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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침탈사 시리즈3
'수탈'과 '발전' 넘어서기_ 일제강점기 조선 공업화의 실상
  • 김인호 동의대학교 교수

구호와 편견에서 벗어나기


이 책을 쓰면서 꼭 이것만은 지켜야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다. 그건 개발론이니 수탈론이니 하는 아전인수격, 편집증적인 연구에서 한발 벗어나서 허수열 교수가 늘 지적하던 것처럼 착취니 수탈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보편적인 수탈상이 환히 드러나는 연구, 시장론에 입각하더라도 시장파괴적 결말이 저절로 드러나는 연구를 이루는 것이었다. 어쩌면 구호와 이념의 스펙트럼을 덧씌우지 않아도 경제적 과오와 시장경제의 파괴 상황이 객관적 잣대로 솔솔 드러나는 연구를 목적으로 하였다.

이런 입장을 가지고, 이 책에서는 전쟁 물자가 긴급히 요구되는 현실을 활용하여 대대적인 가수요와 초과이윤 축적을 겨냥한 당대 자본과 시장의 교활한 요구에 적극 반응하면서도, 제국에 정치 군사적 경제적 목적에도 충성을 다하려 했던 조선총독부의 공업정책을 분석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연구성과를 빠짐없이 정리하였고, 1930년대 이후로 편중된 공업사를 식민지 시기 전체의 공업정책사로 완결짓고자 했으며, 시기별로는 총독부 공업정책의 구상과 입안, 실행, 전략 등으로 해부하였고, 지역별, 업종별 산업별 실상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고민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자립적 공업 진흥을 홍보하며 증산과 개발의 가면을 쓰면서도 실제로는 본토의 지시에 순응하여 조선인의 희생(犧牲)과 내핍(耐乏)에 기반한 물자 염출에 몰두함으로써 조선인의 피폐는 물론이고 해방 후 조선 경제의 재건에 고난의 단초를 심은 조선총독부 공업정책의 진상(眞相)’을 명확히 보이려고 하였다.



조선질소비료 흥남공장 전경(출전 『주간경향』, 2017.7.12.)

 

정책사 중심 연구의 제약


기왕의 공업정책사 연구는 주로 조선 내 산업 연관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파행적이고 탈구화된 공업화라는 입장으로 쓰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시기별로는 1910년대 = 회사령에 기반한 엄격한 기업설립 통제, 1920년대 = 본토의 상품 수출시장 확보, 1930년대 = 공황 타개와 민족운동 위기에 대응한 원료확보용 공업화 정책, 1940년대 = 병참기지화 및 군수공업화 등을 주제로 하여 수탈적이고 기만적 실상을 폭로하는 데 집중되었다.

이런 연구 경향은 조선총독부가 목적을 가지고 구상한 정책 내용과 수탈 실상에 관심을 집중하였기에 실제 작동했던 시장 흐름이나 산업 연관 혹은 산업의 재생산구조 및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접근은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근대화 지표를 보여 주는 각종 데이터를 보고도 인정하기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적으로 식민지이면 경제적으로도 완전한 수탈체제라는 기계론적 입장이 우대받았고, 총독부라는 기구는 의심 없이 본토의 입장만 대변하고 재조 일본인 본위의 정책만 추진한 약탈적 권력으로 이해하였다. 이에 총독부의 정책적 차별이나 자원·인력 수탈에는 무척 예민하였고, 시장제도나 축적 구조, 경영합리화 등 변화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는 관대하지 않았다. 희망과 염원과 목적이 앞선 역사인식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민족 해방의 당위성을 설명하려는 도식이 증가하였다. 이는 필연적으로 과잉해석을 불렀다.

