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 흉상
외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지명 ‘동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하는 애국가에는 ‘동해’가 등장한다. 이처럼 ‘동해’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지명이며, 북한을 비롯한 재외 교포들에게도 익숙한 지명이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에게는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해외에서 발간된 다수의 지도책에는 동해에 ‘일본해’로 새겨진 경우가 많아 ‘동해’라는 지명을 익숙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면 왜 그 지도책들은 ‘동해’를 ‘일본해’로 기재하고 있을까? 이는 국제수로기구(IHO)의 전신인 국제수로국(IHB)이 1929년에 발행한 『해양과 바다의 경계』에 동해 수역이 ‘일본해’로 기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기구가 전 세계의 바다에 관한 정보를 모아 발간한 최초의 책으로, 전 세계 바다의 위치와 영역, 명칭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이 책은 세계의 바다 명칭에 있어 유일한 국제기준으로 역할 해 왔고, 해외 지도 제작사들은 이 책에 기재된 대로 바다의 명칭을 표기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해양과 바다의 경계』는 1937년에 제2판이, 1953년에 제3판이 간행되어 계속 세계 바다 명칭의 표준 지침서가 되었고, 이 때문에 ‘일본해’는 90여 년간 동해 수역을 대표하는 국제표준지명으로 사용된 것이다.
「조선전도 CARTE de la COREE」(1868)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소장
‘동해’를 표기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성과
이처럼 ‘동해’가 ‘일본해’로만 기재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지난 30여 년 동안 큰 노력을 쏟아왔다.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는 유엔에 가입한 직후인 1992년 제6차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 ‘동해’ 병기를 최초로 주장하였고, 1997년 제15차 국제수로기구(IHO) 정기총회에서는 새로 발간될 『해양과 바다의 경계』 4판에 ‘동해’를 ‘일본해’와 함께 기재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후에도 유엔과 국제수로기구에서 회의가 열릴 때마다 줄기차게 ‘동해’ 표기를 요구하였다. 우리 정부 뿐만 아니라 동북아역사재단과 같은 공공기관 및 반크(VANK), 동해연구회와 같은 민간단체, 나아가 재외 교포들도 ‘동해’ 표기 홍보에 힘쓰고 있다. 그 결과 2020년 현재 해외 주요국에서 발간되는 지도책에서 ‘동해’가 병기되는 비율은 40%를 넘어섰다. 특히 지난 11월 16일에 열린 제2차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역사적 변천을 보여주는 ‘출판물’로 남게 되고, 대신 바다 명칭에 대한 새로운 표준인 ‘S-130’ 도입이 결정되었다. 이를 통해 ‘동해’ 수역에 대한 국제표준지명으로 ‘일본해’가 단독으로 사용되던 ‘기울어진 운동장’은 바로잡아질 수 있게 되었다.
역사상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온 ‘동해’
서양에서 만들어진 고지도들을 살펴보면, 한반도와 동해 수역은 16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초기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한반도만 기재되고 바다의 명칭은 기재되지 않았다가, 17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중국해’·‘동양해’·‘동해’ 등의 명칭이 동해 수역에 기재되었고, 18세기 중반 이후에는 주로 ‘한국해’로 기재되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부터는 주로 ‘일본해’라고 기재되었으나, ‘한국해’·‘동해’·‘타타르해’ 등이 기재된 지도도 발견된다. 이처럼 동해 수역을 나타내는 지명은 다양하게 존재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왔다. 지명은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여 변화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일본해’가 19세기에 이미 ‘정착’된 지명이므로 계속 단독으로 표기되어야 한다고 국제사회에서 주장하고 있다.
라틴어본 「조선전도 Carta Corea」(1860)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19세기 발간 지도에 나타난 ‘동해’
올해 필자는 19세기 서양 고지도에 ‘일본해’가 ‘정착’되었다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지도 두 점을 발견하였다. 첫 번째 지도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 소장된 「조선전도(Carte de la Coree)」인데, 이 지도는 미국 정부가 제너럴셔먼호 사건 조사를 위해 파견한 셰넌도어U.S.S. Shenandoah호에 탑승한 장교 펠란J.R. Phelan이 김대건 신부의 지도를 1868년에 모사模寫한 지도이다. 두 번째 지도는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이 소장하고 있는 1860년에 제작된 「조선전도(Carta Corea)」이다. 프랑스 해군 수로국이 수집하여 20세기 중반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이관된 이 지도의 제작자는 미상未詳이나, 지도 분석 결과 김대건 신부가 작성한 지도를 모사한 지도로 판단된다. 고무적인 것은 새로 발견한 두 지도에 라틴어로 MARE ORIENTALE, 즉 ‘동해’가 기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지도의 발견을 통해 19세기에 ‘일본해’가 정착되었다는 주장은 신뢰도가 낮은 주장임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동해와 독도가 기재된 지도를 남긴 김대건 신부
1978년 고 최석우 신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김대건 신부가 제작한 지도를 발견하여 국내에 최초로 소개한 바 있다. 이 지도에는 독도인 우산도于山島가 조선의 영토로 기재되어 있어 독도 영유권을 입증하는 자료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이번에 필자가 발견한 두 장의 지도도 김대건 신부의 지도를 모사한 것이며, 독도인 우산도는 물론 동해까지 명확하게 표기하고 있어 우리의 동해 표기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년인 2021년은 김대건 신부가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유네스코에서는 평등사상과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특히 「조선전도」를 제작해 유럽 사회에 알리는 데 기여한 공로로 김대건 신부를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에 선정한 바 있다. 이에 필자는 우리의 독도 영토주권 강화 및 동해 홍보에 큰 도움이 되는 유산을 남기신 김대건 신부의 업적을 기리고자 그의 영전에 꽃 한 송이를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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