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의 자료 총서로 발간된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Ⅳ』에 수록된 사료 「조선인내빙기 보력朝鮮人來聘記 寶曆」은 1764년 조선통신사 일정 중 일부를 기록한 일본의 고문서古文書이다. 제목의 ‘보력’은 1764년이 일본의 연호 ‘호레키 14년’임을 의미한다. 소장처는 한국국립중앙도서관이며, 원래 조선총독부 소장 고서古書로 분류되어 있었으나, 저자와 작성 시기는 불명확하다.
1764년 통신사는 정사正使 조엄趙曮, 부사副使 이인배李仁培, 종사관 김상익金相翊으로 구성되었고, 일본을 방문한 명목은 ‘도쿠가와 이에하루德川家治의 쇼군 취임 축하’였다. 9대 쇼군 이에시게家重가 1760년 5월 쇼군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히고 에도 성의 니노마루二の丸로 거처를 옮기자, 같은 해 9월 천황으로부터 이에시게의 아들 이에하루를 쇼군, 즉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에 보임하는 문서가 전달되었다.
조선통신사 일행의 궤적을 기록한 일본의 사료로는 에도시대 쓰시마번이 생산한 이른바 ‘쓰시마종가기록對馬宗家記錄’이 대표적이다. 쓰시마는 통신사를 초빙하는 단계부터 에도성江戶城에서 쇼군에게 조선 국왕의 국서國書를 전달하고 조선으로 귀국하는 순간까지를 기록했다. 수개월씩 걸리는 사행의 전 과정을 기록하다 보니 1764년 통신사행을 기록한 쓰시마 기록 『보력신사기록寶曆信使記錄』은 총 130책에 이르며, 일본 게이오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다만 이 책에 수록한 『조선인내빙기 보력』과 게이오대학의 『보력신사기록』과의 관련성은 불명확하다.
『조선인내빙기 보력』이 담고 있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통신사가 한양을 출발하는 시점부터 일본 각지와 막부에서 통신사 일행을 맞이한 인사들의 명단, 에도성 입성 행렬 명단 및 일행이 지참한 깃발·무기·악기류 등의 그림, 쇼군과의 대면, 국서國書 전달 장면, 국서 전달 시의 인원 배치도, 조선과 일본 양국 간 왕복 국서의 형태 및 본문, 통신사 일행이 에도성에 들어갈 때의 복장과 여행 중의 복장 그림, 일행에게 제공된 향응饗應 요리의 목록, 마상재馬上才 인원과 마상재 관람 시의 배치도, 통신사 일행과 막부의 고위 관계자 사이에 오고 간 선물 목록 등을 수록하고 있다. 한양을 출발하는 시점부터 서술하고는 있지만 이는 일부에 지나지 않고, 사실상 일본 내에서의 이동, 에도에서의 외교 의례와 향응에 집중되어 있다.
한편 1764년 통신사는 예조 전객사가 편찬한 『통신사등록通信使謄錄』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국역 통신사등록(Ⅵ)』(2019.9)으로 출간되었다. 『통신사등록』에는 통상 각각의 통신사행에 대한 준비와 파견, 귀환에 이르는 과정에서 경상감사·동래부사, 예조·비변사·승정원, 또는 통신사의 정사와 부사 등에 의해 작성된 공식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본에 파견된 이후의 것으로는 수시로 보내오는 통신사의 보고, 예물 및 인원에 대한 변동 사항, 예물 및 문서書契의 증여 내용, 도중 기착지에서의 접촉 내용과 활동 상황, 조선으로 귀환한 후의 내용으로는 일본에서 받아온 문서 및 일본이 바친 진상품의 목록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국역 통신사등록(Ⅵ)』는 1764년 조일朝日 간의 공식적인 외교관계에 대한 일차 사료로써 큰 의미를 지니지만, 사행단이 일본의 혼슈本州에 도착해서부터 귀국길에 올라 오사카에 도착할 때까지 일어난 일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그에 비해 『조선인내빙기 보력』은 일본에서 에도로 이동하는 과정과 에도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개하고 있어, 조선의 문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일본에서의 사행 실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사료이다. 분량 면에서도 일반적인 쓰시마종가기록의 1~2책 정도로 정리되어 있어, 핵심적인 내용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이 사료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각종 회화 자료가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행단의 구성원들을 지위별로 나누어, 에도성에 등성할 때와 평상시의 모습을 전신 그림으로 묘사했다. 그림에는 그들의 복장, 관冠, 모자, 지니고 있는 무기, 악기, 깃발을 묘사하고 용도를 함께 기재했다. 이동할 때의 행렬도, 에도성에서 의례를 거행했을 때 양국의 참석자 전원의 배치도까지 상세히 기록하는 등 그림을 통한 정보 제공이 매우 충실하다. 사료의 구성 전체가 마치 핵심만을 뽑아 조선통신사에 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 ‘조선인’이라는 타국인 일행의 실상과 그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행사의 내역을 알려주는 ‘다이제스트’ 서적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료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1748년 통신사와 관련된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사행단이 머물고 있던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여관에 일본인들이 방문하여, 제술관 박경행朴敬行, 정사서기正使書記 이봉환李鳳煥와 일본인들이 ‘필담창화筆談唱和’를 하며 남긴 글과 한시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또한 1748년 통신사행 때 교환했던 양국의 국서도 수록되어 있다.
1764년 통신사는 한성과 일본의 에도를 왕복하는 형태로는 최후의 사행이 되었다. 뒤이은 1811년 통신사는 사행길이 에도가 아닌 ‘쓰시마까지’로 변경되었고 각종 의례도 수정되었으며 결국 조선 후기 최후의 사행이 되었다. 따라서 1764년 통신사 기록은 17·18세기 150년간 반복된 사행의 관행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사료라 할 것이다. 재단은 지난 2015년 이래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Ⅰ·Ⅱ·Ⅲ』 세 권의 사료집을 발간한 바 있다. 그것에 연속하여 ‘조선통신사 기록’을 소재로 한 세 번째 사료집이 발간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조선통신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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