 

조선총독부의 공업정책 표지

시장론의 대두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경제란 정책보다는 시장(市場) 논리에 더 민감한 법인데, 이것을 이해하지 않은 채 정책결정론에 빠져서 수탈과 동원일변도의 해석을 일삼는 연구로는 공업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연구 경향이 대두하였다. 이른바 개발론이다. 실제로 시장기구와 시장경제를 수반하는 각종 제도에 대한 계량적 분석을 무기로 하여 정책결정론적 연구가 가진 약점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별반 건질 것 없는 정책사나 제도사 중심의 연구 풍토나 수탈 담론이 깔린 문구에 매달린 채 민족해방의 대의를 선양하면서 비분강개하는 연구에 전적으로 반대하였다. 대신 근대화의 길을 여는 최고의 스승이라는 시장 요소의 이식과 시장제도의 축적 방면에서 연구를 심화하였다. 이들은 자본주의적으로 평균화된 시장경제 요소에 대한 계량적 연구성과를 키우면서 식민지 경제의 다양한 자유주의적 측면을 부각하였다.

식민지 치안문제나 민족운동의 연장에서 공업사를 보려는 기존 역사학계의 경제사 연구에 대항하였고, 결국 총독부를 식민지 지배를 위해서 본토와 실랑이를 벌이면서 식민지 현실을 반영하고자 노력하는 조정자와 같은 모습으로 보려는 경향도 나타났다. 또한 일상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는 조선인 자본이 아니라 차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내하며 시장경제 제도에 적응하는 모습으로 부각하였다. 급기야 일제강점기가 마치 자유로운 시장제도가 창출·확충되었고, 산업 연관이나 사회적 분업이 한층 고도화되면서 근대적 공업화 기운이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하기에 이르렀다.

 

저작의 고민과 결론


현재 상황에서 개발론에서 기존 역사학계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선별한 역사라고 비판했듯이 개발론 스스로도 심각한 개발편집증에 빠져서 그간 많은 연구자들이 쌓은 연구 성과를 무시하는 오만에 빠졌다는 점도 새겨야 한다. 이에 본 저작은 식민지 공업화에 대한 개발론 측의 시장 결정론적 인식과 역사학계의 정책 결정론적 시각이 가지는 다양한 제약들에 관해서 통합하려고 고민하였다. 개발론에서 비록 1930년대까지 조선 내 공산품 시장의 활성화와 산업 연관의 고도화라는 중요한 성과를 축적한 공로가 보이지만, 정작 조선공업이 크게 성장한 전시체제기는 정상적인 시장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총독부의 공업정책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총독부의 공업정책은 조선 독자 공업화 가능성을 배제한 일본 본토 위주의 공업화, 민족별 우열이 분명히 드러나는 차별적 공업화, 분절적이고 지역 할거적인 전쟁 편승의 공업화, 산업 연관이 결여된 대체재 생산과 조악한 대용품 생산 중심의 공업화, 투자와 노동의 주체여야 할 조선인의 능력 신장보다 노동력의 희생과 시장제도와 질서의 희생 위에 군림하는 내핍과 복종의 공업화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 , 산업구조 파탄과 민족 차별의 일상화, 그리고 국책에 따른 시장 왜곡과 내핍 중심의 조선인 희생에 기반한 국민 파괴적이며, 시장 파괴적인 전쟁 연관의 특별한 업종만의 공업화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조선인과는 철저히 타자화된 본토와 일본인 중심의 공업화였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공업계에서는 모든 재화의 주체였던 일본인만이 필요한 성과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식민지 통치의 미덕을 선양해야만 했던 막중한 사명의 당대 통계들은 그런 조선공업 파탄에 관한 진실의 기록은 제대로 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통계의 죄는 아니겠으나 거기에 편승하여 개발론은 오히려 파탄을 성장으로 둔갑하고, 특권과 차별을 시장과 자유경쟁으로 위장하며, 공출과 연행을 근대 만들기로 미화하고, 거지 콩나물 빼먹던 제국의 착취 도구를 마치 근대적 생산수단의 축적인양 왜곡한 것이 문제의 근원이었다는 점을 이 책은 분명히 하였다.

 


조선경질도자기 주식회사(1917) (출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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