 것에 대해 사죄해야 합니다. 일본 때문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목소리에 진실된 행동으로 성의 있게 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침략신사 야스쿠니신사에서 오빠의 이름을 빼내는 그 날까지 싸울 것입니다. 부디 제가 가족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