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호, 성공회대학교 일어일본학과 교수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 릿쿄대학 강사 및 도호쿠대학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 현대일본연구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한일교류위원장·일본분과위원장을 거쳐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연구 및 저서로는 “문재인 정부 한일 갈등의 기원-한일 간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외교 격차를 중심으로”, “강제징용 쟁점과 한일관계의 구조적 변용”, 『한일 대화-정치편』,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 등이 있다.
Q.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국제관계 변화가 예상됩니다. 최근 한일관계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는지요?
A. 미국 바이든 정부는 동맹 복원과 한미일 안보 협력을 중시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달에는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개최될 예정인데, 한·미·일 3국 간에 대화가 재개되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 당국은 다양한 접촉을 진행 중입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나라이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한일 간 파트너십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북 정책과 역사 문제가 심화되면서 ‘한일 양국 관계가 최대 위기에 빠져 있다’, ‘정치 경제 안보에 이르기까지 복합 골절 상태다’라고 지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중국의 태도나 탈냉전의 흐름이 겹치면서, 두 나라의 전략적 이익 공유가 쉽지 않게 된 것이죠. 게다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이나, 한국 법원의 일본 정부를 향한 일본군‘위안부’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해서 두 나라의 대립과 갈등이 매우 분명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정부가 성의와 진정성을 가지고 해법을 찾아보자며 다가가고는 있지만, 일본 측이 허들을 높인 탓에 한일 교섭이 정체되고 출구 마련이 어려워졌습니다.
작년 10월 스가 정권 출범 이후 우리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우리 측의 제안이 일본 사회 내에서 충분한 지지나 이해를 받고 있지는 못하고 있지만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겠다고 하니, 양국 관계 개선은 더욱 난망해졌습니다. 게다가 한일 국력의 대등화, 전략적 이익 공유의 불일치, 역사적인 기억의 충돌이 일반적인 흐름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악재나 장애물, 돌발적인 변수도 많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미국과 일본 양국을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이른바 ‘램지어 사태’를 계기로 일본군‘위안부’와 관련한 역사부정론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역사 문제의 국제화라는 새로운 상황의 출현과 변화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A. 그 배경에는 일본 정부와 우파의 끈질기고 집요한 홍보가 깔려 있습니다. 그들은 ‘위안부’ 역사를 뒤집기 위해 미국을 전쟁터로 삼고 본격적인 세력 확대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램지어’라는 대리인을 내세워 역사 문제를 쟁점화한 거지요. 1993년 고노 담화는 ‘위안부’에 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램지어는 ‘위안소는 민간 업자가 설치한 것’이고, 10대 소녀들이 전시 상태에서 ‘자유 의사에 의한 계약’을 맺었다, 그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지요. 게다가 유엔의 1996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1998년 게이 맥두걸 보고서는 그 10대 소녀들을 ‘성노예 상태’로 규정했고,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거든요. 사실을 왜곡한 것일 뿐만 아니라 기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뒤엎고, 유엔 공식 보고서의 내용을 상당히 왜곡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천 명이 넘는 세계적인 학자들이 램지어 교수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고, 그의 논문에 반대하는 연대 서명을 했습니다. 미국 정치가나 학술 전문가, 대학생들도 역사 왜곡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고 항의했고요. 그런 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분명히 자정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만, 역사수정주의자들이 많은 연구자와 지식인들이 쌓아온 성과뿐 아니라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참상에 대한 고백 이후 30년의 역사를 왜곡하고 흠집 내려는 잘못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고 유감입니다. 다행히 독일 베를린 미테구의 소녀상 사건을 보면, 세계 시민단체가 충분히, 적절하고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Q. 국제사회에서 역사부정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우리도 대응 방향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최근 KBS의 보도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부정론은 점차 악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몇몇 일본 교수들은 본격적으로 역사를 지우고 부정하면서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자국의 공식 자료까지 부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양국의 역사와 기억의 대립이라는 차원을 벗어나서, 일본 우파의 역사 왜곡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일본군‘위안부’에 자발성이 있었다거나, 식민 통치가 조선에 도움이 됐다는 식으로 왜곡된 사실을 전파합니다. 그리고 일부 언론은 이를 양국 국민의 갈등과 대립으로 확산하기 위해 보수 세력의 결집을 악용합니다. 역사 인식의 차이를 양국의 관계 악화로 인식하도록 잘못된 사실을 퍼트리는 겁니다.
