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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당시 세계의 조선 인식

동북아역사재단뉴스/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NEWS/2021 NOVEMBER vol.180/11월/신미양요 당시 세계의 조선 인식|신미양요 150주년 기념 특집|(신미양요와 미국의 한국 개방정책,최덕규-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주목! 이 연구|(한·중 문화 충돌의 원인과 해법은?,김인희-재단 북방사연구소 연구위원)|사료의 재발견|(동남제도개척사 김옥균의 울릉도 개발과 가이 군지,박한민-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신미양요는 미국이 서구 열강 가운데 최초로 한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강화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1871) 무력 충돌을 말한다. 미국 아시아함대의 군함 모노카시(Monocacy)호에서 1시간 동안 발사된 60여 발의 9인치 포탄은 강화도 광성보를 초토화시켰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던 포탄 속에서 조선군 350여 명이 산화했다. 1871년 6월 11일 봉건시대의 조선이 경험한 근대의 참모습은 이러했다. 그 결과 신미양요는 조선의 위정자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과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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