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로지 교수
임진왜란 관련 패널 ‘The Imjin War: Manpower, Weapon, and Logistics in Early Modern East Asia Revisited’ 의 좌장을 맡으신 밴더빌트대학(Vanderbilt University) 피터 로지(Peter A. Lorge) 교수를 만나 국제 학계의 동향과 임진왜란 연구의 방향에 대해서 조언을 들어 보는 기회를 가졌다. 다만 피터 로지 교수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한국 방문이 취소됨에 따라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2022.8.11.)
피터 로지 교수
전근대 중국 군사사를 전공하였고 현재 밴더빌트대학에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The Beginner’s Guide to Imperial China (2021), The Asian Military Revolution From Gunpowder to the Bomb (2008) War, Politics, and Society in Early Modern China (2005) 등이 있다. 향후 전근대 중국 역사 자료집 2권을 출간 예정이다.
피터 로지 교수
"이정일 연구위원" 안녕하세요, 피터 로지 교수님! 구미 학계의 전근대 중국 군사사 전문가를 재단에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재단의 연례 국제학술대회(NAHF Annual Conference)에 참석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혹시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한국에 대한 인상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eter Lorge" 한국에 처음 방문한 것은 1989년으로, 저의 태권도 선생님을 따라 참가한 태권도 대회였습니다. 그때의 한국은 지금과는 정말로 많이 달랐던 것 같네요. 한국의 역동적인 변화에 감탄합니다.
"이정일 연구위원" 전근대 중국 군사사를 어떤 계기로 연구하시게 되셨습니까? 선생님께서 시작하셨을 당시에는 많이 다루던 주제가 아니었을 텐데요.
"Peter Lorge" 사실 아직까지도 보편적인 연구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어렸을 적에 『손자병법』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양 무술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겼고 동양 무술의 역사에까지 이어졌지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군사사까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의 전공이 된 것입니다.
"이정일 연구위원" 그러시군요. 미국 학계의 전근대 동아시아 군사사 현황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Peter Lorge" 내년이 되면 중국 군사사 학회(Chinese Military History Society)를 창립한지 25주년이 됩니다. 현재는 200명 정도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고 학회지도 발간합니다. 중국 군사사에 비하면 일본 군사사는 상당히 침체된 상태인 것 같고 한국 군사사의 경우는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이 가장 주목 받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연구는 전공자가 거의 없어서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가면 한국의 역사와 군사사 그리고 한국의 전근대사 전반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기회가 있었으면 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못 가게 되어 매우 아쉽습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를 예로 들자면 한국학 프로그램이 있는데 시기적으로는 근현대, 분야별로는 문화 쪽이 강세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제 수업을 듣는 한국 학생이 한국 역사, 특히 전근대 시기 한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같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국학이 근현대 한국사 중심인데, 한국에서도 유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19세기 이전의 한국사, 즉 전근대 한국사를 더 알고 싶습니다.
화상으로 대화하는 피터 로지 교수와 이정일 연구위원
"이정일 연구위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전근대 한국사를 아는 것이 전근대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사 역시 동아시아사의 상호작용 프로세스에서 중요한 연결 고리라는 관점을 전제로 한다면 더욱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임진왜란을 어떻게 보십니까?
"Peter Lorge"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화기를 사용했고 조선과 명도 화기를 사용했습니다. 그 부분은 저의 두 번째 저서에서도 나옵니다. 현재 서구 학계에서는 냉전을 포함한 전쟁사 연구에서 강대국 위주로 연구를 진행해 왔기에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제쳐두는 경향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강대국이 아닌 나라를 무시하는 점이 잘못 되었고, 두 번째는 실제로 전쟁이라는 것은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이 있는데 바로 이 점을 간과한 것입니다. 임진왜란 연구와 한국전쟁 연구에서도 이러한 오류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의 경우, 중국과 일본만 강조가 되는, 바꿔 말하면 중국 중심이나 일본 중심으로만 연구가 되는 것 같은데 그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부분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똑같은 구조의 문제점-중심주의-이 서구 학계에도 존재합니다. 제가 서구 전쟁사 수업을 가르치는데, 여기서는 서구 군사사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서 중국 군사사는 항상 타자화 되어 있습니다. 서양 군사사에서 보면 저는 비서구 군사사 전문가였고 그러다보니 늘 그런 기준으로 중국 군사사를 보는 습성이 있는데, 그래서 제 연구가 제한적이라는 인상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군사사 분야가 역사 연구에서 가장 오픈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군사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조차도 굉장히 유럽 중심적일 때가 많았던 것이죠.
서구 학계가 세계사적 관점에서 연구를 한다고 공언할 때조차도, 늘 근세나 근대 부분만을 얘기합니다. 전근대를 별로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그 당시는 유럽이 강대국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율배반적이죠. 전쟁사 학계에 가보면 서구 사람들이 늘 비서구 지역의 전쟁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까지도 이런 관행들이 되풀이된 것 같습니다. 새로운 모델을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기병, 보병, 화기는 중국 군사사 및 전쟁사에서도 중요한 주제들입니다.
"이정일 연구위원" 좋은 지적과 설명 감사드립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임진왜란이 동아시아 전쟁에서 갖는 현대적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Peter Lorge" 임진왜란은 한중일, 즉 동아시아 세 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기 때문에 세 나라는 각각의 관점을 가지고 있고 이 전쟁에 대한 이해도 다릅니다. 전쟁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 이유는 각국이 처한 상황 내지는 문맥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편의 기록만 의지해서 임진왜란을 이해하거나 정의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학술적으로 대단히 위험할 수 있어요. 엄격히 말하면, 우리가 임진왜란을 이해할 때 명심할 것 중 하나는, 과연 객관적인 입장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입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임진왜란이 한국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중국의 입장에서 본 전쟁 결과 및 일본의 입장에서 본 전쟁 결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따라서 당시 각국에서 임진왜란을 기록한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과 사료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의 군사사 연구자들은 한국, 중국, 일본의 인물이나 지명을 잘 모르고 전근대 동아시아의 역사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만약 사료에 대한 접근도를 높일 수 있다면 분명히 서양 군사사 연구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번역을 통한 자료의 공유와 확산을 통해서 국제 학계의 군사사 관련 학술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힌다면 다른 지역의 군사사 연구자들과 전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보다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고 군사사 연구의 수준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서양의 군사사 학계와 보다 긴밀하게 공동 연구를 진행할수 있는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다면 앞으로 임진왜란 연구는 국제 학계에서 훨씬 더 좋은 학술적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임진왜란 관련 연구자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정일 연구위원" 선생님의 말씀과 관련하여 두 가지 점을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일본은 적국이었지만, 서로 막후교섭에 창을 열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이 사실을 명나라에도 알렸습니다. 두 번째는 현재 재단에서 조선-명 외교 문서집(『事大文軌』)을 번역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이 기록하고 기억하는 임진왜란에 대한 자료가 더 필요하다는 선생님 말씀은 번역 사업의 진행에 큰 격려가 아닐까 싶습니다. 향후 영어로도 번역이 되면 더욱 좋겠습니다.
"Peter Lorge" 임진왜란에 대한 책이 영어권에 나온다면 성심껏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책을 발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출판에 대해 좀 알고 있습니다. 출판을 기획할 때 미리 어떠한 시리즈로 발간할 것인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미 지역 출판사는 한권의 저서가 아니라 시리즈로 출간하는 것을 선호하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과 관련한 도서 발간에 참여한 적이 있기도 합니다. 만약 재단에서 임진왜란 관련 영문 도서를 발간한다면 제가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피터 로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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