일본 역사교과서 기술도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미 일본 공교육 내에서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이나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기술이 많이 사라졌어요. 이런 일을 방치하면 역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본인들은 한국에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게 됩니다. 우리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두 나라 사이의 오해와 갈등은 깊어질 겁니다. 역사 문제에서 정의의 영역과 피해자의 영역이 완전하게 존중받는 동일 선상을 다지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것, 공동으로 논의하고 의견을 한 데 모아 공감대를 형성하고 양국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받는 것, 이러한 일정한 정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한일 갈등은 당분간 피할 수 없을 거라 봅니다. 이것이 한일관계의 특수성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역사와 영토에 관한 자료를 축적하고 사실을 규명하는 데 더 투자하고, 오프라인은 물론 우리의 입장을 세계에 알리는 온라인 출판이나 유튜브처럼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 대책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Q. 앞서 말씀하셨다시피 우리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를 통해 일본 사회, 특히 우익의 역사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요?
A. 2000년대 이후 일본은 역사나 영토 문제를 한일 양국 간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 일본과 중국 등 전반적인 차원에서 보는 인식이 있습니다. 일본 측의 환경에 주목해보면 이 문제는 장기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정확하게 기술한 교과서가 줄어들고 내용이 빈약해지는 것이 가장 걱정입니다. 게다가 독도를 일본 영토로 주장하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는 것처럼 왜곡하면 일본의 미래 세대들이 한국을 불법적인 국가로 인식하지 않겠습니까? 기본적으로 교육의 원칙은 이웃 국가들과 상호 이해와 호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축되어야 하는데, 왜곡된 교육을 통해 ‘한국은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는 나라, 잘못된 영토 주장을 하는 나라’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우려됩니다.
앞으로는 역사나 영토 문제에 대해 안이하게 타협하거나 소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서, 일본 측에 우리 입장을 확실하고 꾸준히 알리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가 수용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 올바른 역사가 미국이나 유럽 역사 교과서에 게재되도록 여러 사실을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노력을 가속화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올가을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하여 우위가 계속되고 스가 정권이 유지된다면 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본 정계와 한일관계의 변화에 대해 전망해주시기 바랍니다.
A. 한국 정부와 국회는 도쿄올림픽을 통한 한일관계 개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중·일 정상회담도 일정대로 열리기를 원합니다. 도쿄올림픽, 일본 총선거는 한일관계 개선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강제징용 매각 명령, 위안부 손배소 판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등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칠 악재가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계속 밝혀가야 합니다.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전시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고, 정의의 영역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논하고, 개인의 권익이 국가 간 합의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다는 원칙은 국제기구와 국제법정에서 공인되거나 확인된 바 있습니다. 그 부분은 절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만, 역사 문제가 정치, 경제, 안보로 확산되면서 양국 국민의 감정이 악화되는 것은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외교 당국 간 긴밀한 소통을 토대로 역사 쟁점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리더십이 발휘되도록 양국이 노력해야 합니다. 정치가들의 지혜와 결단이 중요한 때입니다. 일본은 한국이 그동안 보여준 관계 개선의 진정성에 대해 성실과 신의로 답해야 합니다.
Q. 과거사를 둘러싼 인식 차이로 인해 한일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재단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 전문가로서 미래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도 부탁드립니다.
A.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되 ‘화해와 협력의 동북아’라는 설립 취지를 살려 나가야 합니다. 아직 발굴하지 못한 근현대사 자료를 탐구하려는 학술적인 노력에, 그 성과를 글로벌 공공재로 만드는 노력이 더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점점 심해지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으로 공공 외교적 측면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외국 대중에게 철저히 홍보하고 그에 관한 역량을 적극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일도 중요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미래 세대가 일본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대립과 갈등이 있지만, 여전히 일본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입니다. 한국과 일본처럼 상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관계도 별로 없거든요.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서 상대방 국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서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두 나라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아시아 선진국이고, 수많은 아시아인이 기대하는 모범 국가입니다. 상호 호혜적 관계에서 글로벌한 협력 모델을 구축한다면 한일 양국이 역내 안정과 평화에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 두 나라가 동북아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화해와 협력을 모색했으면 합니다. 미래 세대가 이끄는 시대에는 갈등과 대립보다는 부디 화해와 협력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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