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의 ‘황주한식시첩(黃州寒食試帖)’
왕희지의 ‘난정서’, 안진경의 ‘제질문고’와 더불어 중국의 3대 행서 작품이다.
대만고궁박물원 소장
종이의 발명과 확산
종이는 105년에 후한의 채륜蔡倫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감숙성 방마탄放馬灘에서 기원전 2세기경의 종이[麻紙]가 고고학적으로 출토되었다. 따라서 채륜이 종이를 처음 만들었다기보다는, 제조 기술을 개선하여 양질의 종이를 만들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주로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중국의 간독簡牘, 그리스의 양피지 등이 문자를 기록하는 데 활용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내구성이 좋지 못해 보관이 어렵거나 무거워 많은 양을 기록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중국의 종이 제조 기술은 점차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로 전해졌고, 13세기 무렵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까지 확산되었다.
감숙 방마탄 5호 전한 무덤에서 출토된 지도.
가장 오래된 종이 실물이다.
종이의 한반도 유입과 발전
한반도에 종이가 유입된 시기는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대략 4세기 말 백제에 먼저 도입되었고, 610년에는 고구려의 담징曇徵이 일본에 제지 기술을 전해 주기도 하였다. 6세기에 당으로 유학 간 신라의 유학생과 승려들이 당과 활발히 교류하였기에 종이, 먹, 붓 등의 제조 기술이 전해졌다. 신라의 종이는 ‘계림지鷄林紙’라 불리며 당에도 수출되었다. 닥나무 껍질의 섬유를 이용해 만든 하얗고 반질반질한 신라의 종이는 1천 년의 세월을 견디는 양질의 종이로 유명하다.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발견된 8세기 중엽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陁羅尼經’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로 평가받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성행과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인해 종이의 제조와 서적의 출판이 상당히 왕성하였다. 특히 닥나무의 껍질을 원료로 하는 제지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전국적으로 지소紙所를 설치하고 종이의 원료인 닥나무 재배를 권장하였다.
중국 산동성 봉래수성(蓬萊水城)
해안에서 발견된 고려 선박
최고 품질의 고려 종이
닥나무 껍질이 주원료인 고려 종이는 표면이 거친 마지麻紙를 주로 하는 중국 종이와는 차이가 있다. 또한 종이의 표면을 두드려 가공하는 도침법搗砧法을 개발하여 품질을 대폭 개선하였다. 고려의 종이는 표면이 치밀하고 광택이 있어 글씨가 깨끗하게 잘 써지기 때문에 중국 송나라에서도 크게 호평을 받았다. 종이의 표면이 희고 단단하며, 거울처럼 맑고 솜처럼 부드러워 ‘백추지白硾紙’, ‘경면지鏡面紙’, ‘견지繭紙’라고도 불렀다.
고려와 송은 과거제도를 통해 인재를 등용하였고, 문신文臣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책을 만들기 위한 인쇄술이 발달되고, 종이, 먹, 붓, 벼루와 같은 문방사보文房四寶에 관한 수공업이 크게 활발해졌다. 당시 송나라는 북방의 요, 금, 원에 비해 군사력은 약했지만 문화적으로 발달하였고, 북방 나라들과의 군사적인 충돌로 인해 고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고려의 사신과 상인들을 위해 ‘고려정’이나 ‘고려관’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려와 송은 활발하게 교류했는데, 고려는 송에 종이, 먹, 금, 은, 나전 칠기, 화문석, 인삼 등을 수출하고, 서적, 비단, 약제, 도자기 등을 수입하였다. 특히, 고려 종이는 희면서 내구성이 강하고 반질반질하여 송 왕실의 전적을 기록하거나 저명한 서화가인 소식蘇軾, 황공망黃公望 등이 즐겨 사용하기도 하였다.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재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이다.
한지의 새로운 조명
현대에 들어 펄프를 주재료로 하는 종이나 서화용 화선지에 밀려 전통 한지의 위상이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최근 고려 종이를 계승한 한지韓紙가 국내는 물론 유럽에서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일례로,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는 질기고 오래 보존되는 한지를 이용해 문화재를 복원하였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도 문화재 복원에 한지를 사용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물질문명은 끊임없이 순환된다. 앞으로 지구촌에서 한지가 더욱 주목받기를 기대해 본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중국으로 간 한국 문화 송나라에서 유행한 고려 종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